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예단은 이르지만 출발이 좋다. 문재인 대통령의 산뜻한 통치 행보가 사이다보다 더 청량하다. 국민과 격의 없이 소통하고 전례 없는 탕평인사가 감동을 준다. 대통령에 당선되고도 5년 전에 마련한 노스페이스 등산화를 신고 홍은동 뒷산에 오른 모습은 천성이 흙수저 서민임을 보여줬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빠른 취임 10일 만에 여· 야 원내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과 함께 협치하는 모습도 돋보였다. 더욱 신선한 충격은 이른바 ‘3철’로 불리는 측근 3인방이 “권력과 거리를 두겠다”며 떠나는 아름다운 뒷모습이다. 과거 정권처럼 공신들의 나눠 먹기 논공행상과는 차원이 달랐다. 정권교체의 일등공신들의 마음을 비우는 모습에 국민은 감동하며 찬사와 박수를 보냈다.

시간당 1만원, 살아남을 中企 없다

더구나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슬프고 아픈 5.18 민주화 운동도 헌법정신에 계승하겠다며 말끔히 정리했다. 대립과 갈등의 우리 내부 병통을 치유하면서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한 국격을 정상으로 복원시키고 있다. 동네북처럼 때리고 가지고 놀던 강대국들도 태도가 바뀌었다. 4개국 특사들은 가는 곳마다 각국 정부로부터 극진한 칙사 대접을 받았다. 정상회담 일정이 최우선으로 잡히고 고약한 보복 행동도 누그러지고 있다. 가장 심했던 중국이 아직 발톱을 감추고 있지만 사드보복을 서서히 철회하고 있다. 끊겼던 요우커들의 한국 방문이 점차 재개되고 롯데 상하이 빌딩이 분양을 재개하는 청신호를 보내고 있다.
J노믹스의 1순위인 일자리정책도 급진전되고 있다. 경제검찰 공정위 수장에 재벌개혁 저승사자인 김상조 교수를 가장 먼저 임명한 것도 큰 의미다. 검찰개혁에 재벌개혁이 본격화되면서 검찰은 물론 재벌들도 긴 겨울을 걱정하며 떨고 있다.
소통과 통합으로 시작된 문재인 정부가 국민 70% 이상 지지를 받고 순항하면서 지랄 맞던 한국 정치가 협상과 타협으로 복원될 기미다. 제왕적 대통령의 실정(失政)으로 한순간에 마비 상태였던 나라가 제대로 작동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매사는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밥도 빨리 먹으면 체하듯 국정 운영도 완급을 잘 조정해야 한다. 자칫 산돼지 잡으려다 집돼지 놓칠 수도 있다. 국정 지표의 1순위인 일자리의 정규직 전환도 순기능과 역기능을 고려해야 한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29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쾌거는 시리고 먹먹한 비정규직들이 탄성을 지를 일이다. 그러나 그 내부를 내시경으로 들여다보면 수천 명 인천공항 직원 중 공식 비정규직은 29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대부분은 인천공항공사가 직접 고용한 것이 아닌 용역 계약을 맺은 협력업체 직원이다. 우리나라에는 공기업이건 사기업이건 이같은 협력업체와 용역을 맺은 비정규직이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정도로 부지기수다. 벌써부터 민주노총이 딴지를 걸고 정규직화를 주장하는 역작용이 속출하고 있는 것도 깊이 성찰해야한다.
또 경제 검찰 공정거래위원회장에 재벌 저격수로 불리는 김상조 교수가 임명된 것도 시장의 불안성 가연심리를 부추기고 있다. 물론 김 교수가 대놓고 재벌 해체를 주장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성정과 언행으로 봐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분명한 것은 공정경제를 실현하겠다는 김 위원장의 정책에 이의나 토를 달수는 없다.
다만 표적이 되고 있는 삼성이 과연 이재용 개인소유냐. 아니면 국민 기업이냐를 명확히 직시해야한다.
이재용 부회장의 지분은 전부 합쳐봐야 5% 내외다. 절반 가까이가 외국인이 소유하고 있고 또 다른 절반 가까이가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나 개인투자자 지분이다. 만에 하나 이재용 부회장이 부당하게 회사 돈을 빼돌리거나 지나친 갑질을 할 때는 당연히 메스를 가해야겠지만 그런 일탈이 없으면 ‘글로벌 기업’으로 더욱 도약하도록 지원해야한다.
