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기친람(萬機親覽) 대통령이 급기야 비상시국을 천명했다. 북핵과 지진, 경제 3중 위기를 거론하면서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진다”고 강조했다. 십종 허들도 모자라 온갖 뇌관이 도사리고 있는 엄중한 시기에 비방과 폭로성 발언으로 혼란을 야기 시킨 정치권을 질타했다. 핵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북한 김정은 집단의 끝없는 악행과 폐단에 갈수록 거칠고 깊게 퍼진 내부분열을 경고한 것이다.
사실 나라 돌아가는 통박이 자칫 태풍 속 편주(片舟)를 연상할 정도로 위험천만한 상황이다. 누렇게 부황된 인민은 아랑곳 않고 한번에 수백, 수천억원씩 들어가는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미쳐 날뛰는 김정은 집단이 걱정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천방지축 날뛰는 김정은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섬뜩함을 떨칠 수가 없다. 이래저래 남북을 가지고 노는 중국의 농간에 휘둘리는 우리 처지가 한심하다.
설상가상 남의 나라일로 강 건너 불구경 하던 무서운 지진 재앙까지 맞닥뜨렸다. 북핵에 놀란 가슴 지진 공포까지 덧칠해 불안성 가연심리가 확산되고 있다.

‘서상돈賞’ 재조명된 염색업계 代父

분기충전 여론 속에 더욱 한심하고 허탈한 것은 먹고 사는 문제에 빨간 전조등이 켜졌다. 한국 경제가 출구도 보이지 않는 깊은 터널에 빠져 옴짝 달싹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경제가 암울한데 구조개혁은 지지부진하고 엉뚱한 악재까지 돌발해 난감한 상태다. “선무당 사람 잡고 반풍수 집안 망친다”고 금융논리로 한진해운 사태를 몰고 온 서투른 집도의 때문에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고 말았다. 끝간데 없이 몰려온 온갖 악재와 재앙을 막기 위한 국민 통합을 바탕으로 성장판을 다시 여는 것이 발등의 불이다.
화재를 바꿔 지난 20일 낮 대구 그랜드 호텔에서 아주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매일신문과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회가 공동주관한 제 9회 서상동賞 시상식이 정부 행사 못지않게 성대하게 열렸다. 대구 외 지역 인사들은 서상돈상에 대해 생소하겠지만 구한말 외세의 경제적 침탈에 맞서 국채보상운동을 주창한 서상돈 선생의 숭고한 뜻을 계승하기 위해 1999년에 제정한 상이다.
이 상은 그동안 대기업 오너나 경제 사회적으로 저명인사들이 받아온 데 이어 올해 수상자는 우리나라 염색업계 대부이자 한국섬유산업 발전의 선구자인 이승주 국제텍 회장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상의 명예와 권위만큼 이날 시상식에는 전· 현직 대구시장과 경북지사를 비롯 지역 섬유· 패션업계 대표와 경제계 인사 300여명이 참석해 이 회장의 수상을 축하하며 기립박수를 보냈다.
한국섬유산업 발전에 큰 획을 그은 살아있는 섬유역사이자 명실공이 염색업계 대부인 이승주 회장은 그 명성만큼 정부로부터 큰 상을 수없이 받았다. 석탑 산업훈장과 은탑 산업훈장, 금탑 산업훈장을 모두 받았고 해외 선진국 정부로부터도 훈장을 여러번 받은 거물 중소기업인이다.
이 회장은 처음 수상후보자로 거론될 당시 한사코 고사했으나 지난해 미수(88세)를 넘긴 영원한 현역 기업인으로서 후진 기업인과 지역사회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자”는 주위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역시 탁월한 기업인이고 통 큰 지도자답게 상금으로 받은 2000만원에 사재 3000만원을 보태 5000만원을 지역사회 발전기금으로 기탁했다.
섬유 역사상 수많은 단체장과 지도자가 등장했으나 이 회장만큼 양심과 소신에 입각한 헌신적인 지도자는 몇 손가락에 불과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폴리에스테르 직물감량 가공기술을 국내 최초로 개발해 수출 주력 산업으로 키운 경영능력은 물론 한국섬유산업의 진로를 제시한 선구자인 것이다.
국제염직(국제텍)을 세계적인 화섬직물 감량가공 전문회사로 정착시킨 것은 물론 80년대 초 어려운 시절 한국 염색연합회장으로 취임해 8년간 재임하면서 염색산업 판도를 바꿔놓은 통 큰 리더였다. 그의 진두지휘로 세계 제일의 염색전문단지인 비산염색공단이 조성됐고 이를 계기로 부산과 반월 등에 대규모 염색전문공단 시대를 열었다.
미래를 조망하는 안목과 치열하리만치 강한 추진력은 당시 정부 주무부처 고위층들이 존경심과 함께 이 회장의 염색공단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세계 제일의 감량가공업체인 국제염직은 물론 125개 업체가 입주해있는 비산염색공단 가동이 대구를 섬유메카로 정착시킨 원동력이 됐다.
열악한 염색연합회의 재정 형편을 고려해 뭉칫돈 사재를 지원해 당시 전무였던 이 某, 윤 某 전무가 마음껏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비산염색공단이 가동되고 세계적인 염색단지 조성의 일등공신으로 정부로부터 공적을 인정받으면서 명성이 확대됐지만 끝까지 겸손한 자세를 견지했다.
80년대 신군부 시절 이 회장 소문을 들은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국제염직을 두 차례나 직접 방문해 이 회장의 노고를 치하하고 격려하기도 했다. 이때 전 대통령은 이 회장의 애로사항을 묻고 하고 싶은 숙원사업을 얘기하라고 채근했으나 “저는 이대로가 좋습니다. 제 분야에서 세계 1등 염색가공업체로 키우겠습니다”며 단호하게 거절한 일화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당시 이 회장이 욕심을 내서 “무엇을 하고 싶다”고 한 마디만 했으면 배석한 장관과 대구 시장이 전폭지원 했겠지만 개인적으로 투명하고 양심적인 중소기업인의 길을 꿋꿋이 걸어온 것이다.
연세대 경제과를 졸업하고 자랑스런 연대인상을 수상한 이 회장은 동문인 김우중 전 대우그룹회장과도 각별한 유대를 유지하며 중앙 경제계에서도 크게 활약했다. 김우중 회장이 한국섬유산업연합회장으로 재임할 때 중소기업계를 대표해 섬산련 부회장을 맡았던 이 회장은 지금의 섬유센터 건립에도 막전막후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다. 섬산련 건립기금 모금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김우중 회장과 이 회장이 힐튼호텔 회동을 통해 묘안을 도출해 성공시킨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섬유센터 정문 앞 머릿돌 표지석에는 센터건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김우중, 이동찬, 박용학 회장과 함께 이승주 회장 이름이 선명히 새겨져 있다.

