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년 마담포라 히스토리, 100년 꿈꾸게 하는 힘이죠”

- 이길선 초대회장 1938년 만주서 양복점 시작 
- 해방후 양장점 전환, 서울입성 실력 인정받아 
- 마담포라 롯데백화점 입점, ‘마담’ 열풍 이끌어 
- ‘사랑의 날개’ 등 노블리스오블리제 몸소 실천
- 역사관 통해 패션사 개관하고 새 미래 준비 

올해 61주년을 맞해 논현동 본사 5층에 문을 연 역사관을 소개하고 있는 이병권 마담포라 회장.

패션(Fashion)은 단순한 한 벌의 옷이 아니라 우리의 집단적 열망, 즉 패션(Passion)이 만들어 내는 발명품이다. 그리고 그 발명품은 한 시대 내에서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문화적 기억들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바로 패션의 힘이다. 그리고 그 뼈대에 브랜드가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세대를 넘어 함께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브랜드가 있는지 자문한다면 누구도 선뜻 대답키 어려울 것이다. 안타깝지만 시장은 있으되 문화는 실종된 현실이 대한민국 패션산업의 민낯이다. 
그러나 브랜딩의 철저한 불모지인 대한민국에도 60년이 넘는 시간동안 올곧이 대중과 소통해온 브랜드가 있다. 부인복의 대명사 ‘마담포라’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종전 직후인 1955년 론칭한 마담포라는 강산이 여섯번 변했지만, 여전히 부인복 시장에서 지분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렇게 61년 외길을 걸어온 마담포라가 3일 국내 패션브랜드로서는 최초로 ‘역사관’ 개관을 앞두고 있다. 
이길선 창업주와 이철우 2대 회장에 이어, 회사를 이끌고 있는 이병권 회장을 통해 한국 패션사를 관통하고 있는 마담포라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논현동 본사의 문을 두드렸다. 


