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잎 떨어지면 가을인 줄 알지만 8년 만에 다가온 10월 추석이 겁난다. 사상 최장 10일 연휴에 120만 명이 해외로 떠나는 북새통에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섬유 기업인들은 좌불안석이다. 반도체 수출이 호조를 보여 착시를 일으키지만 수출 산업 전체를 내시경으로 들여다보면 불안성 가연심리를 떨칠 수 없다.
속절없이 무너지는 섬유산업의 잔혹사는 더욱 참담하다. 국내 섬유산업 현장에 땅거미가 지면서 벌써부터 줄초상 돌림병 징후가 도처에서 창궐하고 있다. 섬유 수출 경기는 여전히 엄동설한이고 내년 패션 경기 또한 냉골 상태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가뜩이나 중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와 경쟁력을 상실해 생명력이 가물가물한 상태에서 기업의욕마저 상실한 악재가 겹치고 있다.

섬유기업인 10일 연휴 추석이 싫다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인구의 50분의 1이 해외로 떠난 사이 기업인의 가슴은 화석으로 변한다. 연중 최대 자금 성수기인 추석을 맞아 뒤주는 비었고 나갈 돈은 많으니 추석이 겁날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 인상 이후 급속히 확산되는 기업 포기 전운이 감돌면서 추석에 떡쌀 담그는 기업이 생길 것이라는 괴문서까지 돌고 있다.
기업은 자본주의 꽃이고 경제의 주체이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이상하게 반기업 정서가 팽배하고 있다. 고용 창출도 기업이 하는 것이고 세금을 내는 것도 기업 몫인데 기업인을 죄인 취급하는 쌍팔년도 사시적 시각이 더욱 기승을 부린다.
미국의 보잉사가 있는 시애틀 시민들은 자기 지역에 세계 1등 항공기 제작회사가 있다는데 강한 자부심 느낀다. 보잉사가 수십만 명을 고용하고 있고 시애틀 세원의 가장 큰 일등공신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외국인이 보잉사를 방문하면 기념품으로 보잉사 마크가 있는 모자를 선물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관광객이나 외국인이 이 모자를 쓰고 시애틀 타워를 구경하기 위해 줄을 서면 시민들이 너도나도 자리를 양보한다. 보잉사에 대한 자부심과 존경심은 보잉사를 찾아온 관광객에게까지 줄을 양보할 정도로 친기업 정서가 강하다.
한국 법인세의 25%를 부담하는 삼성전자는 모자는커녕 복장을 해도 해당 지역 시민들이 시애틀 시민처럼 자부심과 존경의 눈길을 보내겠는가. 한국과 선진 미국의 극명한 반기업 및 친기업 정신의 차이를 웅변으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거두절미하고 섬유제조업뿐 아니라 중소 제조업들은 “기업 못하겠다”고 아우성이다. 최저임금 인상보다 더 무서운 근로시간 단축이 추진되고 탈원전 정책이 몰고 온 전기료 인상 가능성에 사시나무 떨듯 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은 외국인 근로자의 천국이 됐지만 산업현장에는 여전히 사람이 없다. 대구 산지 제· 편직과 염색공장 근로자 평균 나이는 55세이지만 60대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팔팔한 20~30대 근로자와 50~60대 연로한 근로자 임금을 똑같이 책정하는 어리석은 정책을 당최 알 수가 없다. 외국에서는 지역별로 임금체계가 다르다는데 우리는 서울과 지방 싸잡아 동일 임금을 적용하고 있어 답답하다 못해 분통이 터진다. 아무리 축지법을 쓰고 백방으로 묘수를 생각해도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임금 10배를 주고 살아남을 기업은 많지 않다. 결국 보따리 싸고 나가거나 문 닫거나 양단간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요즘 대구 산지에서 자동화 투자를 하고 싶어도 보고 배울만한 공장이 없다고 한다. 남의 공장의 성공사례를 본 따 투자하려고 해도 그런 모델 공장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너도나도 버틸 때까지 견디다 안되면 몇 년 있다 문 닫겠다는 분위기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그토록 끈질긴 집념과 열정으로 가득한 섬유 기업인들이 왜 이토록 자포자기성 패배주의에 빠졌는지 아쉽고 답답할 뿐이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자포자기성 성급한 예단은 금물이다. 