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다. 이젠 어지러워 현기증이 난다. 파국의 서곡이 끝간 데 없이 울려 퍼지고 있다. 바람 불면 꺼질 줄 알았던 촛불이 들불로 번지고 있다. 20만이 100만으로 또 다시 200만 명으로 늘어날 촛불민심이 겁난다. “내려와라” “못 내려간다.” 버티기와 밀어내기로 사생결단하는 청와대와 여야정치권의 뻔뻔함에 진력이 난다. 돌아가는 통박이 하야는 어림없고 탄핵도 쉽지 않다. 검찰보다 더한 특검조사도 4개월 이상 걸리고 누가 뭐래도 현직 대통령은 형사소추가 불가능하다.
쇠가 너무 강하면 부러진다. 야당도 영수회담하고 책임총리· 거국내각으로 물꼬를 터야한다. 민란(民亂)으로 정권을 무너뜨린 후유증을 감당하기 어렵다. 나라 걱정하는 국민정서도 더 이상의 혼란을 원치 않는다. 경제가 거덜나고 북한 핵위협에 안보도 걱정이다. 트럼프 당선의 돌출변수와 이중적인 중국의 농간을 직시해야한다. 가라앉고 있는 대한민국호에서 ‘너 죽고 나 살자’식 혈투는 한국을 지렁이로 만드는 풍전등화임을 알아야한다.

조선· 해운 못지않게 섬유도 급하다.

본질문제로 돌아가 지난 주 강남 세텍(SETEC)전시장에서 열린 올해 ‘대한민국패션대전’에서 산업부 도경환 산업기반실장과 잠시 대화했다. 그는 정부에서 섬유· 패션산업 육성뿐 아니라 조선· 해운산업 구조조정을 주도한 핵심 멤버다. 한진해운을 산업과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배제한 채 금융권 시각에서 법정관리로 몰고 간 후유증을 수습하느라 밤잠을 설치며 대안을 마련했다. 중장기적으로 조선· 해운산업 구조조정에 17조원 이상을 투입해 살려내겠다는 정책수립의 핵심이다.
그는 유럽공관에서 장기 근무하며 섬유· 패션에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당면한 글로벌브랜드 육성과 디자이너 육성의 당위성과 지원에도 적극성을 보였다. 대한민국패션대전이 나날이 발전하는 모습에 찬사와 갈채를 보내는 도실장에게 필자가 당돌하게 한마디 제안했다. “조선· 해운산업 구조조정에 17조원을 투입하는 것도 좋지만 제조업 수가 가장 많고 고용효과가 큰 섬유· 패션산업에도 조(兆)단위 구조고도화자금을 지원해달라”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조선· 해운산업뿐 아니라 섬유산업의 구조고도화가 ‘발등의 불’이라고 역설한 것이다.
패션업계 잔치 행사에 섬유에 비중을 둔 듯한 필자의 발언이 배석한 디자이너들에게 다소 생뚱맞게 들릴지 모른다. 그렇지만 정부에서 산업의 구조조정정책을 맡고 있는 핵심 간부에게 섬유산업의 실상을 짧지만 정확히 재인식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필자가 도실장에게 부언해서 얘기했다. “한국 화섬업계 근로자 연봉이 5만 달러이고 베트남 근로자 연봉이 3000달러”라고 전제하면서 풍부한 젊은 인력과 저임금, 한국보다 낮은 전기료, 그리고 한국보다 훨씬 현대화된 자동화설비의 경쟁국과 싸우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 아니냐”고 강조했다. 다만 축적된 기술과 우수한 디자인력· 소재의 차별화와 마케팅력, 순발력을 갖고 있는 섬유패션산업이 “구조고도화만 이루워지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설명했다.
필자가 배석한 주소령 섬유패션과장이 공유하도록 강조한 것은 섬유산업내부를 내시경으로 들여다보면 ‘이대로는 안된다’는 절박감이 순간순간 다가오기 때문이다. 경쟁국인 중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까지 자동화설비로 무장하며 규모경쟁으로 치고 나오는 상황이 오금을 저렸기 때문이다.
우리업계가 아무리 아전인수로 생각해도 냉철히 분석하면 낙조가 드리워진지 오래다. 이미 6000개 가까운 기업이 해외로 탈출한 것이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섬유패션산업이 건재하고 발전과정이 보이면 무엇보다 해외 유력바이어의 바잉 오피스와 에이전트가 포진하며 구매업무를 담당한다. 아쉽게도 한국에는 그 많던 바잉 오피스나 에이전트가 홍콩과 중국, 베트남등지로 떠나고 극소수 몇 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소싱기지가 없는 나라에 비싼 사무실 운영비를 쓰며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국내 섬유기업들이 떡쌀 담그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 전략과 고단위 대안이 나와야 할텐데 그게 갈수록 가물가물해지고 있다. 시난고난 버티고 있는 생산현장에는 고임금에도 인력이 없어 50~60대 노인이 지키고 있다. 신규 젊은 인력이 유입되지 않아 그나마 향후 5~6년이면 고갈될 위기다. 개성공단이 결딴나지 않았으면 원부자재 분야라도 유지될텐데 허망하게 끝나고 말았다. 가설이고 뜬소문이길 바라지만 최순실의 고춧가루 훈수가 작용해 개성공단이 문 닫았다면 소가 웃을 짓을 한 것이다.
공동묘지마다 핑계없는 죽음은 없다지만 쪼그라드는 원인을 경기탓으로 돌리는 타성은 봉건적인 개념이다. 작년 경기가 금년보다 호황이고 올 경기가 내년보다 호경기일 정도로 시장은 변곡점의 꼭대기에서 시장 흐름자체가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오프라인이 퇴조하고 온라인이 대세를 이루면서 섬유· 패션산업이 갈수록 질곡으로 떨어지고 있다.
수요는 오프라인이 줄면 온라인이 상승하지만 문제는 가격폭락이다. 미국과 유럽의 초대형 백화점과 체인 스토아 등 리테일러 매출이 급감하고 아마존닷컴 같이 온라인이 수직상승한데 따른 가격폭락이다. 어제가 옛날일 정도로 단가가 떨어져 원가경쟁에서 절대 불리한 한국 섬유· 패션업계에 치명상을 안겨주고 있다.
하나의 예증으로 국내 굴지의 의류벤더가 지난주 협력업체에 오더발주를 하면서 지난해 피스 당 1.80달러하던 CMT 베이스 가격을 무려 1달러로 조정하자고 요구했다. 1.80달러에 맞추는데도 마른수건 쥐어짜기로 버티었는데 무려 80%가까이 내리자는데 어안이 벙벙해 포기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시황이 그만큼 절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국내 섬유산업을 이만큼이나마 유지하는데 기여해 온 대· 중소벤더들마다 오더 기근으로 자가공장 가동에도 헉헉거리고 있다. 베트남공장은 TPP를 대비해 바이어 압력대로 100개 라인 당 250억원이 투입되는 투자부담을 안고 수백개 라인을 경쟁적으로 확장한 후유증이다.

