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나라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다. 촛불정국에 수백만의 평화행진을 높이 평가하지만 침몰 위기의 한국호는 태풍 후 편주(片舟) 처지다. 하야이건 탄핵이건 하루속히 매듭을 지어 한국호가 정상 항해하길 학수고대한다. 발등의 불인 경제가 거덜 나면서 입 달린 사람 모두 “못 살겠다” 아우성이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대통령을 향한 국민의 분노지수가 임계점을 넘어선 것은 부인 못할 사실이다. 5천만명 속의 2백만이 아닌 200만이 대변한 5천만의 심정일 수 있다. 그러나 성을 쌓는 데는 10년이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지난 반세기 세계 유례없는 압축 성장으로 오늘에 이른 대한민국을 이대로 침몰 시킬 수는 없다. 백척간두에 선 나라를 살리기 위해 온 국민이 인내와 지혜를 모아 자기 일에 전력 투구하는 길밖에 없다. 대통령과 정치권부터 국민의 치솟는 분노와 눈물을 달래기 위해 비장한 각오로 결단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다.

영업이익 주가 반 토막 났다.

본질 문제로 돌아가 최근 한국거래소가 밝힌 12월 결산 상장사의 3분기 경영실적을 보는 순간 억장이 무너짐을 떨칠 수 없다. 수출이건 내수이건 섬유· 패션 기업 거의 대부분 날개 없이 추락한 것이다. 불황에 장사 없다고 내놓으라 하는 초우량 기업들도 영업이익이 반 토막 났다.
한세실업 같은 잘 나가는 벤더까지 3분기 영업이익이 작년보다 무려 55%나 급감했다. 이 같은 실적 부진을 반영해 주가도 반 토막 났다. 한세의 시가총액이 작년 보다 무려 1조 원이 날아갔다. 원래 니트의류 벤더들은 3분기가 마의 비수기인 점을 모르는 바 아니다. 3분기 주력 생산품이 겨울용 제품이기에 니트의류는 겨울용 중· 의류와 동떨어져 일감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3분기 불황은 매년 같은 현상이란 점에서 작년보다 매출은 21% 감소했고, 영업이익이 55%나 격감한 것은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세실업은 S/S 시즌 제품 생산이 몰리기 시작한 4분기부터 많이 회복되겠지만 업계의 반응은 몹시 실망스럽다는 표정이다. 한세뿐 아니다. 중견 상장 니트의류벤더인 윌비스도 매출은 3분기에 8% 줄어든 데 비해 영업이익은 거의 10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십 수년간 역주행을 모르고 일취월장하던 기라성 같은 의류수출벤더들이 속절 없이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글로벌 시장 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고 있다는 증거다.
면방· 화섬업계도 고통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일신방직 같은 우량 면방업체도 3분기에는 영업이익이 작년보다 12%나 감소했다. 물론 영업이익은 43억 원을 상회했지만 작년보다는 감소한 것이다. 전방과 대한방직을 비롯한 많은 면방업체들이 여전히 적자를 탈피하지 못한 채 3분기에도 눈덩이 적자를 기록했다.
화섬 역시 한심한 것은 마찬가지다. 휴비스 같은 우량기업도 3분기에 매출은 작년 보다 10% 준 대신 영업이익은 70%나 빠졌다. 폴리에스테르사 쪽에서는 상장, 비상장 가릴 것 없이 화섬 메이커 모두가 적자 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화섬직물과 니트직물수출을 병행하고 있는 성안이 적자를 지속하고 있는 것을 보면 대구 직물업체가 얼마나 혹독한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해외진출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태평양물산처럼 안정된 기업도 3분기에 무려 눈덩이 적자 속에 적자 지속의 불명예를 안았다. 심지어 세계적인 초우량기업 영원무역도 3분기 중 영업이익이 529억 원에 달해 난공불락 1위이지만 작년 동기에 비해서는 18%가 빠졌다. 물론 영원무역은 세계적인 자전거 브랜드인 스콧실적이 다소 부진해 이를 반영한 것이 영향을 준 것이지만 작년보다 다소 빠진 것은 사실이다.
내수패션기업의 한숨 소리는 더욱 요란하다. 현대백화점에 인수된 한섬을 제외하면 하나같이 곡소리를 냈다. LF는 3분기 매출이 작년보다 8% 빠졌고 영업이익은 작년보다 228%나 폭증했지만 규모는 48억 1600만 원에 그쳤다. 매출 3100억 원에 이 정도 영업이익은 한섬의 매출 1472억에 영업이익 132억 9000만 원과 천양지차다.
우량 기업 휠라코리아는 3분기 매출 1755억 원에 영업이익이 62억 6300만 원에 그쳐 매출은 전년보다 10% 감소했으나 영업이익은 작년 동기보다 68%나 급감했다. 세아상역 가족인 인디에프 역시 3분기에 매출은 7% 증가 했으나 영업이익은 무려 44억 2300만 원의 영업 적자를 보여 적자지속의 불명예를 탈피하지 못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비상장 패션기업들의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닐 것으로 보여진다.
속고 사는 것이 인생이지만 행여나 하는 내년 경기 전망도 불길한 전조등이 켜지고 있다. 안 밖으로 몰려오는 삼각파도에 최순실 게이트 이후 국정공백까지 겹쳐 우리 경제가 고립무원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OECD가 내년 한국경제 성장률을 2.6%로 하향 조절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소비와 투자, 수출 지표가 하나같이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내년 실업률이 IMF환란 때와 같은 3.9%로 예고되고 있어 실업대란은 받아놓은 밥상이 되고 있다. 실업대란은 필연적으로 소비를 위축시키고 내수 경기 침체의 바로미터다.
이 같은 경제 비상사태에 대비해 기업현장에서는 마른 나무 기름 짜기로 사즉생(死卽生)전략에 올인 할 수밖에 없다. 이 위기에 살아남는 자가  승자란 각오로 경쟁력 확보에 총력전을 전개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 더욱 절실한 것은 정부의 적극적인 산업정책이다. 기업이 살기 위해 천신만신 뛰고 있을 때 이를 당기고 밀어주는 역할은 정부의 지원정책이다. 적어도 기업의 설비투자나 기술 개발 투자에 파격적인 지원이 시급한 것이다. 지금 같은 어려운 여건에서 기업이 설비투자를 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이다. 웬만큼 자신감이 없으며 설비투자에 엄두를 내기 어렵다.