하얼빈 양복점서 시작한 ‘패션보국’의 꿈 
삼성그룹의 창업자 고(故)이병철 회장이 ‘사업을 통해 국가에 보답한다’는 뜻의 ‘사업보국(事業報國)’을 최고의 경영철학으로 삼았다면, 마담포라의 창업자 이길선 회장이 마담포라에 심은 경영이념은 ‘패션보국’이었다. 
마담포라의 대외적인 출발은 1955년이지만, 실제적인 시작은 이길선 초대회장이 중국 하얼빈에서 시작한 양복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엄혹한 일제치하를 피해 만주에서 패션사업을 시작한 이길선 회장은 해방 후 귀국해 본격적인 사업에 투신해 전남 광주 명동 충장로에서 양장점을 시작했다. 바로 마담포라의 초석이 된 ‘남성(南星) 양장점’이다.
이병권 회장은 양복점의 ‘양장 전환’을 ‘서울 진출’ ‘백화점 입점’과 더불어 마담포라의 터닝포인트로 꼽았다. 
“이길선 초대 회장님께선 해방 후 서울과 전남 광주에서 양복점을 하셨지만, 시대 흐름이 양장으로 바뀌고 있다고 판단해 양장으로 전환하셨습니다. 1955년 ‘남쪽의 별’이라는 뜻의 남성 양장점을 광주에 오픈하셨죠. 남성 양장점은 오늘날 부인복의 대명사 마담포라의 시발점이 됐습니다. 그래서 그 해를 마담포라의 창사로 삼고 있습니다.”
이길선 초대 회장과 이철우 2대 회장이 함께 설립한 남성 양장점은 전라도 일대에서 최고의 양장점으로 자리매김하며 명성을 떨쳤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주문이 폭주했다. 하지만 1973년 1월 매장이 삽시간에 전소가 되는 화재가 발생하고 만다. 
이를 계기로 두달뒤 서울 중구 인현동에 ‘포라 의상연구실’라는 이름으로 새둥지를 틀게 된다. 불의의 화재로 인해 재기를 위한 종자돈도 마른 상황이었지만, 그간 쌓은 신뢰관계를 밑천삼아 화려한 부활에 성공했다. 승승장구한 포라 의상연구실은 2년 후 패션문화 쇼핑의 중심지 명동 제일 백화점 뒤편으로 자리를 옮기고, 여성 패션의 기성복 시대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여성 패션 기성복 시대 열며 승승장구 
1976년 포라 의상연구실은 뜻밖의 제안을 받게 된다. 2년6개월 후 오픈할 롯데백화점 본점 숙녀의류 빅사이즈부 입점 요청이었다. 서울 활동기간은 짧았지만, 실력으로 유수의 양장점과 어깨를 나란히 한 셈이다. 
이길선 초대회장과 이철우 2대 회장은 기성복 도전을 결심하고 본격적인 준비에 돌입했다. 이철우 2대 회장은 일본 다카시마야 백화점의 부인복 사이즈를 비교 연구하면서, 단골손님의 체형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여성에 맞는 사이즈를 정립했다. 
그리고 중년여성을 뜻하는 불어 ‘마담’을 포라와 결합해 부인복 브랜드 ‘마담포라’를 세상에 내놓게 된다. 
이 회장은 “당시만 해도 ‘마담’이라는 단어는 유흥업소에서 많이 썼기 때문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지만, 프랑스에선 최고의 존칭인 만큼 원 의미를 찾아 우리 손님들의 격을 높이자는 의도로 선택했다”며 “영업을 시작하자마자 마담포라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같은 복종의 타 브랜드들도 앞다퉈 ‘마담’을 네이밍에 사용하는 등 마담 열풍이 한동안 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의 설명대로 1979년 롯데백화점 입점 후 마담포라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빅사이즈였지만 투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체형의 단점을 보완하고 스타일을 살려주는 디자인은 마담포라의 비교할 수 없는 경쟁력이었다. 뚱뚱한 체형의 중년여성들에게는 구세주같은 옷으로 통했다. 
치솟는 인기에 경쟁 백화점들의 입점 제안이 잇따랐지만, 롯데백화점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10년간 고사하기도 했다. 
이러한 실력과 신뢰를 바탕으로 이 회장은 롯데백화점 30주년 행사에서 이철우 롯데백화점 사장, 노신영 롯데복지재단 이사장과 함께 협력사 대표로 축사를 하기도 했다. “롯데백화점의 성공은 협력사와 함께 이룬것이니, 잘 대우해야 한다”는 요지의 당시 이 회장의 축사는 패션업계에선 지금까지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왼쪽 사진> 1978년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제 1회 마담포라 빅사이즈 의상 발표회에 모델로 참가한 배우 최은희 씨(가운데)와 이철우 명예회장(오른쪽). <오른쪽 사진> 1988년 장충체육관에서 IMF 경제공황 속 실직자녀와 북한 영유아를 돕기위해 연 바자행사. 행사장에는 이휘호 영부인(가운데)이 직접 참석해 뜻을 더했다.

패션 최초 역사관… 이제 100년을 향해 
마담포라는 패션보국을 기치로 내세운 이길선 초대회장의 뜻에 따라 나눔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 회장은 선대 창업주의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고자 1992년 사회복지법인 ‘사랑의 날개’를 설립해 장애인 취업, 기술, 학비 지원 등 장애인들의 잠재능력 개발 및 재활여건 조성을 돕고 있다. 이웃사랑의 일환으로 VIP 고객을 위한 장애인 돕기 특별 호텔 행사를  조선호텔 그랜드 볼룸에서 진행해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했다. 
1998년 IMF 시절에는 경제공황 속 실직자녀돕기와 북한 영유아 돕기를 위한 바자 행사를 대한민국 ROTC 중앙화와 한국기독연합회, 한국패션협회와 함께 장충체육관에서 3일간 진행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그렇게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몸소 실천해온 마담포라가 어느덧 61주년을 맞았다. 패션 브랜드의 수명이 짧은 국내 패션시장에서 의미있는 기록을 써내려가고 있는 현재 진행형 브랜드 마담포라는 이제 100년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때문에 3일 개관하는 마담포라 역사관은 개별 브랜드의 역사만을 담은 지협성을 넘어 우리나라 패션산업의 역사를 개관하고,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밑거름으로써 의미가 크다 할 수 있다. 
이 회장은 “마담포라의 지난 역사자료를 모으고 준비하며 국내에 어떤 패션 브랜드도 역사관을 갖고 있는 곳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며 “다시 한 번 브랜드의 히스토리와 그를 바탕으로 한 정체성의 중요성을 실감한 시간이었고, 더 많은 토종 브랜드들이 시간과 세대를 초월해 고객들에 프라이드를 불러일으키고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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