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몰랐다. 사상 최장인 ‘슈퍼 추석 연휴 10일’이 몰고 온 후유증이 산업계를 덮쳤다. 탁상공론에 불과한 내수진작효과보다 국부 유출의 부작용이 훨씬 큰 졸속 판단이었다. 120만명이 해외로 나가 달러를 물 쓰듯 하면서 줄잡아 이달 한 달 여행수지 적자가 20억 달러를 상회할 전망이다.
지루하게 길었던 연휴 동안 나들이 인파가 몰리면서 관광지엔 콩고물이 떨어졌지만 뭉칫돈을 쓴 해외 여행객에 비해 쭉정이 수준이었다. 한국판 블랙 프라이데이라는 코리아 세일 페스타마저 파리 날린 수준이었다. 얼어붙은 내수 경기는 코리아 세일 페스타보다 더한 파격 행사를 해도 백약이 무효라고 아우성치고 있다. 종전에는 비싼 제품이 안 팔리면 싼 물건은 팔렸지만 최근에는 싸게 팔아도 안 팔린다고 한숨짓고 있다. 내수 패션기업의 물류창고에는 재고상품이 가득 차 신상품 발주량이 급감했다.

슈퍼 추석 연휴에 제조업 곤죽 됐다.

내수패션 경기 냉골은 섬유 제조업체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과거에는 3~4일 연휴가 끝나면 밀린 오더가 몰렸지만 이번 열흘 연휴가 끝나도 내수용 원단· 염색 오더는 씨가 말랐다. 유통에서 죽 쑤고 있으니 원단 수요가 있을 리 만무하다. 긴 연휴를 내수 활성화의 견인차로 만들지 못하고 해외 소비만 부추기는 탁상공론이 한심하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제조업으로 먹고사는 나라다. 섬유산업은 아직도 제조업 중 고용효과가 가장 큰 업종이다. 노송(老松)이 무덤을 지킨다고 섬유산업이야말로 국가 기간산업으로 제조업의 대표 산업이다. 섬유가 무너지면 타 제조업이 동반 몰락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고임금과 인력난을 못 이겨 6000여 섬유 기업이 해외로 탈출했지만 4만여 개의 크고 작은 섬유 기업이 국내에 존립하고 있다. 이들이 국내에 머물도록 생명력을 지원해야 할 텐데 정부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모든 제조업이 그렇듯이 섬유제조업의 원가구성요건은 원자재를 제외한 가장 큰 비중이 인건비와 전력료다. 우리의 인건비와 전력 구조는 경쟁국과 비교할 수 없는 악재투성이다.
중언부언하지만 임금에서 중국과 베트남 등 경쟁국에 비해 5~10배나 비싼 구조 속에 인력난까지 겹치고 있다. 내국인이 생산현장을 기피하니까 하는 수 없이 4대 보험까지 적용하며 외국인 근로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외국인 근로자 쿼터가 절대 부족한 데다 연수생 제도로 이웃 일본에 비해 훨씬 불리하게 운영되고 있다.
임금 격차로 인한 경쟁력 부족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산업용 전력료라도 경쟁국보다 같거나 낮아야 할 텐데 이 또한 거꾸로 가고 있다. 한국과 미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이 갑절 차이가 날 정도로 우리가 훨씬 비싸다. 심지어 베트남보다 40%나 비싼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하나의 예증으로 대구의 한 가연업체는 한 달 매출이 2억원에 전기료가 9000만원에 달해 45%를 점유하고 있다. 한국 전력이 야간에 남아도는 전기를 사용하는 공장에도 6· 7· 8월과 12· 1· 2월 등 여름과 겨울철 전력피크제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죽어라고 기업해서 한전 좋은 일 하는 꼴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요즘 막바지 진통을 겪고 있는 신고리 5· 6호기 건설에 따른 찬성과 반대 논쟁은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소모전에 불과하다. 원자력의 안전성이 1만 년을 보장하는 것은 물론 생산원가도 대체 에너지의 4분의 1에 불과한 것으로 한수원이 국감에서 밝혔다. 안정성· 경제성이 확인된 이상 고리 5· 6호기 찬반논쟁은 부질없는 절차다. 지금 당장이 아닌 5년 후에 전기료가 오르거나 가능성만 있다 해도 도시락 싸 들고 원자력 반대자들을 말려야 한다.   
