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섬유· 화학· 생명과학 기업인 일본 도레이가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도쿄에서 아주 특별한 창립 9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1926년에 창립된 도레이는 지난해 기준 매출 22조원에 영업이익 1조 6000억원을 기록한 초우량 기업답게 기념행사를 성대하면서도 가치 있게 전개했다. 동경 시내 국제 포럼홀에서 5000명이 참석한 심포지엄을 개최했고 도레이가 생산한 모든 첨단 제품을 모아 전시회를 가졌다.
직원 수가 4만 6000명에 전 세계 26개국에 254개 그룹사를 보유하고 있는 도레이는 시가 총액이 16조에 달하는 세계적인 기업임은 알려진 사실이다. 섬유사업을 중심으로 플라스틱· 케미칼· 정보통신· 재료기기· 탄소섬유· 복합재료· 환경· 엔지니어링· 생명과학 등 다양한 사업 제품을 직접 전시했다.

日도레이 ‘소재로 세상을 바꾼다’

‘소재로 세상을 바꾼다’는 슬로건 아래 전개된 첨단재료전에는 의류용은 물론 탄소 섬유 소재 등을 활용한 각종 첨단 제품이 선보여 방문자들이 탄성을 자아냈다. 1개 기업의 첨단재료 전시회 답지 않게 한국의 PIS참관자만큼 구름인파가 몰려 도레이의 기술력에 놀라움과 찬사를 보냈다.
매머드 첨단제품 전시회뿐 아니라 노벨상 수상자와 재료 과학 권위자들의 특강을 통해 미래사회의 진화와 대응책을 제시했다. 그 중에는 노벨상 수상자인 이스라엘 공과대학 교수의 ‘인류는 모든 질환을 극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주제 발표로 참석자들의 감탄을 받았다. 또 동경대학교의 유명한 재료공학과 교수 등 ‘재료공학에 있어서의 원소전략’에 대한 특강도 공학계에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어 일본의 이화학 연구소 박사는 ‘손상된 망막 재생의료기술’에 대한 특강을 통해 실명위기의 눈질환 치유방안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올해 노벨상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오스미 요시노리박사와 지난해 수상자인 오무라 사토시박사등 많은 석학들이 참석했다.
또 이날 심포지엄에는 도레이의 탄소섬유를 비행기 날개 소재로 사용하고 있는 미국 보잉사 사장이 ‘항공산업의 소재변화’에 대한 특강을 하기도 했다. 올해가 도레이 창립 90주년이고 미국 보잉사 창립 100주년을 기념해 니카쿠 아키히로 도레이사장의 초청으로 연단에 선 보잉사 사장은 도레이의 탄소섬유 효율성을 극찬하며 양사 간 영원한 동반 성장을 다짐했다. 아직 일본에 비해 걸음마 단계인 한국의 탄소섬유수준으로 봐 앞으로 과연 보잉사와 도레이가 찰떡처럼 공조한 탄소섬유시장에 뚫고 들어갈 틈새가 있을지 걱정할 정도였다.
도레이는 다양한 사업 아이템을 전개하는 세계적인 기업이지만 아직도 섬유비중이 44%에 달할 정도로 절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번 심포지엄의 특징도 단순한 사업 관련 내용이 아니라 미래와 건강을 주제로 학회· 산업계의 권위자를 초청해 많은 것을 일깨워주는 특별한 기획이었다.
필자가 도레이의 다각경영의 현장을 이번 90주년 기념 심포지엄과 첨단제품 전시회를 통해 전해 듣고 문득 기억나는 한 가지가 생각났다. 지금부터 꼭 30년 전 필자가 일본 섬유산업 물동량이 가장 많은 오사카 섬유산업 동향을 취재한 일이 있다. 당시 한국에서 가장 큰 화섬· 직물 생산 수출업체인 동국무역의 오사카지점장인 권모씨와 만나 일본 섬유시장 동향을 귀동냥할 때였다. 권지점장은 안경을 닦으며 “석달전 백내장 수술을 받았는데 아주 잘 보인다”고 문득 지나간 얘기를 했다. 수술 과정에서 질 좋은 인공수정체를 삽입했으며 “성능이 아주 좋다”고 말했다. “인공 수정체가 독일산이냐”고 물었더니 “도레이 제품” 이라고 말해 도레이가 인공수정체나 콘텍트렌즈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기업임을 처음 알았다.
다각경영에서 도레이의 신기술 명성에는 호황기나 불황기 가리지 않고 3000명이 가까운 전문연구진의 거대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사업 각 분야의 권위자들이 안정적으로 연구에 몰두할 수 있다는 것은 첨단 신기술개발의 산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화섬 대기업들이 경기가 조금만 부진하면 득달같이 연구소 축소부터 저지르는 행태와는 천양지차다. 한국의 기업연구소가 도레이의 10분의 1은 고사하고 20분의 1만 유지해도 차별화 기술개발이 이토록 낙후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언부언 하지만 일본의 유니클로가 성공한데는 도레이의 역할이 절대적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유니클로와 도레이는 소재개발을 함께하면서 시장 분석도 병행한다. 대박을 터뜨린 발열섬유 ‘히트텍’을 개발해 유니클로가 사용하면서 전세계 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철석같은 찰떡궁합으로 도레이와 유니클로는 동반 성장하고 있다. 유니클로 제품의 TV광고에는 의례껏 도레이가 함께 등장할 정도다.
소재와 패션은 바늘과 실 관계다. 도레이의 소재로 유니클로 제품이 생산되고 세계시장 유통을 뒷받침하는 금융지원의 일본종합상사까지 삼각편대가 유니클로를 만든 것이다.
한국에는 도레이같은 다각경영의 세계적 기업은 없지만 효성을 비롯한 섬유소재분야에서의 전문 소재기업이 없는 것은 아니다. 효성의 특수원사는 이미 유니클로가 선호하고 있고 벤텍스같은 벤처기업의 독특한 차별화 소재기업이 있다. 그럼에도 한국에는 유니클로같은 패션기업이 없다. 유니클로는 커녕 크고 작은 패션기업들의 앞날이 캄캄할 정도로 막막한 상황이다.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국제학과(일본경영) 김현철 교수가 ‘저성장 시대, 섬유패션기업의 생존 전략’ 특강에서 통렬하게 비판한 것처럼 “K뷰티는 날개를 달고 있지만 K패션은 망해가고 있다”는 지적을 뼈 속 깊이 새겨들어야한다. 소비절벽 저성장 시대는 유니클로처럼 싸고 좋은 제품이 생존전략인데 한국 패션업계는 이것이 안 된다는 것이다.