얼은 발에 오줌누기식으론 안된다.

바이어들의 속셈은 더욱 야박해져 이 같은 벤더의 약점을 이용해 매년 후려치기를 반복하고 있다. 대형벤더들은 웬만하면 오더 단위당 1만 피스 미만은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지금은 1000장 2000장도 수용하고 있다. 연간 수출 2억달러 미만 중· 소형 벤더들은 대형벤더의 영역침범으로 속수무책으로 오그라들고 있다.
대형 또는 중견벤더들의 경영환경 또한 갈수록 녹록치 않다. 지금까지는 바이어로부터 가격이 깎이면 원부자재나 협력업체에 전가시켜 일정마진을 유지해왔다. 그렇지만 원부자재 협력업체의 가격 인하도 바닥 아래 지하실까지 도달해 더 이상 깎아내릴 수 없는 처지다.
시장이 이렇게 급변하며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섬유패션업계의 대응책은 무대책이다. 구조고도화가 발등의 불인데도 첨단설비투자나  기술개발· 차별화· 마케팅전략은 제자리걸음이다. 투자하고 기술개발하는데 의욕도 자신감도 잃은 곳이 너무 많다. 천수답 경영은 소멸로 가는 지름길이다. 업계의 힘이 부치면 정부가 나서 구조고도화를 지원해야한다. 다만 전체 스트림을 지원할 수는 없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이 절체절명의 상황인데도 얼은 발에 오줌누기식 정책일 뿐이다. 답답하다 못해 분통이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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