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꺼질까봐 걸어 다니기 겁나서 하는 기우가 아니다. 기업과 국가를 불문하고 1등을 해야 할 분야에서 꼴찌를 하고 꼴찌를 해야 할 곳에서 1등을 하면 싹수가 노란 것은 불문가지다.
요즘 선거판에 홀려 실상을 망각해서 그렇지 나라 돌아가는 통박이 예사롭지 않다. 한두번 들어본 레코드판이 아니지만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 속도가 가히 세계 선두그룹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실제 한국은 고령화 속도에서 가장 빠른 1등 국가이고 2050년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65세 이상 고령화 인구 비율이 높은 나라가 된다. 이미 작년에 고령 인구가 13%를 기록한데 이어 2050년에 36%까지 급등한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1.1명)은 급격한 생산인구 감소를 가져오고 2050년에 현재 5200만 인구가 570만명이나 줄어 인구 감소율에서도 세계 상위 국가로 부상한다. 흔히 65세 고령인구 비율이 24%를 넘으면 그 나라는 늘어나는 복지수요에 성장판이 닫힌다는 것이 정설이다.

벤더들 원부자재 가격 전가 한계 왔다.

선거가 임박하자 정치권이 온갖 장밋빛 청사진으로 둘러대지만 경제 사정을 보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54개월 연속 최장기 내수 침체에 최악의 청년실업률이 사안의 심각성을 웅변으로 말해준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15개월 연속 역주행 하고 있고, 내수 경기는 기약 없는 절벽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2.6%로 쪼그라들었고 고용시장은 더욱 악화돼 청년실업(15-29세)률은 사상 최고인 12.5%(2월 현재)에 달했다. 가계부채는 1200조가 넘어 경고 전조등이 켜졌고 국가 채무도 600조를 넘어섰다. 대한민국 경제가 저성장을 넘어 장기침체의 수렁에서 허우적 거릴 위기다.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이번 선거가 끝나면 그 후유증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국가 경제가 더욱 휘청거릴 판이다. 재정 형편만 넉넉하면 노인들에게 기초연금 월 100만원씩 지원금을 준들 누가 뭐라 하겠는가마는 뒤주가 비었는데 월 30만원씩 주겠다고 허풍을 떠는 선거공약의 뒷감당이 겁난다. 아무리 국가 경영에 책임지지 않는 정치판이라고 해도 월 10만원씩 더 주면 소요 재원이 6조가 넘는다는데 무책임한 대포만 쏘아대 유권자만 혼란스럽다. 이래저래 요즘은 저자거리 마실 나온 사람마다 나라 경제를 걱정하는 세태가 되고 말았다.
본질 문제로 돌아가 12월 결산 섬유패션 상장기업의 지난해 경영실적을 보니 양극화 현상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내수경기 절벽으로 인한 내수패션업계 실적이 크게 오그라든데 반해 글로벌 경영으로 승부를 건 의류수출 벤더들의 도약이 더욱 두드러졌다. 화섬과 면방, 섬유소재 분야는 극소수를 제외하고 모조리 눈덩이 적자에 경영수지가 더욱 악화됐다.
면방사 중 일신방이 대공황 속에 100억원 규모의 영업이익을 낸 것은 차라리 기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면방적 이면서도 모달텐셀 방적사 메이커인 삼일방이 작년 하반기 들어 흑자 전환했지만 기라성 같은 면방사 대부분 면사영업에서 눈덩이 적자의 처참한 실적을 보였다.
화섬역시 휴비스 같은 단섬유 주력업체가 흑자를 냈으나 나머지 장섬유 부문은 하나같이 적자를 기록했다. 휴비스도 보물단지 SF부문 흑자규모가 전년보다 많이 줄었다. 시황은 나빠지는데 후발주자 태광이 뒤늦게 치고나와 시장가격이 붕괴된 것이다.
직물업계 역시 국내 생산 기업은 거의 적자 수렁에 빠졌고 그나마 해외에 공장을 둔 기업만이 의외로 알차게 이익을 많이 내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수출 의존형인 우리 섬유산업이 가는 길에 10종 허들도 모자라 온갖 헤저드가 펼쳐지고 있어 걱정이다. 이미 중국에 레귤러 품목에서는 경쟁력을 잃는 우리 섬유산업이 국제 교역 조건까지 우리의 염원에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섬유산업이 가야하는 방향은 차별화특화전략임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인력난과 천정부지로 뛰어버린 임금구조 등으로 경쟁력을 잃은 상황에서 차별화를 통한 고급 고가화 전략은 지상 명제다.
그러나 글로벌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시장은 중고가 보다 값싼 제품 쪽으로 급속히 전환하고 있다. 품질은 뒷전이고 우선 가격이 싸야 바이어들이 입질을 할 정도다. 직물 원단시장뿐 아니라 의류수출 시장에서부터 이 같은 현상은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우리 의류수출 벤더들의 시장인 미국의 대형 유통 바이어마다 매년 가격 후려치기가 정례화 되고 있다. 해마다 전년비 10-15% 가격을 깎고 있는 것이다.
단일 오더 당 몇 십만장 이상을 몰아주는 대신 가격을 무자비하게 깎는다. 한 두 해가 아니고 매년 반복되는 현상이다. 해외 소싱 능력이 이미 공급과잉 상태가 되고부터 벤더들은 바이어 요구를 거부하지 못하고 울며 겨자먹기로 수용하고 있다. 벤더 역시 적자보는 장사는 할 수 없다보니 만만한 원부자재 업계에 깎인 가격을 전가시킨다.
원부자재 업체 입장에서 ‘甲’인 벤더 요구를 거절할 수 없어 마지못해 수용한다. 원부자 가격이 지구촌에서 가장 싼 곳을 뒤져 한푼이라도 원가를 낮추는데 안간힘을 써왔다. 거대한 미국 의류 시장의 주종 품목은 면 니트 셔츠이기에 가격 조건이 유리한 인도파키스탄 면사 구매 비중을 갈수록 높이고 있다. 한국산 화이트사 보다 품질은 떨어지지만 가격이 싼 맛에 인도
파키스탄산 면사를 사용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과거 전성기 370만 추에 달하던 국내 면방 설비가 100만추 규모로 급감했다.
최근에는 바이어의 가격 후려치기에 대응해 벤더들의 ‘더 싸게’ 전략은 인도산 순면 코마사 사용마저 줄어들고 있다. 코마사 대신 값싼 P/C, CVC 등 혼방사로 소재 변경이 뚜렷해졌다. 순면 소재의 고급스러움 못지않게 보기에 좋고 화섬의 기능성을 결합한 장점을 활용하다 보니 품질 저항이 없는 것이다. 더 좋게 고급화보다 더 싸게 전략이 힘을 받으면서 품질 고급화 개념이 싹 바뀌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원부자재 업체들도 더 이상 가격 인하 압력을 수용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의류 유통 바이어뿐 아니다. 직수출 비중이 큰 ITY 싱글스판 등 환편 니트직물 업계는 더욱 심각하다. 한국의 ITY 싱글니트 직물은 가격대비 품질경쟁력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 받아왔다. 연사한 SDY 폴리에스테르사를 활용한 이들 환편직물은 한국의 간판품목으로 자리매김 한지 오래다.


