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법이다’ 논리가 실감 난다. 냉엄한 국제 정세 속에 세계 최강 군사· 경제 대국 미국의 위세는 상상을 초월했다. 지난주 세일즈던트 트럼프 대통령의 아세안 4개국 순방을 맞아 당사국 모두 허리를 조아리며 황제예우를 했다. 간사한 일본 아베 수상의 알랑방귀는 전 세계 지도자 중 단연 금메달감이었다. 하긴 황제 반열에 오른 중국 시진핑도 평소 맞짱 두던 태도에서 꼬리를 내려 무려 284조원의 투자 선물을 제공했다.

우리 문재인 대통령의 명분과 실리를 추구한 품격 높은 예우도 단연 돋보였다. 럭비볼 트럼프가 무슨 말 폭탄을 쏟아낼까 긴장했지만 “한국 안보를 책임지겠다”는 확고부동한 천명이 국민의 안보 불안을 불식시켰다. “힘을 통해 평화를 유지하겠다”며 북한 김정은집단에게 “오판하지 말라”고 일갈한 것은 이라크의 후세인 신세가 되지 말라는 경고였다. 김정은 집단 정도는 미국의 입장에서 하루아침 해장거리밖에 안 된다는 의미다. 대규모 전략무기 수입 선물을 안겼지만 긴장했던 한· 미 FTA 문제를 일단 봉합했고 국민의 안보 불안까지 해소한 것은 값진 성과였다.

 

투자기업 불황 없고 현상 안주 소멸한다

말을 바꿔 만추의 계절 11월에 섬유패션인의 시름을 달래고 신념을 공유하는 ‘제31회 섬유인의 날’ 기념식이 올해도 성대하게 열렸다.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 열린 섬유의 날 기념식에 이낙연 국무총리가 어려운 걸음을 해 섬유· 패션인과 소통하는 아주 특별한 기회를 가졌다.

국회가 열려있는 바쁜 일정에도 최저임금을 비롯한 달갑지 않은 정책으로 상실감을 갖고 있는 섬유· 패션인을 따뜻하게 위로했다. 기분학상으로 봐도 섬유의 날 기념행사에는 장관이 오는 것보다 총리가 오는 것이 모양새가 확실히 좋았다.

그러나 올해 섬유의 날을 맞는 섬유· 패션인의 마음은 단일품목 최초로 87년 11월 11일 수출 100억 달러 달성을 자부할만한 여유가 없다. 기업경영환경이 갈수록 팍팍해 상당수가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노송(老松)이 무덤을 지키듯 이 땅의 경제와 고용을 지키던 섬유산업이 백척간두에 몰려있다. 냉엄한 글로벌 경쟁 시대에 각자도생에 몰린 기업의 처지가 섬유의 날 재정 당시와는 천양지차다.

설상가상으로 중국과 베트남 등의 후발국에 추월당해 시난고난 버티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이란 메카톤급 햄머에 맞았다. 한국을 이미 부분적으로 추월한 베트남이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을 6.5%로 묶는 상황에서 정점의 최저임금에 다시 16.4%를 올리면 버틸 재간이 없다. 만나는 기업인마다 울화통을 호소하며 노동자 위주의 기울어진 운동장정책에 핏발을 곤두세우고 있다.

궁여지책으로 정부가 3조원을 지원해 1인당 월 최대 13만원의 임금을 지원하겠다는 것도 이치에 안맞는 일이다. 30인 이상 중소기업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국가 재정으로 민간기업 근로자 임금을 지원하는 나라가 지구상에 어디 있는지 당최 알 수가 없다.

