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많이 아프다. 어안이 벙벙해 중증 우울증과 함께 집단 실어증에 걸렸다. 또 다시 200만 개의 촛불이 내려오라고 거듭 닥달한다. 탄핵과 별도로 하야를 외친다.
광우병 파동 때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뒷산에서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박대통령은 구중궁궐 적막강산에서 메아리치는 하야 함성에 피가 거꾸로 솟을 수밖에 없다. 나라 꼬라지가 어쩌다 이 모양 이 꼴이 됐는지 안타까움을 넘어 분통이 터진다. 하야이건 탄핵이건 이 길 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인지 무력감이 앞을 가린다.
국민의 소중한 주권을 엉터리 아낙네에게 넘겨 전대미문의 국정 유린   사태를 촉발한 대통령의 잘못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비분강개한 국민이 엄동설한에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것이다. 그렇다고 200만 촛불행진이 야당 지지로 착각한다면 그 또한 헛된 미망임을 알아야한다. 어찌 됐건 이 혼란의 식물정권이 길어질수록 정권도 나라도 결딴날 수밖에 없어 걱정이다. 진정 수습 방안은 묘연한 것인가.

외화내빈 섬유산업 구조 고도화 전략

본질 문제로 돌아가 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인도 자이푸르에서 열린 ITMF(국제섬유제조업자협회) 연차총회에서 아주 기분 좋은 낭보가 날아왔다. 우리나라 섬유· 패션 산업 수장(首長)인 성기학 한국섬유산업연합회장이 차기 회장으로 가는 수석 부회장에 선출된 것이다. 한국 섬유패션 수장이 2년 후 국제 대표적인 기구의 수장을 예약한 것은 성   회장의 개인적인 영예뿐 아니라 한국의 섬유· 패션 산업 위상에도 큰 변화가 예상돼 쌍수로 환영한다.
사실 전 세계 30여 개국 100명 가까운 대표가 회원으로 있는 ITMF 회장은 성 회장이 한국인 처음은 아니다. 지난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서민석 전 방직협회장(동일방 회장)이 맡은 바 있다. 서 회장은 다년간 이 기구 회의에 참석하면서 각국 대표들과 친교를 가졌고 일반 부회장, 수석 부회장으로 4년간 재임한 후 회장이 됐다.
반면 성기학 회장은 단 2회 연차총회에 참가하면서 전체 회원국 대표의 만장일치로 차기 회장 티켓을 따는 파격을 보였다. 이는 지난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연례 총회에서 ‘글로벌 브랜드의 소싱 조건’이란 주제로 특강을 한 것이 각국 대표에게 깊은 감명을 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특강에서 성 회장은 세계 섬유 제조업이 가야 할 진로를 제시해 참가국 회원들로부터 열띤 갈채를 받았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영향력 있는 회원국 대표들이 영원무역 방글라데시 공장을 방문해 규모에 놀랐고 경영 노하우에 탄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원국 대표 모두가 탁월한 글로벌 기업인 성기학 회장에 대한 인지도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단박에 2년 후 회장이 되는 수석 부회장으로 만장일치 선출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섬유· 패션 산업 위상과 발언권이 그만큼 커지는 것은 불문가지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우리의 섬유산업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추세이지만 국제 섬유· 패션업계의 시각은 다르다는 사실이다. 전임 왕티엔카이 회장의 뒤를 이어 중국 방직공업연합회장으로 선임된 손루이쯔 회장은 이번 ITMF 연차총회에서 “한국 섬유 수출이 감소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해외 소싱을 통한 수출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섬유대국” 이라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한국 국내 수출에서 감소된 규모이상으로 해외공장 경영을 통해 벌충하고도 남는 저력을 각 국 대표들에게 강조했다고 한다. 중국 섬유업계 수장의 이 같은 발언은 한국 기업인의 글로벌 경영전략이 적중하고 있음을 직시한 것으로서 선진 경영에 일종의 부러움을 표시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전 세계 어느 곳에서건 한국인이 운영하면 거의 성공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찬사는 귀에 순하지만 우리 입장에서 안주할 상황은 못 된다는 점을 직시해야한다. 안주는커녕 쇠락의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는 국내 섬유 산업의 재도약 전략이 발등의 불이다.