값싼 비지떡 소재 부메랑 걱정된다.

그러나 작년부터 트랜드가 완전히 바뀐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상적으로 연사를 한 SDY 모사(母?) 소재가 안 팔리고 인터레스트 공정을 빼먹은 직방사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원단을 짜 놓으면 모사 사용 때보다 kg당 200-300원이 더 싸게 먹힌 저가 제품시장이 뜨고 있기 때문이다.
불황을 반영해 품질은 SDY 모사소재보다 훨씬 떨어지지만 외양이 비슷하고 가격이 싼 직방사 오더가 몰리고 있는 증거다. 화섬 메이커의 불황 속에 직방사가 불티나 수급 불균형을 이루는 이유다.
그러나 이 같은 저가 제품은 ITY 니트직물의 보편적 기준이 되고 내려간 가격은 모사를 사용해도 좀처럼 회복하기 어려운 악순환을 안고 있다. 극심한 오더가뭄에 우선 먹기는 곳감이 달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ITY 니트직물의 수명을 단축하는 위험한 현상이다. ‘더 싸게’ 전략이 제 발등 찍는 부메랑이 된다는 점에서 우리의 지상 목표인 고급고가화 전략에 역주행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국민소득  3만불 시대의 고비용 구조에서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생산 하는 저가 제품에 의존하는 것은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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