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 민란으로 가는 서곡이 울려 퍼지고 있다. 마주 보고 달리는 탄핵 열차가 종착역이 임박하자 찬반 대립이 극렬해져 나라가 두 동강 나고 있다. 참으로 순국선열 앞에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여 부끄럽고 면목이 없다. 98년 전 우리 선배들은 정파와 이념· 지역· 계층을 불문하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하나가 돼 피를 흘렸다. 정유년 올 3·1절은 겁나는 김정은 집단의 핵과 화학무기 앞에 우리 내부가 내 편· 네 편으로 갈려 수백만 명이 삿대질하며 무정부 상태를 드러냈다.
탄핵이 인용되면 “아스팔트에 선혈이 낭자”하고 기각되면 “혁명이 일어난다”는 섬뜩한 막말에 국민의 분노지수는 임계점을 넘어섰다. 자신의 주장과 다르면 적으로 간주하는 아사리판의 불통과 저주의 굿판이 나라 전체를 백척간두로 몰아가고 있다.
성난 민심의 돌아가는 통박을 보면 국론분열의 이 혼란상이 쉽게 사그라들 것 같지 않다. 헌재 판결이 나도 승복과 불복의 갈등은 끝이 아닌 시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구 산지 불황 극복 자신감 찾았다.

제발 촛불과 태극기 양측 모두 자중자애하며 헌재 결정을 승복해야 한다. 누구를 위한 결사항전인지 대다수 국민들은 이제 광장의 대치에 넌덜머리 내고 있음을 양측 모두 알아차려야 한다. 지금 고장 난 한국호가 침몰하고 있다. 선장이 없는 대한민국호에서 선상 반란이 일어나면 함께 공멸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본질 문제로 들어가 이 땅의 빈곤퇴치 주역이자 중화학· 첨단산업 젖줄이었던 섬유· 패션산업이 지난 20년 모진 고생을 겪었다.
급격히 상승한 임금과 현장을 기피한 인력난에 수많은 기업들이 떡쌀 담그고 간판 내렸다. 그 과정에서 순발력 강한 기업 6000개 기업이 해외로 탈출했다. 그곳이 어느 나라건 한국인이 경영하는 기업은 신산고초 속에도 성공 확률이 높았다.
국내 남는 기업이 수출 140억 달러 미만으로 축소된 데 반해 해외 진출 한국 섬유 기업들이 줄잡아 190억 달러 이상을 수출하는 기염을 보였다. 의류수출벤더의 대규모 해외 소싱을 통한 글로벌 경영이 성공하면서 너도 나도 의류 봉제 기업이 해외로 나가 돌파구를 찾았다. 원가를 낮추고 빠른 딜리버리를 위해 자연 발생적으로 원단· 염색업체가 따라갔고 어느덧 면방까지 동반 진출해 자리를 잡았다.
반면 국내에 남아있는 기업들은 불가피하게 경쟁력을 잃고 시난고난 버티기에 급급했다. 그럼에도 수많은 줄초상을 딛고 아직도 10인 이상 섬유제조기업이 5000개소에 달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세계의 공장 중국의 등장으로 한국 섬유산업이 줄초상을 겪으면서 이만큼이나마 생존하고 있다는 것이 대견스럽다. 고래 심줄보다 강한 우리의 섬유산업 생명력이다.
이 같은 우리 섬유산업에 서광의 전조등이 점차 밝아오고 있다. 20년 가까운 모진 고통 속에 내공이 쌓여 활기를 되찾는 기업이 많아졌다. 그 전조등은 미들스트림인 직물업계에서 비롯되고 있다. 니트 직물과 화섬 직물업계가 각고의 고생 끝에 비상구를 마련한 것이다.
경기 북부지역에 군웅할거하고 있는 니트 직물업계가 기민한 순발력을 바탕으로 지난해부터 경쟁력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중국과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인 열악한 여건에서도 차별화를 무기로 시장에서 살아남고 있다.