설비· 기술투자 지원 구두선

그럼에도 지금 돌아가는 설비자금 지원은 구호와 구두선에 그치고 있다. 정부는 설비자금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금융권 문턱은 높기만 하다. 대구 어느 기업이 100억 원 이상의 자금을 투자해 설비를 확장하는 데 은행에서 설비자금을 안 줘 애를 먹고 있다. 그 흔한 창업자금을 이용하려고해도 한도가 없다고 안면 바꾼다는 것이다. 이웃 일본이 설비자금은 규모를 가리지 않고 무이자 가까운 저리로 파격 지원하고 있는 것과 대조를 보이고 있다.
또 제조업 생산현장에는 돈보다 더 급한 것이 사람이다. 아무리 실업대란이 심해도 생산현장에는 사람이 없어 50~60대 노령층이 겨우 지키고 있다. 공장을 세울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밖에 없지만 외국인 근로자 고용 허가 규정에 이것저것 대못이 박혀 이마저 녹록치 않다. 인원 배정 쿼터가 턱없이 작고 이마저 이런 저런 규제 때문에 제대로 조달할 수 없다. 오죽하면 악에 받친 섬유 제조업체회원사를 대신해 관련 단체 대표가 1일 법무부를 시발로 정부부처에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겠는가. 노동부, 산업부, 총리실까지 방문해 외국인 근로자 고용규정개선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세금 많이 내는 기업인이 애국자다. 지금 이 순간도 기업현장에는 뒤주가 빈 데다 돈보다 더 급한 사람이 없어 피 말리는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전대미문의 최순실 게이트에서 탈출해 모든 국정이 제대로 작동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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