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신년기획(下) 섬유·패션 희망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섬유패션 경쟁력 강화 방안을 수립하고 있다. 지난 1월 3일 열린 섬유·패션인 신년인사회에서 주형환 장관이 “섬유· 패션 산업을 4차 산업혁명의 주력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아직 색칠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데생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경쟁력 강화 방안의 주요 골자는 △첨단섬유 집중지원과 △융합 플랫폼구축 △수요시장 창출 등으로 요약된다. 집중지원 부문에서 탄소 섬유, 슈퍼 섬유, 스마트 섬유, 메디칼 섬유 등 첨단섬유를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물 없는 염색기술 등 핵심 소재와 친환경을 선도하는 산업을 집중 육성하는 것도 포함돼있다. 이를 위해 올해부터 5년간 이 부문에 총 3500억 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또 연간 매출 1조 원에 달하는 아모레퍼시픽 화장품 브랜드 같은 글로벌 패션브랜드를 육성할 것을 비롯 6주 이상 소요되는 의류 샘플 제작을 일일 서비스가 가능토록 하는 등 융합 플랫폼 구축도 실현할 계획이다. 수요시장 창출을 위해 나만의 의류 제작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도록 지원하는 방안도 함께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 경쟁력 강화 방안 기대

의류용 및 산업용 첨단섬유산업을 육성하고 의류패션산업을 육성하는 것은 필연적인 논리이자 현실적인 대안으로 크게 환영할 일이다. 우리 업계도 물 들어올 때 배 띄우는 정신으로 정부 정책에 맞춰 전력투구해야 할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미래 먹거리를 위한 첨단섬유 육성도 중요하지만, 현존 산업의 안정 성장을 통한 성장 동력 또한 발등의 불이다. 첨단, 첨단 하는 장밋빛 청사진에 치우쳐 현실적인 섬유 패션산업의 동반 성장을 소홀히 하면 게도 구럭도 다 놓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90년대부터 난파선에 쥐 빠져나가듯 해외로 탈출한 섬유 기업이 6000개에 달한다. 고임금과 인력난에 못 이겨 엑소서스를 몰고 온 봉제 산업부터 공동화(空洞化)된 지 오래다. 봉제가 떠나면 현지조달의 불가피성으로 제직·편직이 가고 바늘과 실인 염색가공도 함께 떠날 수밖에 없다. 봉제· 제직· 편직· 염색뿐 아니라 면방업체까지 탈출 행렬에 참여해 면방 대기업도 이미 베트남에 둥지를 틀었다.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듯 일본이 한국에게 당한 전철을 한국이 똑같이 중국에 당했다. 국내에 남아있는 섬유 기업들은 시간이 갈수록 시난 고난하며 간판을 내리거나 축소지향 일변도로 지난 20년을 보냈다. 이 같은 현상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정부가 첨단산업 육성을 강조하는 것 못지않게 남아있는 국내 섬유산업을 살리는 쪽에도 무게를 둬야 한다. 알맹이는 다 소멸되고 쭉정이만 남은 상태에서 첨단만 부르짖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다행히 궁즉통(窮則通)이라고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실감 난다. 수렁으로만 빠져들던 국내 섬유산업이 장기 불황에 대한 내공이 쌓이면서 서서히 위기 탈출의 서광이 비추기 시작했다. 고임금과 인력난의 고통에서 막다른 길에 몰린 국내 섬유산업이 사즉생(死則生) 각오로 이를 악물고 나선 결과 비상구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첨단의 개념을 거대한 슈퍼섬유나 탄소섬유에만 적용한 것이 아니라 차별화가 바로 첨단이었고 이것이 시장에 먹혀들고 있다. 산업용은 물론 의류용 소재의 차별화를 통해 다양한 신소재가 나오고 이를 응용한 제직 · 편직 기술과 사가공· 염색가공기술이 급진전되고 있다.
