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새면 간에 금이 간 충격적인 사건이 가슴을 쓸어내린다. 민란으로 향하던 초침소리가 째깍 째깍 다가온 순간 절묘한 처방으로 영남권 신공항 문제가 수습됐다. 세계를 긴장시킨 영국 브렉시트 투표가 우려 반 기대 반에서 결국 탈퇴로 결론 났다. 어려운 세계경제 상황에서 글로벌 정치 경제 지형에 대격변을 예고하고 있다. 가뜩이나 국내외적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북한이 또 무수단 미사일 발사를 성공했다는 불길한 소식이 들렸다. 핵으로 미국과 맞짱 뜰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김정은의 ‘호랑이 앞 웃통 벗는 행태’가 우습고 기분 나쁘다.
국외자의 편견인지 몰라도 영남권 신공항 건설은 처음부터 경제 논리가 아닌 정치 논리에서 비롯됐다. KTX가 전국을 누비면서 항공 수요가 급감하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 정치권이 포퓰리즘에 춤을 췄다. KTX 개통 이후 승객이 격감해 김포-부산간 운항 횟수가 절반 이하로 줄었다. 시간마다 다니던 김포-광주간 대한항공 노선도 하루 두 차례로 감축한데 이어 몇 달 전 이마저 완전 폐쇄되고 말았다.

