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무상함이 실감난다. 413 총선 참패로 박근혜 정부의 좋은 시절이 끝나간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정치공학마저 여지없이 빗나갔다. 야당 분열로 일여다야 구도에서 도저히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여당이 일패도지 참패한 후폭풍이다.
모든 나무는 뿌리가 다칠 때 더 아프다.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집토끼인 보수가 등을 돌렸다. 설상가상으로 세종시에서 공무원 표가 돌아선 것은 무심 이상의 뼈아픈 의미를 담고 있다.
이제 와서 복기할 필요도 없지만 새누리당의 공천관리위가 무소불위의 칼춤을 출 때부터 알아봤다. “무성이 옥쇄를 들고 나르샤”의 희화적인 코메디가 엎친데 겹쳤다. 그럼에도 엉터리 여론조사의 허황된 파티를 열광적으로 즐겼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여론조사에 촉견폐월(蜀犬吠月 촉나라의 개는 달이 뜨면 짖는다)을 방불케 했다.

섬유패션 통큰 구조 고도화 지원해야

제 2당으로 추락한 집권 여당의 권력 진공상태가 충격 속에 길어지고 있다. 친박 비박간 ‘내탓 네탓’ 질그릇 깨지는 파열음이 여전히 귀청을 때린다. 제 1당으로 부상한 더불어 민주당의 군주체제가 벌써부터 여당을 거칠게 몰아세우고 있다. 캐스팅보드를 쥐고 있는 국민의당에는 노련한 박지원 원내대표가 등장했다. 정치 지형이 만만찮게 돌아가고 있다. 물은 엎질러졌고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여소야대 아래 정권이 위축되는 것은 불문가지다.
그러나 정치가 잘못되면 힘들고 괴로운 것은 백성이다. 비타협과 배척은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다. 지금은 경제와 안보 모두가 위기상황이다. 그 전제는 타협과 절충의 미학이다. 413 총선의 민의가 정치가 개처럼 싸우지 말고 총합하라는 엄숙한 명령임을 여야 정치권은 직시해야 한다.
본질 문제로 돌아가 우리 경제가 태풍속 편주(片舟)처럼 위험천만하다. 경제의 버팀목이자 견인차인 주력 산업들이 돌림병처럼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해운과 조선은 이미 거덜나 간판 내리거나 축소 지향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 좋던 산업의 쌀 철강산업마저 헉헉대더니 결국 연관 산업까지 줄초상이 빚어지고 있다. 석유화학의 한숨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있고 건설을 포함해 5대 주력 산업이 한꺼번에 우수수 망가지는 상황이다.
핑계를 대자면 무차별 확장정책으로 스스로 공급과잉의 덫에 걸린 중국 때문에 우리 경제가 은사죽음을 겪고 있다. 그래도 중국은 6.8% 경제 성장을 달성한데 반해 한국은 2%대 성장률로 주저앉고 있다. 중국에 추월당한 우리경제가 비상구를 잃고 허우적거리고 있다. 과도기적 현상이라기보다 수렁에서 쉽게 탈출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덫에 걸린 상태다.
수십조의 천문학적인 국민혈세가 대기업 구조조정에 투입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실업대책을 포함한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 거액의 비용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진다. 기업의 운명은 기업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잘못되면 기업주가 전재산을 내놓고 수습해야 한다. 왜 국민 혈세로 떼워야 하는지 보통 사람들은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때마침 5대 주력 산업이 붕괴위기를 맞으면서 다시한번 정부가 깊이 새겨야할 대목이 있다. 바로 ‘노송(老松)이 무덤을 지킨다’는 평범한 진리다. 어려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섬유패션산업은 그나마 큰 폭풍 없이 안정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국가경제의 막중한 기간산업으로 여전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섬유패션산업이 잘 나간다는 얘기가 아니다. 시난고난 하면서도 고래심줄처럼 강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국내 제조업 경영사정이 악화되면서 고용과 가득액이 가장 높은 의류봉제산업부터 공동화 된지 오래다. 난파선에 쥐 빠져 나가듯 국내 기업이 해외로 탈출한 것이다. 봉제뿐 아니라 제직과 편직, 염색가공이 따라가고 있고 장치산업인 면방까지 해외 탈출이 줄을 잇고 있다.
