가끔 인용하는 귀절이다. 공자는 “정치란 백성의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고 했다. 어패가 있지만, 요즘도 돌아가는 통박을 보면 정치가 국민의 뺨을 때려 눈물을 흘리게 하는 모양새다. 먼 과거의 얘기가 아니다. 지난주 국회를 통과한 내년 예산안 처리 과정도 마치 야바위판을 방불케 해 허탈한 탄식을 떨칠 수 없다.
총 429조에 달한 내년 예산 처리 과정에서 여당의 독주에 제1야당을 무기력하다 못해 들러리 수준이었다. 철저하게 패싱 당한 한국당의 무능하고 비겁한 몰골이 말이 아니다. 설상가상 한국당 지도부의 천문학적 실속 챙기기 구린내는 더욱 진동했다. 원내 대표 지역구 예산이 무려 211억원 늘어났고 정책위 의장 지역구 또한 140억 5900만원이 증액된 것이다. 여당 원내대표 지역구 예산은 겨우 1억 2500만원 증액된 것과 천양지차다. 오죽하면 장재원 한국당 대변인이 “보수는 죽었다. 부끄럽다”고 장탄식을 했겠는가.

국내· 해외 기업 6대4 그만 됐다.

야당이 이 모양 이 꼴이니 출범 6개월 만에 에러가 연발한 문재인 정부 지지도가 여전히 고공행진한 것이다. 야당이 강해야 정치가 건강해진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물론 한국당만 패대기칠 일이 아니다. 5년간의 국정 과제와 구체적 실행방안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지만 정부여당도 급조된 선거공약 부담에서 과감히 털 것은 털어야한다. 무엇보다 친노동정책에 편향된 국정 운영은 경제주체인 기업인의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문 정부의 국민 지지도가 70%대의 시멘트 강도라지만 먹고 사는 일을 책임지는 경제인들의 생각은 정반대임을 직시해야 한다.
최저임금인상도 버거운데 근로시간 단축까지 몰아치면 기업할 수 없는 나라가 우려된다. 휴일 연장 근무 수당을 150%로 올린 것도 벅찬데 200%로 올리자는 노동계 주장에 국회 환경노동위가 결정을 또 미루었다.
미국을 예로 보자. 정해진 연봉 외엔 휴일· 연장수당이 아예 없다. 점심도 근로자가 햄버거로 때운다. 기숙사· 교통편의 아예 없다. 상여금도 없다. 인건비 다음으로 큰 비중인 전력료도 한국의 절반이다. 우리의 산업 경쟁력이 더욱 추락할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을 통상임금에 적용하지 않고 기본급을 기준하니 기업이 죽을 맛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인 친노동정책이 바뀌지 않으면 일자리 창출은커녕 있는 일자리도 날아갈 수밖에 없다.
본질문제로 돌아가 한 장 남은 달력의 마지막 장을 찢은 지 열흘이 지난 이 시점에서 마음 한구석이 ‘휑’하는 비탄과 아쉬움을 떨칠 수 없다. 우선 불과 십수 년 전까지 많게는 30~40%. 작아도 10% 이상을 점유하던 무역의 날 섬유업계 정부 포상자가 올해는 달랑 2명에 그쳤다. 은탑산업훈장 1명과 산업포장 1명이다. 국무총리 이상 정부 훈· 포상자 230명 중 단 2명의 초라한 수상 실적은 우리 섬유업계가 서 있는 현주소를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장강의 뒷물이 앞 물을 밀어내는 변곡점의 꼭대기를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해마다 무역의 날 수상을 휩쓸던 섬유업계가 이처럼 처절하게 망가진 사실을 새삼 실감하면서 무심 이상의 많은 것을 느끼고 한다. 우리 섬유산업은 국내에서 안주하던 시대가 지난 지 오래다. 크고 작은 기업 6000개 가까이가 이런 이유 저런 사유로 해외로 탈출했다. 비율을 봐도 국내에 60% 해외에 40%다. 수출은 국내에 140억 달러, 해외 진출벤더를 비롯한 직· 편직기업이 200억 달러, 도합 340억 달러 규모다. 해외 진출 기업의 수출이 국내수출을 압도하고 있다.
그러나 더 이상의 엑소더스는 국내산업의 공동화로 직결된다는 점에서 걱정이다. 기업여 건은 갈수록 악화되고 포기하지 않으면 “나가야 산다”는 유행어가 현실화된 걸 모르는 바 아니다. 고임금과 인력난으로 국내 제조업의 생태계가 붕괴되는 상황이 호전되기는커녕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천운을 타고나 반도체, 석유화학, 수출이 일취월장해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가 가시화되면서 섬유제조업은 거꾸로 빈사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최저임금 타령은 지나간 유행가가 됐지만 섬유산업은 생사여탈권이 걸려있다. 경쟁력을 잃어 시난고난한 환자에게 서서히 기력을 회복하는 연착륙이 아닌 고임금의 충격요법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울고 싶을 때 뺨 때린 격으로 최저임금 시행도 되기 전에 사람 줄이고 간판 내리는 기업이 부지기수다. 이 땅의 빈곤퇴치 주역이던 봉제 산업이 공동화된 후 미들· 업 스트림에 간단없이 전이되는 모습이다.
섬유산업이 처한 현상은 사방에 인화 물질이 널려있는 형국이다. 귀에  못이 박힌 고임금, 인력난의 휘발성은 시간이 갈수록 강해져 도처에 추위 타는 기업, 얼어 죽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대구· 경북 산지도 극심한 오더 가뭄에 생사기로에 서 있는 기업이 숫자에 담기 어려운 실정이다. 화섬· 교직물도 글로벌 SPA 브랜드와 거래하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직기를 대거 세워놓고 있다.
환편 니트 직물업계는 강추위가 더욱 심해 여전히 엄동설한이다. 경기 북부를 비롯한 니트 업계도 팍팍하고 고단한 경영에 땅 꺼지는 한숨 소리다. 의정부에 집결해있는 트레이딩업체가 또 야반도주하는 등 불안성 가연심리가 더욱 확산되고 있다. 국내 섬유산업의 허리 부문인 직물산업이 휘청거리면서 득달같이 화섬메이커들도 비상이 걸렸다. 대규모 감산에도 줄어드는 수요에 재고가 쌓일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 중국과 베트남산 화섬사가 저가전략으로 국내시장을 급속히 잠식하고 있다. 화섬 메이커와 중소가연업계가 “죽는다”고 아비규환 악다구니를 쓰고 있다. 5년 중 1년만 경기가 돌아오면 떼돈을 번다는 면방은 2010년 이후 내리 7년간 불황의 깊은 터널에 빠져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이 추위 타는 기업, 얼어 죽는 기업이 늘어난 절박한 상황에서 유달리 불황을 모르는 기업은 의외로 많다. 바로 과감히 투자하는 기업이다. 똑같은 제품으로 중국 베트남 등지와 경쟁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란 점에서 차별화· 특화를 위한 과감한 투자가 대안이다. 대구 산지도 바닥난 곳간을 털어 자동화· 성력화와 차별화에 투자하는 기업은 엔조이하고 있다. 반면 투자하지 않고 옛날 방식으로 운영하는 기업에게 요행이 없어졌다.

