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명절 추석이 반갑기는커녕 호랑이처럼 두렵게 다가온다. 자금 성수기에 경기는 냉골이고 뒤주가 빈 기업들은 교도소 담장 위를 서성거린다.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명절 특수가 실종되고 엎친데 겹친 격으로 한진해운 사태로 관련업체의 연쇄도산이 불을 보듯 뻔하다. 대우조선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7조원 이상을 쏟아 부으면서 5000억원 지원을 거부한 보신주의자들로 인해 해운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
한국경제가 사방을 둘러봐도 쨍하는 구석이 안보이고 짙은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다. 생산과 소비, 투자가 동시에 추락하는 트리플 악재로 성장판이 닫히는 모양새다. 성장 동력이 안보이고 장밋빛만 보인다는 400조의 내년 슈퍼예산은 국가채무 40% 돌파라는 위험신호를 안고 있다. 이런 판국에 정치권은 정기국회 첫날부터 여야가 각혈하며 싸우는 악행과 폐단의 꼬라지에 분통이 터진다.

배부른 경기북부 배고픈 대구산지

본질문제로 돌아가 국내 섬유산업 양대 산맥인 대구경북과 경기북부의 명암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심한 표현으로 아시아 최대 니트 메카를 표방하는 경기북부는 배터지는 형국이다. 반면 최대 직물산지인 대구경북은 피골이 상접한 모양새다.
알려진 대로 경기북부가 4월부터 마의 비수기인 여름철은 물론 연말까지 풀가동의 활황을 누린 것은 아주 특별한 계기에서 비롯됐다. 니트자카드 전문업체인 경기북부 A사 K사장이 미국에서 뜨고 있는 대형 온라인 유통업체로부터 니트자카드원단 오더 폭탄을 맞으면서 수도권 니트 공장에 때 아닌 연쇄 대박이 터진 것이다.
필자가 이 A사의 쾌거를 중언부언 한 것은 단순한 오더 수행의 일상과는 다른 아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더 규모면에서 지난달까지 250만 kg의 원단을 선적 완료했고 연말까지 추가오더가 같은 규모로 예상돼있어 규모면에서 상상을 초월한 수준이다.
말이 쉬워 500만 kg이지 8톤 트럭 기준 무려 620대 분량이라면 지금까지 단일 기업이 받은 오더규모로는 최대인 것이다. 일반 환편직물과는 달리 니트자카드 업체 수가 별로 많지 않은 국내 실정에서 15개 전문 생산업체가 컨소시엄을 형성해 이 대량오더를 나누어 생산하고 있다. 이 오더가 수지맞은 것은 같은 규격과 중량, 스펙이 동일한 품목을 주야로 생산한데 따른 생산성 효과가 놀랄 만치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 일각에서는 채산문제로 의구심을 표시했지만 오히려 참여업체 모두가 표정관리 할 정도다.
더욱이 이같은 특정회사의 활약으로 대량 오더를 수주한 것을 계기로 연관산업이 연쇄활황을 누리고 있다. 원사메이커의 폴리에스테르사, 레이온 방적사, 스판덱스, 카바링사를 비롯 염색, 프린트 업체 모두가 일감이 폭주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A사의 K사장의 주도로 참여업체들이 품질관리를 철저히 함으로써 미국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다는 소문이다. 이대로 가면 금년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오더 연결이 가능할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국내에서 편직, 염색, 프린트까지 완제품 원단을 만들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 있는 한국계 벤더 소싱공장에서 의류를 생산해 공급하고 있어 벤더들도 즐거워하고 있다. 국내 최대 의류벤더도 이 봉제 오더를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을 정도다.
한국산 니트자카드 원단을 채택해 인도네시아 봉제를 거쳐 수입하고 있는 미국의 대형 온라인 바이어는 최근 몇 년 사이에 급성장하는 패션전문 유통회사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이 빅 바이어는 A사가 직접 거래하는 것이 아니고 미국 내 봉제 전문 공급회사를 통해 거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기할 것은 온라인 판매회사는 이미 미국 전역에 자사 소속 판매전문 요원이 1만명을 돌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새로운 디자인 샘플 사진을 온라인에 올려 구매를 희망하는 소비자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영업판매자가 득달같이 찾아가 원하는 디자인의 의류를 판매한다는 것이다. 판매사원은 월급 베이스가 아닌 개인 사업자이어서 열정적으로 판매이익을 창출하여 본사와 함께 급성장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이 온라인 유통업체는 디자인의 차별화뿐 아니라 소재의 차별화에 역점을 두고 있는데 이것이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는 것이다. 차별화 소재를 활용해 소비자들에게 그것도 합리적인 가격에 즉시 전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적중하고 있는 것이다.
4월부터 A사가 주도해 생산한 니트자카드 원단이 중국산보다 차별화를 인정받아 좋은 반응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산보다 8%가 비싼 A사 주도의 한국산 원단에 미국 바이어가 반한 이유가 차별화에 있다. 결국 아주 특별한 케이스지만 해당 A사가 작년보다 올 수출이 10배나 증가한 5000만 달러를 돌파하는 대박을 누리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닌 적극적인 차별화 전략이다. 물론 컨소시엄에 참여한 관련 회사들도 연쇄적으로 매출 증가의 활황을 만끽하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다.
우리업계가 여기서 참고하고 배워야 할 것은 연간 100억 달러 이상 의류제품을 수입하는 미국 시장을 원단업계가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것이다. 그동안 대부분 의류벤더들이 바이어로부터 완제품 오더를 받아 편직· 제직업체에 발주하던 것과 달리 이번 케이스는 원단업체가 오더를 받아 의류벤더와 연결한 사실이다. 소재의 차별화 중요성이 갈수록 강조되고 있는 추세다. 니트나 우븐 가리지 않고 이같은 전략으로 미국의 의류바이어들을 공략하는 새로운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좋은 계기다. 한국산 원단은 중국산보다 비싸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려 생산성으로 커버하는 적극적인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비싼 인건비 타령으로 허송할 것이 아니라 10% 가격차면 중국보다 한국산을 선호하는 바이어의 취향을 활용하는 도전과 극복의 공세적 전략이 필요하다.

차별화 생산성 투자가 생명줄이다.

대구산지도 중국과 가격경쟁이 안 된다고 자포자기 할게 아니라 생산성으로 대량오더를 소화하겠다는 강한 집념과 전략을 강화해야한다. 원사메이커, 제· 편직업체, 염색가공 관련업체가 공조하면 생산원가를 현저히 낮출 수 있다. A사 주도의 경기북부 니트업체처럼 길은 얼마든지 열 수 있다. 중국과 같은 제품으로는 죽는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이상 차별화와 생산성을 접목시키는 고도의 전략과 순발력이 필요하다.
대명절 추석을 앞둔 대구경북 섬유산지가 지금 이 순간 극심한 오더가뭄으로 모질게 고생하고 있다. 여름 비수기가 지나고 PIS에 이어 텍스월드, 프리미에르비죵, 상하이인터텍스타일이 끝나면 경기가 살아날 것으로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신기루를 현실로 상상하는 착시현상이다. 이 상태로는 가면 갈수록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순간도 대구직물업체 중 오더 걱정 없이 활황을 누리는 업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숫자가 매우 적다는 사실이다.
첨단설비로 무장해도 어려운 상황인데 생산성과 품질이 떨어진 구설비로 버티겠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이다. 차별화가 저절로 이루워지는 요술이 아니다. 첨단설비 투자와 기술개발, 마케팅 개발 없이 경기 타령하는 천수답경영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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