동시에 섬유산업의 허리 부문인 니트 직물과 화섬· 교직물 분야에서 대량생산을 통한 가격 경쟁력의 진수를 확인했다. 애시당초 중국과는 가격경쟁이 불가능한 것으로 체념했던 데서 탈피해 중국과 거의 같은 가격으로 맞짱을 떠 성공한 것이다. 가격 조건이 낮아도 대량 오더를 수주만 하면 동업계가 나서 주· 야간 풀가동하는 생산성으로 원가절감이 가능한 사실을 작년부터 제대로 알아차렸다. 경기 북부 니트업계가 지난해 경험한 성공사례가 이를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바이어들은 가격이 비슷하면 한국산을 선호하게 돼 있다. 품질 안정과 사후 서비스에서 중국과는 차원이 다른 비교 우위를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업계가 이제 가격경쟁에서 오는 중국 공포증을 과감히 털고 정면 승부할 때가 왔다. 적어도 직물 부문에서는 뒤질 요소가 많이 사라진 것이다. 중언부언하지만 크건 작건 오더를 일단 받으면 원사에서부터 제직·편직·염색 가공 각 스트림에서 조금씩 양보해 공동 전선을 펴면 수출용이건 내수용이건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때마침 중국에 밀려 고립무원의 한계상황을 꺾었던 화섬 업계가 차별화 전략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범용품으로는 중국과 싸워 계란으로 바위 치기임을 알고 10여 년 전부터 각고의 노력을 펴 온 화섬업계의 차별화 전략이 본격 빛을 발하고 있다. 면방업계도 코마사에 집중해 너 죽고 나 죽자는 투매 경쟁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포화상태인 코마사 생산을 과감히 줄이고 다양한 혼방사로 전환해 채산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더욱 기대되는 것은 한·미 FTA 발효 6년을 맞아 초창기 관세 즉시 철폐품목에 이어 10년 양허 기간과 관련해 올해로 60% 관세가 감면되고 있다. 높은 관세를 물고 있는 중국 등에 비해 훨씬 유리한 가격경쟁력이 생긴 것이다. 여기에 품질 좋은 중· 고가 하이패션 오더를 가장 빨리 딜리버리할 수 있는 곳은 전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는 점에서 오더가 몰려오고 있다. 대형 의류 소싱 공장은 국내에 어렵지만 50명~100명 내외 봉제공장은 앞으로 얼마든지 생성될 수 있는 여건이다.
중언부언하지만 정부가 첨단만 부르짖을게 아니라 중소 봉제공장 생성을 위해 과감하게 눈을 떠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내 고급원단을 사용하면 봉제 산업도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국내에 봉제 산업이 활성화되면 자연 발생적으로 직물 원단산업이 동반 성장할 수 있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원단산업의 활성화는 화섬· 면방· 사가공· 염색 산업의 연쇄반응으로 이루워지는 것 또한 자명한 일이다.
이 모든 점을 종합해 볼 때 국내 섬유산업이 수렁에서 탈피할 수 있는 중대한 전기가 마련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탄소, 아라미드, 메디칼, 스마트 섬유 산업육성과 함께 현재의 업· 미들· 다운 스트림의 연계 육성책이 강구되면 다시 한번 성장 동력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아쉽고 안타까운 것은 해외 바이어는 물론 대형 의류 수출벤더와 패션브랜드들이 아직도 국산 소재가 비싼 것으로 뿌리 깊게 각인 돼 있다는 사실이다. 실상은 비싸지 않은데 고정관념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산 소재 가성비 우월성 알려야
화섬사나 면사 가격도 경쟁국보다 비싸지 않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하고 니트 직물이나 우븐 직물 불문하고 국산 원단이 중국산보다 품질은 앞서고 가격도 비싸지 않다는 사실을 제품에 반영해야 한다.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드는 마부위침(磨斧爲針) 각오로 제품을 만들고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원가를 낮춰 정상 제품을 중국산보다 같은 값에 만들어 공급해야한다. 싸고 좋지 않은 원단이나 원사를 사줄 얼간이는 아무도 없다.
이 같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수요자에게 국산소재 사용을 요구해야한다. 국내외 의류 벤더나 패션브랜드들이 이 점을 믿고 마음 놓고 구매할 수 있는 그런 풍토가 조성돼야한다. 이를 위해 각 기업들이 팔소매를 걷고 수요자를 설득해야 한다. 기업뿐 아니다.
수많은 섬유· 패션 단체장들이 같은 값이면 품질 좋은 국산소재를 사용하도록 수요자들을 찾아가 설득해야한다. 국제섬유신문이 앞장서 국산 소재 10% 더 쓰기 운동 캠페인을 벌이는데 업종별 단체가 팔짱을 끼고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가격대비 품질 좋은 가성비를 앞세워 실수요자를 설득하고 인식시키는데 관련 단체가 동참해야 한다. 같은 값인데도 국산을 외면한 수요자가 있다면 지탄받아 마땅하다. 지금이 ‘주식회사 한국 섬유· 패션 산업호’가 순항하기 위해 함께 나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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