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트업체>

사람 잡는 무더위는 누그러졌지만 나라 돌아가는 통박은 여전히 찜통이다.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국민은 분열되고 국가는 악화되는 위험수준에 빠져들고 있다. 조선· 해운을 비롯한 핵심 주력산업이 망가지고 수출, 내수 모두 총체적으로 역주행 하면서 경제 전반이 심하게 출렁이고 있다. 1300조에 육박한 가계 부채 폭탄이 언제 터질지 불안성 가연심리가 팽배해지고 있다.
설상가상 시도 때도 없이 겁나는 핵 위협으로 땡깡을 부리는 김정은 집단은 이제 잠수함 탄도미사일(SLBM) 발사 시험까지 성공할 정도다. 앞을 보고 있는 사람을 불량배가 뒤에서 뒷통수를 갈기면 사망 아니면 졸도다. 잠수함 탄도미사일을 동해, 서해, 남해에서 쏘아대면 북쪽을 향해 있는 우리의 대공 방어망은 속수무책으로 당한다는 것이다.

직물업계도 의류벤더 전략 배워야

상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한 안보 위기가 더욱 고조되는 절박한 상황인데도 사드 배치문제는 한 발짝도 못나가고 있다. 중국의 훼방에 화가 치미는 판에 우리 내부의 비타협과 불신, 배척의 투쟁으로 배가 산으로 가는 꼴이 한심하다.
얘기는 다르지만 답답하다 못해 복통 터지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필자가 지난 8월 15일자 칼럼에서 ‘산업용 전기료도 내려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가정용 전기료 누진제를 둘러싼 국민적 저항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산업용 전기료가 싼 것처럼 왜곡돼 동네북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 일반적으로 산업용 전기가 가정용보다 훨씬 싸 특혜를 누린 것처럼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오도된 왜곡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공기업인 한전은 지난해에도 전년보다 95.6%나 급증한 11조 4000억원에 육박하는 이익을 냈다. 올 상반기에도 6조 3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발전 자회사 연결 기준) 상반기 전기 판매액 중 주택용이 4조 1000억원, 일반용(상가) 6조 7000억원, 산업용 14조 4000억원을 팔았다. 그렇다면 산업용 전기를 원가 밑으로 팔고 주택용 전기료 4조 1000억원치를 팔아서 6조 3000억원의 이익을 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인 것이다.
또 산업용 전기를 사용하는 제조업체가 전기를 끌어올 때는 전봇대, 변압기, 배전설비, 선로까지 모든 비용을 해당업체가 부담한다. 고장이 나면 수리비도 기업이 부담하고 있어 이것저것 포함하면 가정용보다 싸다는 주장은 과장이라는 것이 제조업체의 항변이다.
때마침 가정용 전기료 누진제가 여름철 에어컨 사용과 관련해 폭발하며 병아리 눈물만큼 내린다고 했다. 차제에 고임금과 고비용 저효율 체제에서 전력료 마저 경쟁국보다 비싼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옳은 공기업의 자세다.
답답하고 한심한 것은 산업용 전기료가 2006년 이후 10년간 76% 이상 올랐는데도 업계의 대응 자세는 극히 미온적이었다. 단순 계산으로 가정용보다 싸게 보일 뿐 설비· 고장비용을 기업이 부담하는 산업용 섬유는 특혜가 아니라는 점을 집중 부각시켜야 했다. 그럼에도 섬유단체들은 이 같은 점을 내세워 인하 투쟁을 벌이지 못하고 달랑 형식적 건의서 한 장 내는 것으로 끝이었다. 섬유단체나 단체장들이 상식이 없는 것인지, 무성의한 것인지 답답하기 짝이없다.