우리 국민 사이에 갈수록 반기업 정서가 강하지만 우리나라 재벌은 글로벌 기업에 비해 아직 중소기업 수준이다. 현실적으로 태풍속 편주(片舟) 신세인 대한민국 경제를 먹여 살리는 곳이 삼성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 속도 조절이 필요한 분야가 최저임금이다. 대선 과정에서 후보들마다 현행 시간당 6470원인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최소 1만원으로 올리겠다고 공약해 이변이 없는 한 그대로 갈 가능성이 크다. 2016년 6030원에서 8.1%를 올려 적용하고 있는데 3년 후에 지금보다 55%를 더 올리게 된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최저임금 조정위원들이 해마다 기본급 기준으로 8%니 10%니 하며 갑론을박 하지만 이것이 득달같이 수당으로 파급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기본급이 오르면 자연발생적으로 연장 근무 수당도 따라 오르기 마련이다. 돈보다 더 급한 생산현장의 인력난은 필연적으로 평일 연장근무와 토요일, 휴일 연장 근무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기본급 1000원이 오르면 수당을 포함해 기업은 실제 줄잡아  1600원 이상을 부담해야 된다.
더구나 현재 생산현장에는 내국인의 신규 취업 기피로 외국인근로자 사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들은 8시간 근무조건은 아예 처음부터 외면하고 연장근무 수당을 겨냥해 취업하고 있다. 이들에게도 최저임금제도가 그대로 적용되고 심지어 4대 보험도 들어줘야한다. 여기에 기숙사비, 밥값, 그리고 동절기와 하절기에 작업복을 지급하고 있다. 현재 임금을 기준해도 외국인 근로자에 지급되는 월평균 임금은 280만원에서 300만원에 육박하고 있다. 그렇다면 올해 6470원이 1만원으로 최저임금이 오르면 기본급 기준으로 54.5%가 인상된다. 여기에 수당을 포함하면 사실상 80~100%가 오를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첨단 반도체나 대기업 업종이 아니고서는 기업이 지불 능력을 감당할 수 없다.
생산직 근로자에게 월 줄잡아 400만원~500만원을 지급하고 살아남을 중소기업이 몇이나 될지 걱정이다. 더구나 생산현장의 인력난이 극심한 섬유산업 같은 전통산업은 배겨날 재간이 없다.
이미 6000여 섬유 기업들이 해외로 탈출한 것도 모자라 앞으로 더 많은 엑소더스가 우려된다. 연봉 3000달러 수준의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들과 경쟁할 방법이 없다. 연봉 5000달러 남짓의 중국과도 게임이 안 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섬유를 비롯한 전통산업 모두가 냄비 속 개구리처럼 시난고난 죽어가는것은 묻지 마라 갑자생이다.

문 닫거나 해외로 엑소더스 불 보듯

노송(老松)이 무덤을 지킨다고 섬유산업 같은 전통산업이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다. 이제 섬유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 공장을 스마트하게 개편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사람을 줄이고 기계가 대신해 생산성과 품질향상을 도모해야한다. 신규 일자리 창출도 중요하지만 있는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최저임금을 3년 후 시간당 1만원으로 올리는 것은 기업의 지불 능력을 생각지 않은 과속 페달이다. 국내에서 산업이 떠나 공동화(空洞化)되고 나면 게도 구럭도 다 놓칠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대구산지 일각에서는 기업 포기설이 난무하고 있다.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면 “생존할 중소기업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허탈한 탄식을 떨칠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속결하려는 조급증은 안 된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최고의 정치는 흐르는 물과 같아야 한다(上善若水)”는 대목을 되새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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