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구 침장업계가 중국산에 의존하던 침장용 원단을 국산으로 대체하는 운동이 본격 전개되고 있다. 5리(五里) 보고 10리(十里) 가는 영세 상인들의 국산 소재 사용 운동은 가상하다 못해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같은 값이면 국산 소재를 사용하자”는 캠페인을 벌여도 “가격 때문에” 타령으로 일관한 의류 수출벤더들과 대조를 보이고 있다. 때마침 의류벤더들에게 국산 소재 사용을 촉구하는 차원에서 경종이 되라는 의미로 상황과 맥락의 개연성을 전개해본다.
출범 4년여에 불과한 미국의 ‘룰라로’라는 의류판매회사는 지난해 8억 달러의 매출을 올린 데 이어 올해 18억 달러 매출을 목표할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이 회사의 바잉오피스 격인 ‘마이다이어’가 의류구매와 원단구매를 책임지고 있으며 올 상반기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 옆 파레나스 빌딩 내에 ‘마이다이어코리아’를 개설 운영하고 있다.

돋보인 대구 침장업계 국산소재 사용

다단계 형태의 특별한 영업방식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룰라로’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빅3인 세아상역, 한세실업, 한솔섬유 등과도 거래하고 있다. 세아상역이 이 회사와 가장 많은 규모를 거래하고 있는 가운데 올 초 여성용 레깅스 제품에 불량이 대량 발생해 미국 소비자들로부터 ‘룰라로’가 소송에 휘말리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우여곡절에도 독특한 다단계 형태의 영업 전략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룰라로’는 여전히 레깅스 제품이 미국 전역에서 인기리에 대량 팔리고 있다. 이 제품의 원단은 폴리 스판이고 입으면 신축성이 두 배 정도 늘어나는 편직 프린트 소재로 비만인 여성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제품 원단은 가격 차 때문에 중국산이 거의 독무대를 이루고 있다.
필자가 중언부언하는 데는 우리 의류 수출벤더들의 소재 선택에 대한 자세를 묻고 싶은 것이다. 마이다이어코리아를 통해 주문된 제품은 단위당 수십만 장에 달하고 테스트 오더도 5만~10만 장에 달할 정도로 거래 규모가 크다. 그만큼 원단 수요도 오더당 수백만 야드에 달한다. 의류벤더 중에는 원단 선택 과정에서 무조건 가격 차를 들어 국산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바이어가 제시한대로 중국산 원단을 아무 말 없이 채택하고 있다. 타바이어 오더도 대부분 이렇게 진행하고 있다.
이같은 관행에서도 벤더 ‘빅3’의 하나인 특정 벤더는 국산 소재의 가격 경쟁력이 없는 줄 알면서도 일단 국산 원단으로 커버해보기 위해 샘플을 의뢰하고 가격을 저울질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런 노력을 경주해도 도저히 중국산과 가격 차가 심하면 결국 중국산 폴리 스판 원단을 채택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특정 벤더는 편직· 프린트 업체들과 밤낮으로 주판을 튀기고 연구하다 안 되면 포기하지만 다른 벤더는 아예 국산은 쳐다보지도 않고 불쑥 중국산을 선택한 차이점이다. 의류 수출벤더들이 피스당 몇 센트를 놓고 계산기를 두들기며 바이어와 시름한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가급적 국산 소재를 사용하겠다는 의지의 문제다. 비록 국산 소재 가격이 안 맞으면 맞출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백방으로 노력하고 연구하다 안되면 포기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오더 상담을 하면서 같은 값이면 국산 소재를 사용하기 위해 원사와 제· 편직· 염색가공· 사가공업체까지 포함해 원가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강구했어야 했다.
정 어려우면 원사에서 조금 깎고 제· 편직료에서 또 깎고 마지막 염색가공료를 깎아 공정별로 감내할 수 있는 선까지 마른 수건 짜는 전략이면 수용할 수 있는 길이 있을 수 있다. 처음부터 이것은 중국산과 가격이 비교가 안되니 아예 체념하는 것과 공정별 관계사가 한자리에 모여 방안을 찾았으나 안되는 것과는 천항지차다. 오더량이 많으면 대량 생산성으로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는 것이다. 작년에 경기 북부 某 원단 수출업체가 ‘룰라로’ 오더 중 중국으로 넘어갈 니트 자카드 원단을 저가로 수주해 관련 업체가 단결해 생산성으로 커버하며 오히려 큰 이익을 본 것이 하나의 예증이다. 이것은 의류 수출벤더들이 국내 소재산업과 고통을 분담하면서 함께 멀리 가겠다는 철학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협의하기 위해 필자가 4년 전 섬유산업연합회의 스트림간 협력간담회를 발족시키기 위해 발품을 벌어 성사시켰다. 현실적으로 섬유업계의 별인 중· 대형 의류 수출벤더와 갈수록 팍팍해진 국내 사· 직물소재업체와 끈끈한 공조체제를 구축해 ‘주식회사 한국섬유산업’을 위기에서 구해 지속 발전시켜 나가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매분기별 정례모임을 갖고 있지만 아쉽게도 총론은 공감하면서 각론이 없다. 우선 실무자 차원을 넘어 오너 회장의 의지가 적극적이지 못한데 원인이 있는 것 같다. 회장의 특별지시로 모든 오더 수행에 따른 소재 선택은 일단 국내 공급업체의 연석회의를 통해 연구 검토한 다음 “같은 값이면 국산을 사용해야 한다”는 오너의 경영 철학이 필요하다. 단순 최종 제품 단가로는 중국산 등과 현저한 가격 차이가 있겠지만 사· 제직· 편직· 사가공· 염색가공이 함께 숙의하며 조금씩 단가를 양보하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
의류벤더들에게 중국산보다 비싼 값에 국산 소재를 사달라는 얘기가 아니다. 중국업체들은 다소 비싸도 자국산을 사주지만 우리나라 벤더들에게 이렇게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그런 한편 국내 소재업체도 값은 낮출 수 있는 한계까지 낮춰 경쟁하는 수용태세를 갖춰야 한다. “외할머니 떡도 싸고 맛있어야 사 먹는다”. 국산이 비싸고 품질이 떨어지는데 국산 소재를 사달라고 하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차제에 섬산련의 스트림간 협력간담회가 이제 총론에 맞춰 각론에 충실해야 한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협력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스트림간 협력간담회 각론이 없다.

