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도 섬유산업의 돌아가는 통박이 기구하게 전개되고 있다. 고립무원 한계 상황의 빙하기를 맞아 추위 타는 기업, 얼어 죽는 기업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중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후발 경쟁국은 모두 호황인데 반해 한국만 막다른 길목에 몰리고 있다. 원인(遠因)과 근인(近因)은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 자체의 책임이지만 목표도 방향도 없는 정부 정책 실종이 한몫을 했다.
하나의 예증으로 ‘갭’을 누르고 자라, H&M에 이어 세계 3대 의류 패션업체로 급부상한 유니클로를 바로 옆에서 보면서 우리는 백년하청에 만족하고 있다. 한국판 유니클로는 왜 불가능한 것일까. 업계와 그 많은 단체의 무능과 실책은 물론 간섭과 통제에 능한 주무 당국이 이를 겨냥해 TF팀 하나 제대로 발족해봤는지 묻고 싶다.

 

유니클로 신화 우리는 왜 안되는가

내친김에 유니클로의 초고속 성장의 실상을 들여다보자. 8월 말 결산인 유니클로는 지난해 매출이 전년보다 4% 증가한 1조 8619억엔(약 18조 4000억)에 영업이익은 39% 늘어난 1764억엔(1조 7400억원)을 기록했다. 미국과 일본시장에서 고전한 데 반해 중국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서 연 40% 매출 증가를 보여 사상 최대 실적을 나타냈다. 세계 1위 자라 브랜드의 스페인 인디텍스가 지난해 매출 29조 3250억원, 세계 2위 스웨덴 H&M의 25조 4082억원 보다는 떨어지지만 미국의 갭을 누르고 당당히 세계 3대 의류업체로 우뚝 섰다.
유니클로의 시가 총액은 42조원에 달해 한국 시총 3위인 현대자동차 35조원보다 많다. SPA(제조소매)로 성장해 온 유니클로는 일본 내에 831개 점포와 함께 한국 179개 점포, 중국 580개 점포(홍콩 포함) 등 해외에 1089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아직 적자를 보고 있지만 중기 연매출 목표 30조를 향해 미국시장을 집중공략하겠다는 것이 야나이 회장의 포부다. 30년 전 히로시마에서 조그만 의류판매상으로 시작한 야나이 회장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일본 최고 부자 1, 2위를 다투는 재벌 총수로 우뚝 섰다. 기획· 생산· 판매를 통합한 제조소매업의 SPA 모델로 성공한 배경은 소재를 비롯한 연관업체와의 철저한 협업 관계다. 연간 1억장을 판매하는 발열 소재 히트텍을 개발한 도레이와 협업을 통해 양사가 동반성장 했다.
세계적인 화학섬유 기업인 도레이 또한 유니클로와의 협업을 통해 연간 10억 달러 가까운 의류 제품을 해외에서 소싱 공급하고 있다. 도레이 직원이 상품기획을 위해 유니클로에 가고 유니클로 직원이 소재개발을 위해 도레이에 가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일본 국내뿐 아니라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한 막대한 자금은 일본 종합상사와 협업하고 있다.
장강의 뒷물이 앞 물을 밀어내듯 과거 세계최대 섬유수출국 일본의 섬유산업이 사양화 됐지만 다시 일어서 동반성장의 호황을 누리는 배경이다. 소재· 기계업체뿐 아니라 도레이 클러스터가 활기를 띠면서 일본내 연관 산업이 함께 성장하고 있다. 하나의 간판 기업이 수백 수천 개 협력업체의 동반성장을 견인하며 섬유 패션산업을 일으키고 있다. 유니클로의 초고속 성장의 실상을 유리알처럼 들여다보고 있는 우리는 왜 이를 벤치마킹 못 하고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는 것인지 답답하다 못해 분통이 터진다.
분명 우리 섬유 패션업계도 사즉생(死卽生) 각오로 뛰면 한국판 유니클로를 못 만들 이유가 없다. 패션 경영능력과 차별화된 광범위한 소재 산업, 재벌계열 패션기업의 능력 모두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진전이 없는 것은 모든걸 혼자 하려는 욕심 때문이다. 협업보다 자기 혼자 차치고 포치고 다하려다 아무것도 안된 것이다.
