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펄 끓는 삼복더위에 개봉된 영화 ‘인천상륙작전’에 구름 관객이 몰리고 있다. 익히 알려진 역사적 사건의 실제 과정을 다룬 감동 실화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3년간 전쟁을 치르면서 300만 명의 희생자를 낸 민족상쟁의 비극이 얼마나 처참한 것인지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결론은 전쟁을 기억하거나 모르는 세대 모두 “평화 비용이 아무리 비싸도 전쟁보다는 싸다”는 진리를 재확인 했을 것이다.
영화가 종영되면서 마지막 화면에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통일이 완성되기 직전 작은 자막으로 중공군의 개입으로 천추의 휴전선이 그어졌음을 곁들이고 있다. 바로 중국이야말로 한반도를 두 동강 내 용서할 수 없는 분노의 적국인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한 변곡점에서 적대국 중국이 어느덧 우리의 최대 교역국으로 탈바꿈 했다. 우리 수출의 25.4%를 차지해 미국(5.6%)보다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는 냉엄한 국제사회의 이해가 맞물린 것이다.

관세 폐지해도 꿈쩍 않는 섬유 수출

중국은 이제 전 세계가 인정하는 경제, 군사 대국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하는 짓거리는 옹졸하다 못해 치졸하기 짝이 없다.
딱 부러지게 말은 않지만 ‘척 하면 삼천리’라고 사드 문제를 놓고 해괴한 몽니를 부리고 있다. 한국 기업인들에게 거의 자유롭게 허용하던 복수비자 발급을 스톱시킨 처사부터 한류 차단을 노골적으로 강화하며 겁박하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장난을 칠지 예단하기 어렵다. 이대로 가면 국내 관광객 1위와 요우커들의 발길마저 뚝 끊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중국이 우리에게 경제 보복을 실행할 경우 자신들의 피해 또한 감당하기 어려움을 알아야 한다. 중국이 우리의 가장 큰 수출국이자 수입국임을 명심해야 한다. 중국 입장에서 한국은 미국· 홍콩· 일본에 이은 4위 수출국이다. 더욱이 한국에서 수입하는 품목은 대부분 반도체, 부품· 소재 등 자국 수출상품을 만드는 필수 중간재다. 이들 중간재가 공급되지 않으면 중국 제조업 수출에도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 섬유류 교역에서도 우리의 대중 수출은 연간 29억 달러에 불과하다. 반면 중국에서 수입된 섬유는 연간 70억 달러에 육박할 정도다. 한· 중 FTA 체결 시 웬만한 품목은 초민감· 민감 품목으로 묶었지만 총체적으로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사드를 핑계 삼아 경제 보복을 시도하지만 돌이 밉다고 발로 차면 제 발등만 아프다는 사실을 중국은 알아야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사드배치가 불가피 한 것은 중국의 책임이 크다는 점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북한 핵 억제를 위한 유엔 안보리 결의를 중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실행했다면 우리가 왜 사드를 배치하겠는가? 순전히 이 핑계 저 핑계로 북한을 싸고도는 중국의 미온적인 태도로 인해 자위권 차원에서 사드가 필요한 것이다.
중국이 단둥과 신의주로 연결된 기름 파이프만 잠갔으면 북한은 이미 핵개발을 포기하고 백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국제 원유값보다 훨씬 비싼 값에 기름을 북한에 팔아먹고 있는 나라가 바로 중국 아닌가. 북한 핵 억제에 두 얼굴을 가진 중국 스스로 반성은커녕 사드 핑계로 한국에 경제제재를 시도한 것은 아주 뻔뻔한 태도다.
그러나 이미 교역규모 1위 국가로 우뚝 선 중국과 감정 대립이나 배척은 바른 선택이 못된다. 국제 외교에서 타협과 절충은 미학임을 한· 중 양국이 직시하고 불신 사조를 척결하는데 상호 지혜를 모아야 한다.