다시 본질문제로 돌아가 “불황 앞에 장사 없다”고 세계 경제침체 속에 섬유패션산업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그래도 섬유산업은 고래심줄보다 강한 생명력을 바탕으로 고임금 고비용 구조에서 이만큼 살아남은 것만 해도 대견할 일이다.
그렇지만 상황은 갈수록 팍팍하게 돌아가고 있다. 능력 있는 기업들은 난파선에 쥐 빠져나가듯 너도 나도 탈출해 해외 소싱으로 성공한 사례가 많다.
반면 국내에 남아있는 기업들은 글로벌 경기불황에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다 보니 갈수록 시난고난 고통을 겪고 있다. 올 상반기 경영실적을 봐도 화섬업체는 주종인 폴리에스테르사 부문의 눈덩이 적자로 적자전환· 지속이 대부분이다. 면방은 상반기 경기가 대부분 죽 쓰다시피 해 적자에 신음한 것으로 나타났다. 7월부터 원면값이 뛰어 올라 면사값을 올려 하반기 호전을 기대하지만 이마저 반짝경기가 우려되고 있다.
미들 스트림인 직물산업 역시 땅 꺼지는 한숨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대구산지가 거듭되는 불황 속에 여름 비수기에 포위돼 더욱 위기국면이 고조되고 있다. 환편니트 경기도 7월 이후 급냉 상태에서 계속 재고가 체화되고 폴리에스테르 우븐직물은 완전 바닥을 기고 있다. 대구산지에서는 막연하나마 여름이 지나고 추석 이후 경기가 살아날 가능성에 기대를 모으고 있다. PIS를 시발로 텍스월드, 프리미에르비죵, 상하이인터텍스타일을 거치면서 시즌이 올 것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같은 기대는 신기루를 바라보는 천수답 경영의 사고일 뿐 뚜렷이 나아질 가능성은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다.
천만 다행스런 것은 경기북부 니트산지에 올 들어 예기치 않은 횡재가 들이닥쳐 오더 가뭄을 해갈시킨 점이다. 미국으로부터 십수만톤 규모의 니트자카드 오더를 수주해 지역 전문 생산업체들이 컨소시엄을 형성해 풀가동하는 행운이 온 것이다.
이같은 대박 행운은 중견 니트자카드 직물 전문 메이커인 선영섬유 김을선 사장의 탁월한 마케팅력과 과감한 베팅으로 대규모 오더를 수주한 덕분이다. 가격조건이 싸 중국으로 다 넘어가는 그 순간 김 사장의 용단으로 대량 오더를 수주한 것이다.
미국의 온· 오프라인 업체인 바이어가 볼 때도 10% 내외의 가격차이라면 중국보다 한국산의 품질과 딜리버리, 신뢰성을 인정받은 점에 착안한 것이다. 상상을 초월한 이 초대형 오더를 수주하여 동종업체 기업인 10여명과 급히 회동해 스펙과 규격, 바늘 하나까지 통일시켜 생산성 향상과 품질균형 방안을 마련하고 풀가동에 들어갔다.
니트자카드 편직에 이은 염색가공도 국내에서 처리하고 원사도 국내 화섬업체를 선택해 연관 스트림이 오더걱정 없이 3월부터 8월 초까지 생산해 선적했다. 처음에는 채산성을 걱정했지만 단일규격 스펙으로 풀가동하면서 생산성을 통해 채산성도 충분히 확보했다.

생존전략 투자 없는 차별화는 없다

일단 8월초로 1단계 오더가 끝나기 무섭게 다시 재개해 적어도 연말까지 이어지는 데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언부언하지만 이번 선영섬유 김 사장의 탁월한 능력과 용단으로 이루워진 오더 수주는 앞으로 의류뿐 아니라 원단직물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단가가 안 맞는다고 오더를 무조건 배척할 것이 아니라 오더를 받아 생산성으로 커버하는 대형 의류벤더들의 경영전략을 벤치마킹하자는 것이다.
경기가 아무리 불황이라도 의류나 소재인 직물 수요는 얼마든지 널려있다. 문제는 우리가 채산을 못 맞춰 중국 등지에 놓치고 있을 뿐이다. 이번처럼 생산성으로 커버하는 적극적인 전략이라면 가능성은 충분하다. 문제는 생산성과 품질을 달성할 수 있는 투자다. 첨단 설비투자와 신기술 개발을 통한 차별화· 마케팅력만 강화하면 얼마든 시장은 있다. 삽질하며 웅덩이를 파면 물이 고이게 돼있다. 문제는 신념과 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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