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신드롬에서 깨어나 일상으로 복귀하자 오만가지 무거웠던 침잠이 표면으로 부상해 가슴을 짓누른다. 먼저 공천 학살 후유증으로 심한 내홍을 겪고 있는 정치권의 꼬라지부터 분통 터지게 한다.
수출은 14개월 연속 적자행진이고 내수경기 역시 절벽상태에서 기업마다 땅거지는 한숨소리가 요란하다. 경제가 처절하게 망가지다보니 일자리가 없어 청년층 실업률이 사상 최악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2월 청년 층 실업률이 공식적으로는 12.5%이지만 고시생이나 취업 못한 대학원생을 포함한 비자발적 체감 실업률이 34%를 웃도는 정도다.
금수저, 흙수저, 헬조선이란 냉소주의 용어가 유행하면서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통계청 발표에서 우리나라 상위 30% 가구가 73.4%의 순자산(부채를 뺀 자산)을 차지한 반면 하위 30%는 2.5%를 놓고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2015년 가계금융 복지조사 결과) 응변으로 말해주는 이 같은 수치의 빈부격차에 흙수저 당사자들이 억장이 무너져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다.

섬유원단·패션제품 금맥보인다
 
 잘되는 것은 자기 덕이고 안 되면 조상 탓하는 정치권의 핑계 때문에 부화가 더욱 치민다.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청년 실업이 최악을 보인 것은 글로벌 경제침체가 가장 큰 원인일 수 있다. 그러나 이지경이 되도록 제때에 처방을 못 내린 책임은 정부와 국회의 합작품임은 부인 못할 사실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국회탓, 국회는 정부탓으로 씩씩거려 뻔뻔함에 진력이 난다. 망가진 19대 국회가 빨리 종을 치고 20대 국회에서 새판을 짜야한다. 누가 흰 까마귀이고 누가 검은 까마귀인지 4·13총선에서 유권자들이 눈을 부릅뜨고 선택해야 한다.
본질 문제로 돌아가 지난주 상하이에서 열린 춘계 ‘인터텍스타일상하이2016’과 글로벌 패션박람회인 ‘CHIC’를 참관하고 돌아왔다. 처음에는 경착륙설이 파다했던 중국경제의 침체를 걱정했지만 현장상황은 전혀 딴판이었다. 때마침 중국의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가 폐막하면서 이거창 총리의 6.5% 경제 성장 낙관론을 시장에서도 그대로 반영됐다. 물론 과거 고도성장기에 무차별 늘렸던 과잉투자의 부작용이 도처에서 확인됐지만 적어도 13억 섬유패션시장은 금맥 그 자체였다.
세계 최대 직물 소재 전시회인 인터텍스타일 상하이에는 세계 각국 섬유소재 원단 업체들이 ‘역시 중국시장에 돈이 보인다’는 판단을 통해 3000여개 기업이 출품했다. 한국도 200개 가까운 원단업체가 참가해 차별화된 팬시 소재를 선보여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경기불황이 아직 진행형이지만 필요한 원단은 가격 불문하고 지갑을 열었다. 중국바이어들은 무조건 차별화 신제품에 눈독을 들였고 과거의 기존 레귤러 원단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정장·스포츠·캐주얼 소재들도 과거에 못 본 색다른 원단만 찾았다. 여기에 포커스를 맞춘 한국의 우븐과 니트원단 업체 등이 기대 이상의 계약을 맺고 희망을 확인했다.
같은 기간 동시에 열린 ‘CHIC’패션박람회 역시 작년보다 훨씬 많은 바이어들이 몰려 내려앉은 중국 경제의 소문과는 딴판이었다. 역시 같은 동양인 체격으로서 동질감을 갖는 데다 한류바람은 여전히 거세 한국 패션 브랜드에 대한 열기가 확실히 느껴졌다.
의류산업협회가 지원한 동대문의 르돔관과 패션협회 주관 참가업체 모두 작년보다 높아진 한국 패션제품 인기를 온몸으로 체험했다. 올해 처음 ‘CHIC에 참가한 패션그룹 형지는 샤트렌과 까스텔바쟉 2개 브랜드를 출품해 시작부터 대박을 터트렸다. 한국 패션의 선두주자의 명성 그대로 중국의 패션사업 관계자들이 패션그룹 형지와의 거래에 의욕을 보인 장면이 두드러졌다.
거두절미하고 과거 10%대의 고도성장기가 지났다 해도 6.5%의 경제성장은 전세계 선진국에서 가장 앞선 성장률이다. 돈 있는 곳에 시장이 있고 그곳에 가야 돈을 벌 수 있다. 바로 13억 중국시장은 제2의 한국 내수시장이고 이 시장 선점 여부에 따라 한국 섬유 패션산업의 명운이 걸려 있음을 새삼 확인했다.