또 최저임금 인상이 몰고 온 파문과 후폭풍은 예상보다 깊고 넓게 퍼지고 있다. 16.4% 인상 시기는 내년인데도 벌써부터 산업현장은 기업 포기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 현재의 임금구조로도 헉헉거리는 절박하고 처절한 상황에서 사상 최고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으로는 기업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뒤늦게나마 최저임금 과다인상으로 인한 기업의 신음소리를 듣고 개선논의에 나선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상여금과 숙식비를 포함시키는 문제와 독일과 일본처럼 업종별 지역별 차등적용이 꼭 관철돼야 할 것으로 기대한다.
솔직히 정치인은 피땀 흘려 벌어본 경험이 없어 ‘내 돈도 내 돈 남의 돈도 내 돈’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다 보니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기업인의 피 말리는 고통을 알 리 없다. 돌아가는 통박을 보면 내년부터 적용되는 최저임금이 시행되기 전에 떡쌀 담그는 기업이 부지기수일 가능성이 크다. 대구 산지부터 섬유 역사상 최악의 불황으로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급기야 경기지역 섬유업계도 줄초상을 향한 불안성 가연심리가 팽배하고 있다.  
양포동(양주· 포천· 동두천)과 거래하던 성수동소재 某 트레이딩업체가 최근 떡쌀을 담그자 연쇄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국내 대형 의류벤더와 거래하던 니트직물 트레이딩 업체의 파산은 염색· 편직업체의 연쇄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죄 없는 편직업체나 염색가공업체가 수억 원씩 납품대금을 못 받아 추석 명절을 고통스럽게 넘겼다. 대구염색공단 다음으로 큰 반월과 시화염색공단도 삭풍이 불고 있다. 잘 나가던 간판급 날염 전문업체가 최근 경영난을 못 이겨 법정관리절차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주거래 은행과 법정관리 신청에 따른 마지막 조율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 지역과 대구경북 산지의 줄초상 가능성은 오는 연말경이 피크를 이룰 전망이다. 경기는 바닥이고 전망은 어두운 데다 갈수록 악화되는 경영환경을 의식해 자포자기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수출· 내수 모두 장기 불황상태에서 임금, 인력난, 전기료 부담과 반기업 정서까지 겹쳐 사방이 인화 물질이 널려 있다고 보고 있다. 파산의 불길이 언제 어디서 발화할지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일자리를 국정의 제일 과제로 설정했다면 신규 일자리 못지않게 기존 일자리를 유지하는 정책에 포커스를 맞추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기업들은 일자리 창출보다 사람 줄이는데 최우선 역점을 두고 있다. 웬만하면 야간작업을 포기하고 주간 작업으로 돌린다. 설비를 늘리거나 자동화해 인력을 줄이는 것이 살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노동자 위주의 기울어진 운동장 정책에 기가 질려 사람 줄이는 것이 대세다. 정부의 노동자 위주 정책은 필연적으로 기업의 쇠퇴를 자초할 수밖에 없다.

너무 늦은 해외 탈출 국내서 길 찾아야

지난날의 궤적에서 강성노조가 설친 산업현장은 하나같이 성한 곳이 없음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직물 하는 기업인의 꿈이었던 원사 메이커도 강성노조가 설치면서 모두 망했다. 한국합섬과 금강화섬, 대하합섬 등은 대구직물 기업인들이 청운의 꿈을 이뤘으나 강성노조의 끝 간 데 없는 요구와 강경 투쟁으로 모두 파산하고 말았다. 머리에 붉은 띠 두르고 악다구니를 쓰던 강성 노조원들 역시 자폭상태에 빠져 공사판이나 노점상을 전전하며 가정까지 풍비박산 났다.
하루빨리 정부의 기업 기 살리는 정책과 더불어 기업도 스스로 각자도생을 위해 사즉생(死卽生) 각오로 재무장해야 한다. 엄혹한 기업환경 속에 살아남는 자가 성공한 기업인이다. 해외로 나간다고 능사가 아니다. 지금 베트남· 인도네시아에 간다고 성공할 보장이 가물가물하다. 국내서 버티며 살길을 모색해야 한다. 해외 공장도 갈수록 녹록지 않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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