기왕 FTA 얘기가 나온 김에 섬유 FTA를 중간점검 해보면 빛 좋은 개살구임을 실감할 수 있다. 한· EU FTA가 발효돼 EU에 섬유수출이 늘기는커녕 오히려 수입 증가율을 보였다. 가장 큰 미국시장을 봐도 한· 미 FTA가 실속이 없다는 사실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지난 2012년 3월 15일부터 발효된 한· 미 FTA는 올해로 5년째를 맞았다. 발효 즉시 관세 철폐 품목은 물론 5년 단계 폐지 품목도 관세가 완전 폐지됐다. 또 남은 10년 단계 철폐 72개 품목도 현재 50%가 폐지돼 기본 관세율 50%만 적용하고 있을 뿐이다.
이로써 HS 코드 상 전체 1597개 품목 중 1525개 품목의 관세가 폐지 돼 98% 이상 관세가 없어졌다. CAT 638.9, 338.9 등 니트 셔츠를 비롯한 인기 의류품목과 합섬장섬유직물 등 극소수만 남았다. 이 역시 앞에서 지적한대로 기존 관세율이 50%로 낮아져 관세에 큰 부담이 없어졌다. 그만큼 대미 섬유수출에 최고 32%까지 적용되던 관세로 인한 장벽은 인기품목 몇 개를 제외하고 거의 해소된 셈이다.
그렇다면 국산 섬유류의 대미 수출이 크게 증가해야 정상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유류의 대미 수출은 12억 7000만 달러이었다. 다음해엔 2013년인 12억 4600만 달러로 줄었다. 그 후 2014년엔 12억 7100만 달러로 다소 회복됐다. 지난해에는 12억 6300만 달러로 발효 첫 해보다 오히려 감소했다.
한· 미 FTA 발효 당시 정부는 가장 큰 수혜업종이 4년 만에 관세가 완전 철폐될 자동차이고, 그 다음이 섬유 업종이라고 강조했다. 증권시장에서 섬유 상장기업의 주가가 뛸 정도였다. 한· 미 FTA로 관세가 완전 철폐되면 2021년엔 대미 섬유수출이 2억 달러 정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렇다면 5년째 접어든 한· 미 FTA는 적어도 연간 1억 달러, 아니면 줄잡아 5000만 달러의 수출 증가가 나타나야 정상이다. 불행하게도 장밋빛 청사진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미국의 고율 관세 품목이 전면 폐지됐거나 폐지가 임박한 상황에서 이 같이 FTA 효과를 못 보고 있는 데는 우리 내부의 문제점이 심각함과 연계된다. 32% 고율 관세 품목의 관세가 없어지면 중국 등 다른 경쟁국에 비해 그만큼 가격 경쟁이 생긴다. 아무리 인건비가 비싸다고 해도 이 정도 관세혜택이면 웬만한 경쟁국에 비해 충분한 가격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이어 차별화 제품 한국산 찾는다

그럼에도 FTA 효과가 헛발질 하고 있는 데는 기업의 대응태세가 너무 안이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관세 폐지의 천재일우 호기를 이용해 미국 수출에 총력전을 전개하려는 의욕도 방향도 없다. 우선 첨단설비 투자를 통해 기본적인 경쟁력을 구축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한· 미 FTA를 겨냥해 신규투자를 한 곳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미국 바이어들 중 상당수는 대량 오더는 생산기반이 붕괴되고 가격이 비싸 한국을 기피하지만 차별화 제품은 한국을 선호하고 있다. 디자인력이 앞선 패션의류나 소재에 대해 한국산을 적극 선호하고 있다. 그럼에도 생산할 곳이 마땅히 없어 천금같은 차별화 오더를 놓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의 섬유패션 정책도 이 같은 점을 소홀한 채 변죽만 울리고 있다. 미국 백화점과 대형 체인스토아 바이어들이 찾는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 선호도에 호응하는 우리 내부의 준비와 정비가 발등의 불이다. 준비하면 길은 열리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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