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정·엠티콜렉션 등 성과
영원·형지 딸들 경영일선
男중심 제조업 시대 종언
섬세한 女 감성경영 기대

패션산업의 초기 부흥기를 이끌었던 1~2대 경영인들이 하나 둘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이들의 자녀 세대가 경영 전면에 나서는 일은 흔한 모습이 됐다. 하지만 딸보다 아들에 경영권을 물려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최근 ‘유리천장’에 가로 막혀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던 패션 경영인의 딸들이 속속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다. 이른바 ‘골든 도터스(Golden daughters)’다.
패션그룹형지(회장 최병오)는 지난 16일 형지I&C 대표에 최혜원 전무를 임명하는 임원 인사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최 신임 대표는 최 회장의 장녀로 이번 인사를 통해 계열사 대표이사로 본격 경영 일선에 나서게 됐다. 지난해 4월 형지I&C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린 지 1년 2개월만이다.
최 신임 대표는 2008년 패션그룹형지에 합류해 글로벌 소싱 구매팀, ‘여성 크로커다일’ 상품기획실, PI Project를 거쳐 2013년에는 패션그룹형지 전략기획실장을 맡아 브랜드 경험을 두루 경험했다. 2014년부터는 형지I&C가 전개하는 여성복 ‘캐리스노트’ 사업본부장을 맡아 브랜드 성장을 견인해왔다.
최 회장은 부인과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아들인 준호 씨는 패션그룹형지 경영혁신팀 차장으로 경영수업 중이다.
박이라 세정과미래 대표도 대표적인 업계의 골든 도터스 중 한 명이다. 박순호 세정그룹 회장의 삼녀인 그는 미국에서 MBA를 수료하고 2004년 세정 비서실부터 근무를 시작했다. 2007년에 ‘크리스.크리스티’ 론칭, 2010년 ‘NII’ 리뉴얼, 2014년 ‘씨리얼바이크리스’ 출시 등 브랜드 론칭과 리뉴얼을 여러 차례 진두지휘하면서 현장 감각을 익혔다. 10여 년간 착실히 패션 경영인 수업을 받은 셈이다.  
최근에는 모기업인 세정의 ‘웰메이드’ 담당임원을 겸직하기 시작했다. 웰메이드는 ‘인디안’을 유통 브랜드로 리뉴얼한 회사의 핵심 사업인 만큼 사실상 경영 중심에 선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양지해 엠티콜렉션 대표 역시 성공한 2세대 여성 패션 경영인으로 꼽힌다. 이탈리아 패션스쿨 마랑고니에서 의상디자인을 전공하고 부친인 양두석 회장이 운영하는 엠티콜렉션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입사한 그는 2004년 26살의 나이에 대표 자리에 올랐다.
그는 경영 일선에 나선 후 국내 잡화업계 최초로 대규모의 패션쇼를 개최하고, 전문인력 강화를 위한 교육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공격적 경영을 단행했다. 취임 당시 400억원 매출 볼륨을 기록한 ‘메트로시티’는 지난해 1190억원까지 성장해 ‘MCM’ ‘닥스’ ‘루이까또즈’와 더불어 4대 잡화브랜드로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다.
영원무역 성기학 회장의 세 딸들의 활약도 돋보인다. 성 회장의 차녀 래은 씨는 지난 3월 영원무역과 영원아웃도어의 지주회사인 영원무역홀딩스의 대표이사에 임명됐다. 영원무역홀딩스는 영원무역 지분 50.2%, 영원아웃도어 지분 59.3%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성 대표는 미국 스탠퍼드대를 졸업한 뒤 2002년 회사에 입사해 영원무역과 영원무역홀딩스 이사를 역임했다. 이후 2014년부터 영원무역홀딩스 사장과 영원무역 전무를 겸직했다.
장녀인 시은 씨는 그룹 대주주인 와이엠에스에이(YMSA)의 사내이사로 있고, 삼녀인 가은 씨는 영원아웃도어에서 경영 전반을 담당하는 상무로 근무 중이다.
패션 전문 기업뿐만 아니라 삼성·신세계 등 대기업 계열 패션기업 여성 경영인들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차녀 서현 씨는 지난해 연말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에 임명됐다. 그는 2002년 제일모직 패션연구소 부장으로 입사해 패션부문 경영기획담당과 제일기획 경영전략담당을 병행하며 차근차근 경영 수업을 받아왔다. 그는 2005년 국내 디자이너를 후원하기 위해 ‘삼성패션디자인펀드(SFDF)’를 출범하고 유망주 발굴에 나섰고, 2012년에는 토종 SPA브랜드 ‘에잇세컨즈’를 론칭했다. 특히 2010년에는 한국인 최초 미국 패션디자이너협회(CFDA) 이사회 멤버가 되며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외동딸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부문 총괄사장도 1996년 조선호텔 상무보로 입사해 능력을 인정받았고, 2009년 신세계로 옮겨 패션 관련 사업을 맡아 모친인 이 회장 못지않은 카리스마로 경영능력을 뽐내고 있다.
이 같은 골든 도터스들의 경영 참여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패션산업은 여성의 섬세하면서도 남다른 감각이 돋보이는 영역인 만큼 이전 제조업 기반의 구조를 넘어 여성의 디테일 경영에 대한 요구가 커진 데 따른 변화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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