지금은 국내 섬유산업이 백척간두에 몰린 비상사태다. 의류벤더들의 국산 소재 사용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더욱 악영향을 미칠게 뻔하다. 의류벤더들이 앞장서 국내 소재 산업을 살리겠다는 성의와 협력이 없으면 공동화(空洞化)를 피할 길이 없다. 글로벌 경영으로 성공한 의류벤더들이 대구 침장업계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대구의 영세 침장업체들은 그동안 90% 이상 의존하던 중국산 원단을 국산으로 대체하기 위해 팔소매를 걷어 올렸다. 연간 6000만 야드 420억원에 달하던 중국산 침장원단을 국산으로 대체하기 위해 관련 조합이 MOU를 체결했다. 대구시 당국이 다리를 놨다. 섬산련도 스트림간 협력간담회를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의류벤더와 국내 소재 산업 간에 함께 멀리 가도록 제대로 다리를 놓아야 한다.
강자적 입장인 벤더들이 먼저 마음을 열고 성의를 보여야 한다. 글로벌 경영으로 성공한 의류벤더들의 오늘이 있기까지 국내 소재 산업의 기여도가 컸음을 인색해야 한다. 또 국내 소재 산업이 완전 망가지고 나면 중국과 대만· 인도 소재 업체들이 득달같이 원사· 직물 가격을 천정부지도 올리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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