내년 F/W도 가격 후려치기 불 보듯

전국 14개 지방 공항 대부분이 승객이 없어 적자투성이인데 12조원의 국민 혈세를 들여 신공항을 건설하자는 것은 네모난 삼각형 논리였다. 결국 신공항 문제로 “우리가 남이가”하던 대구 부산이 적이 되고 말았다. 아직도 허탈과 분노가 하늘을 찌르며 비분강개하고 있다. 지난 3년간 대구와 부산 시민을 대립과 분열의 용광로로 밀어 넣은 정치권은 석고대죄 해야 한다.
우리 얘기로 돌아가 우리나라 벤더들이 의존하고 있는 대외 의류수출 환경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외양적으로는 미국경기 지표가 회복된 것으로 나타나지만 시장의 체감온도는 거꾸로 가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또는 중견 체인스토어 등 미국 유통의 핵심마다 매출 감소로 비상 경영을 하고 있다. 온라인의 상징인 아마존 닷컴만 승승장구 할 뿐 오프라인은 하나같이 고전하고 있다. 월마트, 타겟을 비롯한 메이저 유통업체들마저 실적부진으로 구조조정이 한창이다. 월마트는 눈을 중국으로 돌리기 위해 최근 아시아 대형 이커머스 기업 JD콤 지분 5%를 인수하고 중국을 타겟으로 온라인 영업을 본격화할 방침이다.
미국 남부에서 막강한 세어를 장악하고 있는 럭셔리 리테일러 니만 마커스까지 50억 달러의 부채와 매출부진으로 고전하고 있다. 지난 3분기 연속 매출이 마이너스 성장해 고육지책으로 최고경영자 CEO 카렌카츠가 중국에 날아가 투자 유치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는 물론 기대했던 올 상반기 매출마저 마이너스 일변도로 추락하자 유통업체들마다 마른나무 기름 짜기 전략에 올인하고 있다. 자체적으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 속에 인력을 대폭 줄이고 있다. 그 여파는 한국에서 마지막까지 운영하고 있는 한국 사무소를 폐쇄 또는 축소 전략으로 나가고 있다. 타겟의 한국 사무소는 3년전 까지만 해도 100여명이 근무했으나 지금은 절반으로 줄었다. 과거 한국 의류기업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들었던 GAP도 사실상 한국사무소를 홍콩 등지로 거의 이전시켰다.
내년 S/S 시즌 바잉 과정에서도 바이어의 가격 후려치기는 계속 됐지만 8월부터 시작될 내년 폴? 윈터 바잉도 녹록치 않을 전망이다. 돌아가는 통박을 보면 매년 10-15% 가격 후려치기 관행이 내년 F/W용에도 예외 없이 반복될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미국 바이어와 한국 의류수출 벤더간에 끈끈한 신뢰가 바탕이 됐지만 지금은 누가 더 싸게 공급하느냐가 관건이다. 아무리 오랜 거래관계를 유지해왔다 해도 단 1-2센트라도 싸게 공급하는 기업에오더가 몰리고 있다.
하나의 예증으로 지금은 모두 소멸됐지만 지난 70년대 중반 대우실업 삼도물산 협진 양행의 의류수출벤더 ‘빅3’가 있었다. 이 중 협진양행 창업주인 이용호씨는 사실상 미국 ‘타겟’거래를 시발로 창업해 와이셔츠 수출로 성공했다. 어느날 와이셔츠를 협진에서 대량 수입하던 타겟 바이어에게 홍콩 경쟁업체가 가격을 후려치며 협진보다 훨씬 낮은 가격을 제시했다. 바이어가 협진 측에 홍콩 가격을 제시하며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이용호 회장이 세일즈 책임자에게 “무조건 바이어가 요구한 가격에 맞추겠다”고 전달토록 했다. 이 소식을 들은 바이어는 득달같이 반응했다. 자사 홍콩 바잉오피스 책임자에게 “무조건 협진이 제시한 가격에 깎지 말고 계약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벌써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이지만 미국 바이어와 우리 벤더간에는 돈보다 더한 끈끈한 신뢰가 바탕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어 변곡점의 꼭대기에 도달하면서 각박해졌다. 미국 본사에서 공급자인 벤더들로부터 호평을 받는 담당 책임자는 얼마 못가 잘리기 십상이다. “더 많이 가혹하게 깎아야 한다”는 CEO의 엄명에 악명이 높아야 버틴다는 가설이 나돌고 있다.
결국 오더를 쥐고 있는 바이어의 우월적 지위 앞에 벤더들은 따를 수밖에 없다. 저항을 해보지만 오더를 몰아주는 전략으로 가격을 후려치는 바이어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벤더들은 바이어 가격 후려치기에 절대 혼자 당하지 않는다. 원 부자재 협력업체에 최대한 전가시킨다. ‘甲’의 강자적 입장인 벤더 요구는 약자적 ‘乙’의 원부자재 업체가 거역하는 것은 거래 포기와 마찬가지이다. 해마다 바이어로부터 전년대비 10-15% 내외의 가격 후려치기를 당하면서도 연간 수백억, 심지어 1000억 원 이상 영업이익을 내는 의류벤더들의 호황 실적이 이렇게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원부자재 업체의 목 졸림을 강요하는 것도 한계상황에 왔다. 고임금과 인력난으로 경쟁력을 잃은 국내 섬유업체만의 고민이 아니다. 해외에서 생산하는 원부자재 업체들도 마른나무 가름 짜기에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이미 내릴 대로 내린 국제 원면 및 면사값과 원료와 화섬사 가격이 오히려 강세국면으로 반전되고 있다. 아무리 한국보다 인건비가 싼 베트남, 인도네시아이지만 그곳도 해마다 임금상승은 예외가 아니다. 요즘은 면사 가격 투매의 원흉인 인도산 면사가격이 오히려 강보합세를 보이고 있다. 고급 원면이 소진됐고 올해 가뭄으로 원면 작황이 말이 아니다. 요즘은 한국산 화이트사보다 품질 나쁜 인도산이 비싸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TPP 재협상 베트남 진출기업 비상

뭐니뭐니 해도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의류시장이다. 의류만 전세계에서 연간 100억 달러 규모를 수입하는 미국 시장이 좋아야 우리의 의류수출 벤더가 호황을 만끽한다. 원부자재 업체도 동반성장하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벤더들의 내년장사가 올해보다 역주행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TPP협정이 중대변수를 보이면서 우리 벤더들이 긴장하고 있다. 보호무역 주창자인 트럼프에 이어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링턴까지 TPP(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공식화하고 있다.
오는 11월 대선 당선이 유력시되는 힐러리 클링턴이 TPP 재협상을 시사하는 것은 12개 TPP협정국은 물론 한국 섬유의류업체에 큰 충격이 될 수밖에 없다. 가장 큰 수혜국인 베트남에 대규모 투자를 해놓은 한국기업들이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다. 이래저래 섬유의류수출 환경이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극복해 낼 고단위 처방이 발등의 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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