우리 섬유기업인들은 수많은 고비를 극복하며 성공한 저력을 갖고 있다. 일본 경영계의 신으로 불리던 마쓰시타전기 창업주 마쓰시타 고노스케 회장은 “호황은 좋다. 불황은 더욱 좋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호황 때는 안주하지만 불황 때 신기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연구와 투자에 전력투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섬유기업인들도 목에 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연구와 투자를 강화해야 한다. 그것은 비장한 각오와 피나는 노력이다. 어차피 중국· 베트남과 양적 경쟁은 물 건너간 지 오래다. 질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 인상이 발표되자 가장 먼저 백기를 든 국내 면방업체도 차별화· 고급화에서 아직 멀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본 곤도방처럼 같은 코마사라도 품질로 승부해 성공한 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일본의 골프 마니아들이 ‘군제’사에서 만든 골프 티셔츠를 입다 “다른 회사 제품을 못 입는다”고 푸념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군제가 만든 골프 티셔츠는 일본산 면사의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곤도방 실만을 고집한다. 입어보면 촉감부터 달라 기분이 상쾌하여 타제품과 비교가 안 된다는 것이다.
곤도방이 베트남에 진출해 5만추 규모를 가동하고 있지만 항상 이 공장  코마사는 배급을 주고 있다. 면사를 달라는 수요자가 줄을 서도 일정량 이상은 주지 않고 안분 배정하고 있다.
베트남에 10년 전 진출해 대성한 삼일니트 김재우 회장은 왠지 “곤도방 면사로 편직하고 염색하면 원단에서 광택이 나고 촉감이 다른 것을 느낀다”고 토로하고 있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편직업체 중 규모가 가장 큰 삼일니트도 곤도방 실을 더 많이 받으려고 해도 “한꺼번에 일정량 이상은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원면 선택에서부터 준비· 스피닝· 후공정 전반에 철저한 품질관리와 기술을 접목하기 때문이다. 곤도방은 결국 어떤 불황에도 면사 재고가 쌓인 일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 면방업계도 설비는 곤도방과 같은 스위스 리이터나 일본 토요타 제방적기인데 왜 곤도방 같은 품질을 못 만드는지, 안 만드는지 반성해야 한다. 화섬도 매한가지다. 제직· 편직· 염색· 후가공 기술도 중요하지만 원천은 소재의 차별화다. 일본 화섬 메이커가 개발한 신소재를 뒤따라갈게 아니라 독자 개발한 히트 상품을 내놓아야 한다.

日 군제 골프웨어 명성 곤도紡 실 쓴다. 

일본이 먼저 개발한 피치스킨이나 잠재권축사를 뒤따라 각기 10년 이상씩 울궈 먹었으면 재빨리 후속 제품을 개발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아직 잠재권축사에 걸맞는 후속 소재를 개발하지 못한 채 헤매고 있다. 이미 중국이 직방체제의 잠재권축사를 양산해 한국보다 10배 이상 팔고 있어 국산 잠재권축사 운명이 다해가고 있다.
국내 화섬 메이커는 혼자서 끙끙 앓지 말고 제직· 편직· 염색업체까지 실무책임자간 소재개발 전략 회의를 수시로 가져야 한다. 이태리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다. 시장에서 요구한 원사의 차별성과 특성· 염색성까지 소재 연구팀이 파악해 수요업계에 전달해야 시너지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일본 도레이와 유니클로의 개발팀 실무회의가 빈번하게 열리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제직· 편직· 염색가공업계 모두 지금과 같은 천수답 경영으로는 안 된다. 자동화를 통한 생산성과 구조혁신· R&D· 마케팅 전 분야에 선택과 집중에 올인해야 한다.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는데 “나와는 무관하다”는 무기력증은 자살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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