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 맞은 한국 정치에 국민의 가슴은 화석으로 변했다. 탄핵 시계가 멈추면서 법치주의는 지켰지만 대통령을 잃은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때늦은 후회지만 통치자건 지도자건 듣기 좋은 말만 듣지 말고 듣기 싫은 말도 경청해야 하는 뼈저린 자계훈(自戒訓)을 남겼다. 박 전 대통령이 입에 쓰지만 소통과 몸에 좋은 고언(苦言)을 외면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되고 말았다.
그 와중에 국론이 분열되고 나라 곳곳이 망가지면서 인화물질이 널려있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다. 외교· 안보· 경제· 사회 전반에 적색경보가 켜져 숨을 죽이고 있다. 통렬히 반성하며 석고대죄해야 할 정치권은 대선을 앞두고 물 만난 듯 천지를 모르고 꾀춤을 추고 있다. 독설과 편 가르기로 공격하고 헐뜯고 조소하며 날밤을 새우고 있다.
거두절미하고 이번 대선에서는 구국을 위해 온 몸을 던질 국민 머슴을 제대로 뽑아야 한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면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남의 나라 지도자의 성공사례나 전략을 배워야 한다. 독일 슈뢰더 전 총리는 구조조정의 상징인 이른바 하르츠 개혁으로 정권을 잃었으나 독일을 구했다.

 