영원한 현역 王회장 만수무강을…

기업경영의 성공과 함께 경제사회발전에 아낌없이 쾌척한 이 회장은 인정과 의리가 넘치는 기업인으로 정평이 나있다. 사회발전을 위한 그의 통 큰 기부는 수시로 화재가 되고 있다. 하나의 예증으로 지난 2003년 대구상공회의소 주관으로 대구FC 축구단이 창단될 때 당시 상의회장이던 노희찬 회장은 수백억원이 필요한 기금마련에 골몰한 일이 있다. 지역 기업인 대표를 호텔로 초청해 기금모금 협조를 요청하자 이 회장이 가장 먼저 일어나 1억을 약정했다. 중소기업인 국제염직 이 회장이 1억을 기탁하자 참석한 대기업 오너들은 전부 1억 이상을 써내 창단기금 확보가 순조롭게 이루워졌다는 것이다.
대구 비산염색공단 폐수방류 사건으로 공단 운명이 백척간두에 섰을 때 호사가들이 이 회장을 음해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검찰이 이 잡듯 경리 장부를 조사해도 이 회장은 단 한 푼 공단 돈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수사관들이 오히려 감사와 존경을 표할 정도였다.
89세의 노령에도 돋보기 없이 신문을 보는 건강을 바탕으로 골프를 즐기는 영원한 현역 이 회장은 요즈음도 매일 회사에 정시 출근해 업무를 챙기고 있다. 위대한 기업인이자 지도자인 이 회장이 서상돈상 수상을 계기로 더욱 건강하게 우리나라 섬유산업발전의 선구자 역할을 지속해줄 것을 정중히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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