애시당초 중국과는 가격경쟁에 엄두를 못내 포기했던 오더를 수행하는 강한 내공을 쌓았다. 중국과 경쟁에서 ‘보고도 못 먹는 떡’으로 간주했던 대량 오더를 덥석 받아 생산성으로 커버하는 전략을 배웠다. 의류벤더들이 도저히 원가에 못 미치는 저가 오더를 받아 대량 생산으로 돈을 버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작년에 세아상역이 6000만 달러를 수출한 미국 바이어 룰라로의 의류 공급사인 L·A 소재 마이다이어의 지정에 따라 경기 북부 니트 직물업계가 원단을 대량 공급해 재미를 본 자신감을 확보한 것이다. 올해도 세아상역 등에서 대량 공급할 니트 의류용 원단을 이달부터 확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니트 직물뿐 아니다. 지난 10여 년간 줄 곧 시난고난하며 축소 지향을 강요받던 대구 화섬 직물도 최근 엄청난 판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 승승장구하는 덕우실업을 비롯해 하나섬유, 호신섬유 등 블라우스와 드레스용 원단 전문업체들은 수년간 불황을 모르고 엔죠이하고 있다. 폴리에스테르 정장용 수팅 직물 전문업체인 동극섬유도 일취월장하고 있다. 어려운 나일론 직물업체 중 선도기업인 현대화섬은 대규모 자체 4개 공장을 풀가동하며 아웃도어용 전문업체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중견 의류벤더이자 직물 수출업체인 B사의 K사장이 대구에서 차별화된 폴리에스테르직물 오더를 하려다 깜짝 놀랐다. 해당 업체의 직기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오더가 밀려 있더라는 것이다. 그는 “자포자기 상태인 줄 알았던 대구 산지에서 희망을 봤다”고 술회했다. 심지어 별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某 감량가공 업체는 이들 선도 직물기업과 거래하면서 지난 3년간 200억 가까이 벌었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다.
이들 선도기업들의 특징은 오너나 2세 간부들이 1년이면 10여 차례 해외에 나가 패션 트렌드를 읽고 차별화로 승부를 건다고 한다. 원사도 일반사보다 특수사 소재를 독점해 자라· H&M 등 글로벌 SPA 브랜드 또는 유럽 등지의 바이어에게 대량 공급하고 있다.
글로벌 SPA 브랜드나 유럽 바이어들은 중국에서 나오지 않는 차별화 제품은 물론 중국이 유사한 제품을 만들어도 가격 차가 10% 이내면 한국산을 선호한다고 한다. 품질 보장과 클레임 보장 등 딜리버리, 사후관리에서 한국 직물업계의 신뢰성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선도 직물업계의 활황국면은 득달같이 화섬· 면방· 사가공· 염색가공 등 관련 산업에 연쇄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 섬유산업의 발전 방향의 중심축이 미들스트림이어야 한다는 대전제를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벤더 소재업체 함께 가야 멀리 간다.

그동안 장기불황으로 고통스럽게 기업 경련을 호소하던 대구 화섬 직물업계도 이들 선도업체를 벤치마킹해 품질경쟁과 마케팅전략을 강화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 카피가 아니라 사즉생(死卽生) 각오로 독자적인 차별화 전략을 강화하면 시장에서 얼마든지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다. 경기 북부를 중심으로 한 니트 직물과 대구 산지 화섬 직물업계가 서서히 자신감을 되찾은 것은 아주 고무적인 현상이다. 기업 스스로의 각자도생 전략과 함께 정부와 단체들은 이 같은 사실을 직시하고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선 의류벤더와 대형 내수 패션 브랜드들도 자라· H&M 등 글로벌 SPA브랜드처럼 10% 이내 가격 차라면 국산 소재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이익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같은 값이면 국산 실과 원단을 사용하여 동반 성장하는 지혜와 아량이 거듭 요구된다. 세상이 바뀌어 변곡점의 꼭대기에 섰지만 ‘갑’과 ‘을’이 바뀌었다고 제 뱃속만 챙긴다면 존경받는 글로벌 기업인이 아니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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