고임금 미국, 생산성· 전력료로 상쇄

일본의 다나카 전 수상은 초등학교 졸업자이지만 역대 가장 강력한 대장상으로 존경받았다. 그는 관료들에게 “일은 당신들이 하고 책임은 내가 진다”고 전권을 부여했다. 우리도 정권을 뺏겨도 나라를 구할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국민 눈물 세월호가 인양된 반가운 시점에 진짜 경제를 살릴 대통령을 선택해야 한다.
본질 문제로 돌아가 발에 채이는 것이 실업자이지만 정작 산업현장에는 사람이 없다. 인력난과 고임금이 고립무원의 한계 상황에 처한 기업들의 해외로 가는 엑소더스가 여전히 줄을 잇는다. 6000개 가까운 섬유 기업이 해외로 탈출한 데 이어 작은 행렬은 계속되고 있다.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가 물 건너갔는데도 베트남을 향한 중견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거듭되고 있다. 결국 국내는 소규모 공장만 남고 이름깨나 있는 기업은 대다수가 해외 탈출 열차에 몸을 싣고 있다.
진출 국가도 지금까지는 동남아와 중남미등지가 주축이었지만 이제는 가장 큰 의류시장인 미국에까지 소재 업체가 가세하고 있다. 국내 중견 면방업체인 삼일방이 급기야 미국에 진출했다. 그동안 효성 타이어코드와 칠성섬유를 비롯한 30여 기업이 미국에 진출했지만 면방 전문업체가 미국 시장에 직접 뛰어든 것은 삼일방이 처음이다.
이번 삼일방이 인수한 면방공장은 조지아주 애틀랜타 소재 스위스계 허만 뷸러社로 3만 2000추 규모의 면방적 공장이다. 스위스계 뷸러 본사는 창업 2005년을 자랑하는 전통 있는 기업이지만 장강의 뒷물이 앞 물의 밀어내듯 경쟁력이 쇠락한 것이다. 7만 추 규모의 스위스 본사 공장도 지난해 9월 문을 닫은 데 이어 이번 자회사인 미국 공장도 매각 완료돼 전통의 면방 회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그렇다면 경영난을 못 견뎌 매각한 뷸러사를 삼일방이 왜 인수했느냐하는 의문 부호가 붙는다. 그것도 근로자 임금이 가장 비싼 미국에 뛰어든 이유가 궁금하다.
미국의 뷸러 면방공장은 외양적으로는 12수에서 130수까지 다양한 면사와 면 혼방사를 생상하고 있지만 차별화에서 경쟁력이 떨어졌다. 순면사와 CVC 등 혼방사를 생산하지만 대부분 레귤러사다. 이들 품목은 미국의 수입관세율이 16%다. 원산지 규정의 강점에도 16% 관세는 저임금 후발국으로부터 무차별 반입 수입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삼일방은 돌파구가 무엇인지를 간파했다. 세계적인 모달· 텐셀 방적사 메이커로서 특화된 차별화로 승부를 걸고 있는 삼일방은 자신감을 가졌다. 설비를 보강하여 차별화· 특화된 면 혼방사로 승부를 걸면 승산이 충분하다고 본 것이다.
이를 위해 1380만 달러의 인수 금액은 조족지혈이다. 올해 650만 달러를 당장 추가 투입해 링과 MVS를 보강하여 차별화 면 혼방사로 전환할 방침이다. 향후 2~3년 내 3000만 달러를 추가 투입해 대규모 최첨단 면방공장으로 탈바꿈시킬 방침이다.
경북 경산 공장처럼 모달· 텐셀을 활용한 면 혼방사와 함께 관세율 16% 품목이 아닌 관세율 30%의 CVS쪽에 치중한다는 전략이다.
미국이 각국과의 FTA 협상 때마다 철저하게 고수해 온 원산지 조항을 활용하고 고율 관세품목의 차별화 전략을 강화하면 승산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생산된 제품은 지금처럼 50%는 미국 자체 내에서 소비하고 나머지 50%는 카리브지역을 중심으로 중남미 시장에서 소화할 계획이다.
모달· 텐셀 방적사의 세게 초일류기업인 삼일방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고임금 국가인 미국에 과감하게 진출한 것 또한 치밀한 계산에 근거한 것 같다. 알다시피 인근 노스캐롤라이나 지역을 봐도 인건비가 가장 비싼 샤롯 지역의 시간당 임금이 최고 16달러에 달한다. 지역별로 차이가 있어 이보다는 낮지만 임금이 다른 나라보다 비싼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단순 계산으로는 고임금이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기본급 외에 상여금, 복리후생비를 포함한 이것저것 합치면 실제 한국과 거의 같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면방공장 제조원가 중 인건비와 맞먹는 전력료가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주정부마다 일자리 창출기업에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땅값도 싸 인건비 부담을 상쇄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더구나 자동차공장에서 확연히 드러나듯 미국 공장의 생산성이 한국보다 훨씬 높은 장점이 있어 차별화 특화 전략만 제대로 강구하면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때마침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날로 강화되는 통상압력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시장성을 조사하기 위해 지난 19일 떠났던 섬유업계 미국 투자조사단이 주말 귀국했다. 성기학 섬유산업연합회장이 직접 인솔하고 6일간 노스캐롤라이나주를 돌아본 투자조사단의 소감도 삼일방의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세계에서 가장 큰 의류 시장인 미국에 직접 뛰어드는 것이 결코 무모한 도전이 아님을 생생하게 보고 느낀 것이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로 직접 들어간 결단을 평가하고 있다.

 

섬유 기업 엑소더스 마침표 찍어야

그러나 국내기업의 엑소더스가 능사만은 아니다. 수천 개 섬유 기업이 집단 탈출한 후유증은 알맹이는 거의 빠져나가고 쭉정이만 남는 부작용을 드러내고 있다. 인력난과 고임금을 못 이겨 나갈 수밖에 없는 우리 기업 환경이 문제지만 더 이상 탈출은 자제해야 한다. 국내에서도 투자하며 차별화· 특화 전략에 올인하면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 대전제는 생산 현장에 돈보다 더 급한 사람 문제 해결이다. 실업자가 아무리 많아도 생산 현장에 사람이 오지 않는 이상 백약이 무효이다 해결책은 외국인 근로자 도입 확대뿐이다. 국내 기업이 더 이상 해외로 탈출하지 않도록 정부가 외국인 근로자 도입 쿼터를 과감히 늘려야 한다. 인력난이 해결 안 되면 이미 공동화된 봉제에 이어 면방· 화섬· 제직· 편직·염색가공도 그 전철을 밟는 것은 시간문제다. 중언부언하지만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고사하고 기업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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