이럴때 섬유 패션산업정책을 담당하는 주무부처가 전면에 나서 관련 업계와 단체, 연구소, 정부가 하나 된 TF팀을 만들어 연구하고 추진하는 대책이 진즉 마련됐어야 했다. 업체 간 이해관계에 따른 주도권 다툼을 정부가 조정하고 협업체계를 강구했다면 이미 상당수준 진척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화섬과 면방 소재 산업과 함께 대구, 경기도에 있는 직·편직 전문업체가 군웅할거하고 있다. 염색· 사가공과 부자재까지 자급자족은 물론 품질 또한 세계적 수준이다.
무엇보다 유니클로 제품을 생산 공급하는 대형 벤더들이 넘친다. 많은 소재가 지금 이 순간도 유니클로에 공급되고 있다. 모두 개별기업의 기술· 품질 공급 능력은 넘치는데 이를 하나로 묶어 이끌 간판 리딩 기업이 없다. 삼성, 이랜드, LF 기라성 같은 패션기업들은 저마다 혼자 하려다 모두 실패했다. 정부가 중장기 섬유 패션 정책을 갖고 한국판 유니클로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표류는 없었는지 모른다.
한마디로 섬유 패션정책이 목표도 방향도 없이 뒷걸음치고 있다. 정부 지원 예산은 갈수록 줄어들고 그야말로 백가쟁명의 훈수만 있을 뿐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 지금 이 순간도 대구 산지와 경기 수도권 기업들의 줄초상 소리가 들리지만 막을 처방이 없다. 죽건 살건 각자도생할 뿐 “알 바 아니다”는 태도다.
물론 기업이 죽고 사는 것은 기업 스스로 해결할 문제다. 하지만 우리 섬유 패션산업이 어디로 가야 한다는 대전제는 정부가 제시해줄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사지에 몰리고 있는 기업에게 외국인 근로자 쿼터를 늘린다든지 임금 통합제나 지역과 연령층의 차등적용 등에 대해 주무부처가 앞장서야 한다. 비싼 전력료 인하 등 기업 현장의 생생한 실상을 파악해 깜깜히 정치인들을 설득하고 개선시켜야 한다.
상황이 이같이 절박한데도 주무부처의 정책이 어디에 있고 무엇인지 현장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이런 사이에 시난고난한 섬유 기업들이 하나둘 알게 모르게 떡쌀 담그고 있다. 반면 규제나 간섭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또 하나의 예증으로 최근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는 섬유산업연합회의 글로벌 섬유센터 건립을 막는 것은 과거 정부 행태를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비판받고 있다.
사단법인 민간단체가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한 건립안건을 이상한 논리로 반대하는 것은 이해할수 없는 일이다. 건립 반대 이유로 내세운 차입금 과다는 머리 좋은 기업인들로 구성된 섬유 패션 단체장들이 정밀분석을 한 내용이다. 글로벌 비즈니스센터로 확장건립 했을 때 몇 배나 높아진 자산가치는 국외자들의 계산으로도 통박이 뻔한 것이다. 자신 없는데 모험할 단체장들이 아니다. 섬유패션 백년대계를 위한 필연적인 논리이다. 민간단체 총회 결의로 추진하는 건물 신축까지 정부가 통제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처사다.

 

석연찮은 불승인 이유 납득 안돼

일부 단체를 대상으로 모니터링을 했다지만 조사 대상이 누구이었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아프리카에 신발 시장 조사를 두 사람에게 시키면 한 사람은 맨발 생활로 “가능성이 없다”고 하고 한 사람은 “무한한 시장 잠재력”을 주장한다. 꿈이 없는 현실 안주 인사들의 얘기만 듣는 그런 석연찮은 이유로 글로벌 섬유센터 건립을 반대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잘못 끼운 단추는 산업부의 오도된 판단뿐 아니다.
섬산련이 승인 요청하는 과정은 상식도 진실도 통하지 않는다. 이사회 총회에서 결의된 사항을 주무부처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사전에 충분한 의견 조율을 거친 후 요청했어야 했다. OK 사인도 안 받고 불쑥 승인을 요청해 비토 당한 행위는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처사다. 책임 소재를 분명히 따져야겠지만 우선은 성사가 중요하다. 다시 한번 다듬고 조율해서 백년대계의 섬유 패션산업 랜드마크를 꼭 실현해야 한다. 더 이상의 파문 만들기 작태나 소모전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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