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단결제 보통 4~5개월
7월어음 현금화 230여일
자금 공백기간 불가피해
마진 포기하고 어음할인  
일부 업체 단가 후리기도 

# 기능성 소재 전문기업 A사는 최근 7개월 만기인 장기어음 결제 과정에서 납품한 원단의 불량이 의심된다며 지급액의 20%를 깎자는 프로모션 측의 제안을 받았다. 터무니없는 트집잡기였지만, 현금화까지 250일이 넘게 걸린 리드타임을 고려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A사는 곧바로 해당 브랜드 거래를 중단했다. 앞으로는 부조리한 결제관행이 만연한 내수거래보다 해외수출에 주력하기로 내부 방침을 결정했다.

‘브랜드→프로모션→원부자재’로 이어지는 국내 섬유패션 업계의 ‘불공정 결제 시스템’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섬유업계에서 우량기업으로 통하는 A사는 최근 7개월 만기 어음의 결제를 받는 과정에서 프로모션 측의 ‘갑질’을 속수무책 당해야 했다. 해외에서 기술력을 더 인정받는 업체지만, 국내에서는 당당한 사업 파트너가 아닌 ‘을’ 혹은 ‘병’일 뿐이었다.
이는 비단 A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섬유패션업계에서는 결제조건이 좋으면 원단업체에 2~3개월, 보통은 4~5개월 어음으로 거래를 한다. 길게는 7~8개월짜리 어음을 발행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반면 대부분 원단 업체는 생지(가공 전 원단) 구매대금은 다음달 결제해야 한다. 여기에 원단 가공 기간이 2개월여 걸린다. 결국 원단업체 입장에서는 자금 공백기간을 스스로 견뎌야 하는 셈이다.
예를 들어 7개월 만기인 어음을 발행하게 되면, 원단업체는 지급 날짜까지 포함해 현금화에 최대 230여일이 걸린다. 그나마 결제가 정확히 이뤄진다는 전제다. 최근 패션산업의 업황이 악화되면서 하청업체들이 흑자부도 위험도 높아졌다. 이 같은 원단업체의 약점을 파고들어 일부 브랜드사와 프로모션은 무리한 납기를 요구하거나 애매한 불량을 트집 잡는 등의 방법으로 결제금액을 ‘후려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원단업체는 원활한 회사 운영을 위해서는 연매출 50% 이상의 자금력을 갖춰야 한다. 그렇지 못한 경우는 마진 확보도 불투명한 어음 할인을 선택해야 한다. 국내 원부자재 업체의 대부분은 후자에 해당한다.
실제로 2014년 중소기업중앙회 실태조사 결과 162개 중소기업 중 70% 이상이 어음을 늦게 결제 받아 어려움에 처한 경험이 있었고, 95.6%가 어음 만기 단축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지난해 금융결제원 통계에 따르면 만기가 3개월을 초과하는 어음이 약 60%고, 연간 약 27조원에 이르는 전자어음에 대해 할인이 이뤄졌다.
이와 관련해 한 섬유업체 대표는 “대부분의 영세 섬유업체들은 긴 어음결제 기간으로 인해 항상 유동성에 부담을 갖고 있어 R&D나 마케팅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게 현실”이라며 “한국 섬유산업 발전을 위해선 장기어음 결제 등 업계 관행의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정부는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전자어음 만기를 단축하는 ‘전자어음의 발행 및 유통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지난 5월29일 공포했다. 전자어음 최장 만기를 현행 ‘1년’에서 단계적으로 ‘3개월’로 단축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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