아무리 섬유산업에 대한 노하우가 강하고 세계 전역에 광범위한 시장을 구축하는 마케팅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도 현실적인 벽을 무너뜨리기 어렵다.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듯 고임금과 인력난의 악조건   속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고임금과 인력난의 직격탄은 봉제산업에서 비롯돼 90년대부터 수천업체가 해외로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 국내 봉제산업이 공동화될 수밖에 없어 심한 표현으로 알맹이는 다 빠지고 쭉정이만 남았다. 면방, 화섬, 직물, 염색업체는 봉제가 가더라도 국내서 생존할 것으로 봤지만 그것은 중대한 착각이었다.
더 크게 더 싸게 추세에서 봉제생산은 원부자재 현지 구매로 급속히 쏠리고 말았다. 중국, 베트남, 방글라데시 심지어 카리브지역에서 원부자재 현지 조달이 대세가 되고 말았다.
상대적으로 한국에서의 조달은 쪼그라들 수밖에 없고 결국 제직· 편직은 물론 면방· 염색까지 보따리 싸고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임금은 한국보다 10분의 1, 5분의 1에 지나지 않고 양질의 청년 근로자가 풍부한 나라로 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결국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남은 국내 산업의 축소 지향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설상가상 지난 10년간 위기에 몰린 국내 원부자재산업의 돌파구 역할을 했던 개성공단마저 폐쇄돼 진출업체뿐 아니라 모든 협력업체까지 젓 담아버렸다. 내수업계 고통뿐 아니라 섬유 수출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작년 섬유 수출이 가까스로 143억 달러를 유지했으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전년보다 10% 이상 줄어들었다. 올해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폭 감소될 수밖에 없다.
이 땅의 빈곤 퇴치 주역인 섬유산업은 무역흑자 일등공신이었지만 지금은 이것마저 옛날 일로 돌아가고 있다. 섬유부문에서 작년에 1억 5700만 달러의 무역적자를 시발로 올해는 자그마치 15억 달러 내외의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갈수록 적자폭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고임금 인력난의 결정적인 악재를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앉아서 내려앉기를 기다리는 천수답 행태를 방관할 수는 없다. 또 전체 스트림을 다 육성 시키려면 재원도 능력도 없다. 성장 동력이 가능한 스트림을 골라 선택과 집중할 수밖에 없다. 결론은 섬유 스트림 중 허리 부문인 직물 연관 산업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니트 직물과 화섬· 교직물 분야는 우리가 잘하고 있고 향후에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전부 함께 갈 수 없다면 선택과 집중을

수출 섬유류 중 거의 60%가 니트 직물과 화섬· 교직물 등 직물류다. 아직도 연간 80억 달러 규모를 수출할 수 있는 품목은 직물류 밖에 없다. 그만큼 차별화가 진전돼 있고 광범위한 시장과 함께 노하우가 강한 품목이다. 하기에 따라 직물산업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승승장구할  수 있다.
문제는 구조 고도화다. 일부 기업을 제외하면 아직도 노후화된 직기와 편직기에 의존하고 있다. 새 직기로 바꾸어야 인력도 줄이고 생산성으로 승부할 수 있다. 20~30년 된 노후된 염색 설비도 개체해야 하고 직물 차별화의 바로미터인 사가공쪽의 고도화도 발등의 불이다.
섬유 스트림의 허리 부문인 직물산업이 잘되면 면방, 화섬, 염색, 사가공 심지어 하이패션 봉제까지 잘 될 수 있다. 전부 살리려다 하나도 못 살릴 수 있다. 하나라도 제대로 살려 전부에게 파급되는 효과를 거둬야 한다. 중언부언하지만 직물산업 발전이 섬유산업 발전의 핵심 요체임을 알아야한다. 정부 당국부터 이 같은 충고를 제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만큼 죽 쑤어 식힐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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