차별화 투자기업 불황 많다.

의류벤더들이 해외에 대규모 투자를 통한 규모 경쟁으로 성공하고 있지만 니트와 우븐직물 기업들이 따라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10여 년 전부터 일찌감치 눈을 떠 해외투자를 감행한 기업은 내공이 생겼으나 뒤늦게 진출한 기업들은 해외 공장 운영이 녹록지 않다는 하소연이다. 뒤늦게 베트남에 진출한 직물 기업들은 하나같이 일감이 있어도 “돈이 안 된다”는 얘기다. 거래선인 한국 벤더나 현지 수요자들 모두 중국 가격에 맞추라고 하니 채산이 안 나온다는 것이다.
오히려 한국 공장에서는 오더만 있으면 돈이 남지만 베트남에서는 오더는 있어도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산설고 물설은 이국땅 진출보다 국내에서 승부를 걸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 인상은 받아놓은 밥상이기에 자동화 투자로 사람을 줄일 수밖에 없다. 국내에 일자리가 줄어든 것은 기업의 책임이 아니다. 살기 위해 자동화로 무장해 생산성과 품질로 승부해야한다. 우리나라 섬유 기업들은 내공이 강해 고래 심줄보다 강한 생명력을 갖고 있다. 자동화· 차별화 투자에 전력투구하는 기업은 살 것이고 기피하는 기업은 죽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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