현장을 모르고 기업할 수 없도록 만드는 탁상공론에 기업인들이 악에 받친 상황이다. 솔직히 최저임금이 인상되기 전인 올해 기준 전국 섬유 기업 중 흑자 낸 기업은 전체의 10%밖에 안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엄동설한인 내수 경기는 장기간 꿈쩍 않고 경쟁력을 잃는 글로벌 수출시장도 장기 침체돼 적자기업이 부지기수다. 임금부담을 비롯한 근로시간 단축 등 악재가 덮치는 내년의 상황은 불을 보듯 뻔하다. 꿈과 희망이 넘친 섬유산업 특유의 역동성은 간데 없고 체념이 길게 베인 땅 꺼지는 한숨 소리만 요란하다. 가물가물한 미래를 바라보며 버티어 온 추위 타는 기업들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얼어 죽는 기업이 차고 넘쳐질 같아 겁난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고래 심줄보다 강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우리 섬유산업의 자포자기는 절대 금물이다. 엄혹한 글로벌 경쟁 시대에도 전체의 10% 내외는 아직도 불황을 모르고 일취월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지난주 필자가 소개한 대로 엄동설한에 덮혀있는 대구 경북 섬유 산지에서 호황을 만끽하는 기업들  벤치마킹해야 된다. 대구뿐 아니라 서울 경기 수도권에서도 잘나가는 기업은 불황을 모른다.

대전제는 투자와 자동화· 첨단 설비를 통한 품질과 생산성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남이 하지 않는 차별화 전략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이다. 대량생산체제의 중국이 하지 않거나 못한 차별화 전략으로 불황을 돌파하고 있는 것이다.

삽질하지 않고 물이 고이기를 바라는 것은 요행을 기대한 것이다. 중언부언하지만 품질과 생산성, 차별화, 마케팅 전략에 관한 과감한 투자기업은 하나같이 불황을 모른다. 대신 이런 이유 저런 핑계로 투자를 기피하고 현상 안주 기업은 하나같이 적자경영에 헉헉거리고 있다.

자주 강조하지만 예로부터 지혜로운 농부는 척박한 땅을 비옥한 땅으로 바꾸기 위해 객토(客土)를 했다. 풍부한 영양물질을 함유한 황토나 하천 충적토(沖積土)를 논에 뿌려 소출(所出) 증대를 도모한 것이다. 
산업의 객토는 이보다 더 절실하다. 분초를 다투는 변곡점의 꼭대기에서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맞춰 품질과 차별화· 기술개발이 급선무다. 불황을 모르는 기업들은 인력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동화 설비로 개체하면서 오히려 품질과 생산성을 높이기는 것이 대세다.

대구의 대표적인 호황업체인 某 화섬직물업체는 과감한 첨단설비투자와 함께 대표이사 직속 개발실 전문 직원이 10명에 달해 차별화 신제품 개발로 성공하고 있다.

똑같은 업종에 설비 규모도 같고 생산직· 영업· 관리직 인원수가 비슷한데도 한 곳은 오더가 넘치고 한 기업은 배곯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투자하지 않고 저절로 이뤄지는 요술은 없다. 더구나 세계 최대 섬유 강국 중국의 시장 석권에서 살아남는 길은 품질· 차별화를 위한 과감한 투자밖에 없다.

“안된다”고 체념하면 안 될 수밖에 없다. “할 수 있다”고 신념을 공유하며 전력투구하면 성장의 과실이 주렁주렁 열린다. 빌 게이츠가 말하듯 “희망은 말하는 대로 이뤄진다.”(빌 게이츠 성공 비결), 전쟁터에서도 “이긴다”고 신념을 갖고 있는 한 사람의 힘이 99명의 힘과 같다고 했다.

 

실패는 넘어지는 것 아닌 포기하는 것

이 땅의 빈곤퇴치 주역이자 중화학· 첨단산업의 젖줄인 섬유 산업이 2000년대 들어 언제라고 어렵지 않을 때가 있었는가. 그러나 섬유산업은 버티어왔고 안정성장을 유지해왔다. 위기 없는 경제도 극복 못 할 위기도 없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사즉생(死則生) 각오로 분골쇄신하면 못 이룰 게 없다. 기업의 운명은 기업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냉엄한 글로벌 경쟁 시대에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다.

거듭 강조하지만 실패는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는 것이다.

비록 대내외 환경이 시베리아처럼 춥지만 섬유· 패션인이 갖고 있는 노우하우와 기술력· 시장망을 활용하면 얼마든지 추위를 녹일 수 있다. 올해 섬유의 날 기념식에서 굳건히 다짐한 섬유· 패션인의 단합된 통합감과 꿈과 희망이 결실을 맺어 내년 섬유의 날에는 더 밝고 활기찬 모습으로 다가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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