그나마 국내에 남아있는 기업들은 사양이란 모진 풍토병을 극복하며 버티고 있다. 이 역시 세계의 공장 중국과 규모경쟁 공세에서 차별화로 살아남았다. 차별화는 지금 이 순간도 끝간데 없는 진행형이다.
섬유산업의 구조고도화는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논리이고 현실적인 대안이다. 무엇보다 세계적인 첨단 설비로 무장해야하고 그 바탕에서 신기술 개발과 효율적인 마케팅 전략이 급선무다. 장치산업의 대명사인 화섬산업부터 중국과 인도의 저가 공세에 살아남기 위한 첨단 설비 투자가 급선무다. 지금과 같은 찔끔투자로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럼에도 거액의 투자가 필요한 화섬산업에 신규투자가 극히 저조하다. 대기업 오너들이 차별화 소재를 위한 첨단 설비 투지를 기피하고 있는 것이다. 적당히 현상유지하다 안되면 막판에 간판 내리겠다는 생각인지 모른다.
면방산업은 지난 5년간 거듭되는 장기 불황에 만신창이가 됐다. 국내 설비는 많이 현대화 돼 있지만 차별화 특수사 개발전략이 아직도 굼뜨고 있다. 체질이 워낙 보수성이 강해 순발력이 떨어지는 기업이 많다. 차별화 전략이 급선무다.
대구 직물업계도 처절하게 망가졌다. 보유 직기의 절반을 세워 놓고 있다 올 봄부터 연사물을 중심으로 가동률이 다소 올라가고 있을 뿐이다. 첨단 설비 투자가 이루워지지 않은채 중국과 같은 품목 짜다 혼쭐이 났다. 투자할 돈도 없지만 안 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지자 투자를 기피한 채 임대공장 전환이 유행이 되고 말았다. 용기 있는 신규투자자가 열 손가락 미만이다.
바늘과 실 관계인 염색공장들도 상당부문 기진맥진 하고 있다. 직물 경기가 곤두박질치니 득달같이 염색공장에 파급되고 있다. 극소수 리딩 기업을 빼면 노후설비로 근근이 유지하고 있다.
아시아의 니트산업 메카를 추구하고 있는 경기북부 니트업계도 팍팍하고 고단하기는 매한가지다. 규모가 작고 오너가 기술자 출신이 많아 시장변화에 순발력은 있지만 근본적인 경기불황을 벗어날 길이 없다. 모두가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섬유패션 전반이 전자, 조선, 해운, 철강, 석유화학보다는 조금 나은 편지지만 어려운 사정은 대동소이 한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섬유패션산업은 특수성과 갈고 닦은 노우하우를 감안할 때 쉽게 주저앉는 산업이 아니다. 조금만 힘을 보태주면 기사회생이 가장 빠른 업종이다. 정부가 5대 주력산업 구조조정을 위해 수십조의 국민 혈세를 쏟아 부울 것만 선택과 집중할 것이 아니라 조금만 지원하면 탄탄대로인 섬유산업에도 관심을 둬야한다.

토사곽란에 소독약 바르는 식 안 된다

자구노력이 강한 섬유패션산업에 구조 고도화를 위한 장기 저리자금 1-2조원만 지원하면 체력이 급상승할 수 있다. 차별화 특화 전략을 위한 첨단 설비와 신기술 마케팅 개척에 정부가 팔소매를 걷어야 한다.
조선 해운 철강 등에 수 십조원을 지원해도 밑 빠진 독에 물붓기다. 고용과 가득액에서 가장 앞선 섬유패션산업의 구조 고도화를 위한 정부의 과감한 지원정책이 강화되면 체력이 급상승 할 수 있다. 소가 언덕이 있어야 비비는 법이다. 더 이상  망가지기 전에 작은 돈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섬유패션산업에 눈을 돌려야 한다. 그 바탕에서 경기가 와도 사람이 없어 헛발질을 해야 하는 인력대책도 과감히 마련해야 한다. 내국민은 떡 쪄놓고 불러도 안 오는 현실을 직시하고 외국인 산업연수생을 내국인 근로자의 50%까지 사용하도록 한도를 조정해야 한다. 산업이 건강할 때 약을 써야 약발이 받는다. 토사곽란에 소독약 바르는 식의 우매한 정책으로는 산업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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