그러나 중국의 유통은 매우 복잡다난하고 그들만의 관시를 활용하지 못하면 실패한 확률이 높은 사실을 우리 패션업계가 직시해야 한다. 지난 20년 가까이 수많은 한국 브랜드가 중국에 진출했으나 성공한 기업은 이랜드 그룹을 중심으로 열손가락 미만이다. 웃고 들어갔다 울고 나오는 패션 브랜드가 부지기수였다.
이마트, 롯데마트가 중국에 진출했다가 코피를 쏟은 것도 중국의 유통구조와 실상을 모르고 덥썩 진출했기 때문이다. 싼 물건을 만드는 기술과 능력은 중국이 한국보다 훨씬 앞서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백화점에 입점하는 것 또한 간단치가 않다. 한국 백화점이 무소불위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갑질’하는 것은 오히려 양반이다. 백화점에 입점하기 위해서는 담당자에게 20만위안(4000만원) 정도는 뒷돈으로 찔러줘야한다는 소문이 정설로 나돌고 있다. 판매수수료도 35% 내외로 한국과 같은 수준이다. 얼씬하면 세일을 강요하는 것도 우리와 비슷한 양상이다. 그러니 백화점보다는 가두매장을 상대로 선수금 30% 받고 완제품 딜리버리 할 때 70% 받는 좌수우봉 형태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결코 간단하게 진출해서 성공하기 어려운 곳이 중국임을 제대로 알고 시도해야 한다. 더구나 저가품으로 중국에서 승부하는 것은 자살행위 임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 중국 진출 업체들의 한결같은 지적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패션의류 진출과 달리 국산 원단의 중국시장 가능성은 상당히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중국 경제가 위축되고 중국 내수 패션시장이 크게 출렁이자 작년부터 원단 생산도 많이 침체된 것이 사실이다. 또 설비 자체가 대형화 돼 있어 규모 경쟁은 유리하지만 과잉 설비로 인한 주체 못할 물량으로 산더미 같은 재고가 기업생존을 짓누르고 있다.
중국은 기업의 70%가 국영이어서 웬만하면 견디어왔지만 부실이 워낙 심화되면서 많은 회사들이 도산됐다. 또 중견 섬유회사들도 5~6개 회사가 1개회사로 통합하는 등 구조조정도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9월 항저우에서 열리는 G20정상회의를 앞두고 환경배출 업체에 대한 무더기 단속이 진행되고 있다. 작년 말부터 시작된 오폐수 배출 기업을 단속하면서 소흥일대 염색섬유업체 3000여개소가 가동을 중단했다고 한다. 화섬 염색업체가 몰려있는 소흥에서 영세기업들이 무더기로 가동중단이 내려지자 강소성 무지앙에 집중돼있는 제직 업체들도 연쇄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소흥 일대 3천개 공장 문 닫아 호재
 
소흥(紹興)일대 3000개 화섬염색업체가 문을 닫고 있는 것은 한국업체들에게 큰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해외시장에서 중국산과 부딪히는 경우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중국 내수패션용 화섬·교직물 수출에도 큰 호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해외섬유 수요가 아직 본격 회복되지 못하고 있고 내수 패션경기 역시 절벽인 상태에서 대구섬유업체의 가동률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이 영향이 아닌가 보고 있다. 대구에 세워진 직기가 다시 돌고 연사기 확보가 어려울 정도이며 가연업체들의 복합사가 동난 것도 이 때문일 수 있다. 이 호기를 제대로 활용해 잃어버린 15년의 대구경북산지가 기사회생하는 계기로 삼아야한다.
G2 중국,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변한 중국이 우리 섬유·패션업계의 금맥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중국을 제대로 알고 접근해야 대박을 기대하지 조급하고 설익은 양태로 접근하는 것은 쪽박이 기다리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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