혁명적인 혁신 안 되면 다 망한다

아직도 지난 60년간 이어온 성장시대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일본의 3배, 미국의 5배나 비싼 옷으로 일관하는 천수답경영에 안주하고 있다. 한국산 유니클로를 할 수 있는 곳은 삼성물산의 ‘에잇세컨즈’ 나  이랜드의 ‘스파오’ 정도지만 전략이 잘못됐다. 삼성과 이랜드도 모든 것을 혼자 할 수는 없다. 글로벌 SPA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도레이같은 많은 관련 소재업체들과 수직이 아닌 수평관계를 유지하며 글로벌 유통을 확대해야한다. 미쓰비시· 이도츄같은 일본의 거대 종합상사가 유니클로 글로벌화를 위한 금융지원을 도맡듯이 거대 금융자본이 합류해야한다.
유니클로보다 싸고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하고 싸고 좋은 것으로는 안 되고 특징을 불어넣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해야한다.
이같은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과 대안이 나오지 않으면 한국 패션도 섬유도 조종을 울릴 수밖에 없다. 사고의 혁신· 전략의 혁신에 혁명적인 변화가 없으면 패션도 섬유도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인구절벽· 소비절벽· 저성장 시대에서 지난날의 호경기 시절을 기다리는 것은 부질없는 신기루다. 섬유이건 패션이건 자신 없으면 하루라도 빨리 떠나야한다는 김현철 교수의 충고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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