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금수저흙수저’의 자학성 장탄식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정치권의 무기력이야 이미 체념상태지만 먹고 사는 경제가 망가지고 있어 공포와 분노가 들끓고 있다. 수출은 14개월째 마이너스 성장을 질주하고 내수경기 역시 깊은 터널 속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섬유패션 경기는 말할 것 없고 주력산업인 조선, 철강, 자동차, 석유화학 등 대표업종이 거의 대부분 주저 않고 있다. 국민 행복시대를 표방한 현 정부에서 과거 정권에서도 보기 어려운 마이너스 경제의 신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어느 정도 심각한지는 수치가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지난해 말 외부감사 대상 비금융 법인 2만 5000개 기업 중 3년 연속 영업 이익으로 이자를 못낸 한계 기업이 3300개에 달했다. 전체 기업의 15.2% 달했다는 공식발표에 허탈한 탄식을 떨칠 수 없다.

금융 지원과 보상은 전혀 다른 의미

최근 대형 금융기관이 조사 분석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100대 기업 중에서도 11개 기업이 좀비 기업으로 드러날 정도다. 경제가 날개 없이 추락하다 보니 청년실업자가 110만 명에 달하고 실제 청년 실업률은 23%에 달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구직, 결혼, 출산 단념자들의 체념적인 냉소인 ‘헬조선, 흙수저’ 탄식이 임계점에 와있는 것이다.
“핑계 없는 죽음 없다”고 원인은 세계의 공장에서 시장으로 변한 중국경제 침체에 돌리고 있다. 이와 함께 국제유가 폭락으로 인한 중동 산유국 경기 추락으로 몰고 간다. 물론 이 양대 악재가 우리경제 성장판을 닫는 중요한 원인임을 부인 못하지만 이것이 마이너스 경제 신기록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시장은 항상 더 좋고 더 싼 제품을 원한다. 더 좋고 더 싼 제품을 개발하는데 우리 산업이 얼마나 주도적인 노력과 역할을 했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경기가 아무리 불황이라도 명품 시장은 별 타격을 받지 않는다. 반면 싸고 좋은 시장은 항상 문정성시를 이룬다. 자라와 유니클로를 포함한 글로벌 SPA 브랜드의 일취월장이 하나의 예증이다. 섬유 패션 업계가 지난 10년간 그 같은 획기적이고 파격적인 신제품 개발에 얼마나 올인 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대구경북 화섬직물과 경기북부 니트직물업계가 과연 사즉생(死卽生) 각오와 집념으로 시장을 놀라게 할 신제품을 개발했는지 손을 얹고 반성해야 한다.
설상가상 악재는 겹치게 돼 있다. 남북 간에 정치 군사적 완충지대인 개성공단마저 사실상 끝장나고 말았다. 국가 안보차원에서 불가피한 점을 공감하지만 그로 인해 북한이 열 개를 잃었다면 우리도 다섯 개를 잃었다. 둥지 잃은 개성공단 기업 당사자들의 한숨과 눈물이 보태진 절박한 현실뿐 아니다. 원부자재는 100% 남측에서 공급한 특성으으로 우리 측 거래 협력업체 4000여개사들의 시리고 먹먹함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북한에 연간 1억 달러가 임금 몫으로 들어간데 따른 핵 개발비 사용 가능성 앞에 반기를 들 수 없으나 그 파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1억달러 임금을 주고 생산액은 5억 달러에 달했다. 판매가 기준으로는 20억 달러에 달한다. 5억 달러 생산액 중 원부자재 비중이 2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그야말로 경쟁력을 잃고 축소지향으로 일관한 국내 원부자재 업체들은 작은 시장이 아니다. 이무리 안보 이슈에 눌려 ‘찍’ 소리 못할 처지라도 당장 당사자들의 생사 문제가 걸린 이상 피해자들의 분노를 떨칠 수 없는 것이다.
또 하나 혼란스런 것은 개성공단 폐쇄가 불가피해 군사작전 하듯 결행했다쳐도 정부의 사후관리 능력에 많은 헛점이 드러나고 있다. 정부가 수시로 개성공단 기업 피해방지를 위한 각종 지원금을 약속하면서 실제 집행되기도 하지만 우선 당장 발등의 불인 원청업체의 소유인 원부자재 보상 문제에 아무런 진전이 없기 때문이다. 남북경협자금으로 지원되는 것은 입주기업들이 정상적으로 보험금을 냈기 때문에 고정자산 피해액은 당연히 지급되는 절차다. 그러나 지금 원청업체와 개성공단 기업 간에 벌어지고 있는 유동자산 손해배상 소송문제는 전혀 정부 해결책이 없는 것이다.
정부가 제시한 금융지원, 대체단지 지원 등 각종 지원은 실제 이자 내고 빌린돈일 뿐 보상과는 거리가 멀다. 원자재 소유권자인 원청기업 입장에서는 개성공단 기업에 손해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논리다. 반면 개성공단 기업은 자신들의 과실이 아니라 천재지변과 같은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몰고 온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어떻게 배상할 수 있느냐는 주장이다.
양측 모두 당연한 주장이다. 결국 원청업체와 개성공단 임가공 기업 간의 싸움은 법정문제로 비화돼 소송전이 벌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벌써부터 이로 인한 갈등과 대립이 심각하게 번지고 있다.
이 때문에 국가 안보상 불가피한 통치행위로 개성공단 문을 닫게 만든 정부가 책임지고 해결하는 것이 당연한 순리다. 정부가 보상이란 ‘보’자도 꺼내지 않고 있어 원청기업과 임가공 하청기업 간에 싸움붙이는 모양새로 방치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 같이 개성공단을 닫아버린 정부가 원부자재 문제에 대한 보상 문제를 방치하다 보니 임가공료 결제를 둘러싼 갈등 또한 심각할 수밖에 없다. 원청업체는 “개성공단에 잠겨있는 원부자재가 수억원에 달하는데 이 문제 해결 없이 어떻게 임가공료를 결제하란 말이냐”고 주장할 수밖에 없다. 반면 임가공 업체들은 “천재지변 같은 불가항력적인 상황이니 이미 납품한 임가공료를 결제 해달라”고 맞불을 놓고 있다.
개성공단 기업들만 피해자가 아니라 개성공단과 거래하는 원청업체도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원청업체들이 이미 납품한 임가공료를 지급하라고 채근해 왔다. 기업현장에서는 부글부글 끓는 상황이다.
하나의 예증으로 형지그룹 자회사인 교복 전문업체 형지엘리트도 개성공단 중단으로 수억원의 직접 피해를 입은 회사다. 그럼에도 패션그룹 형지는 최병오 회장이 대승적 차원에서 교복 임가공료 10억원 규모를 선뜻 결제하는 용단을 내려 임가공 업체들이 환호했다. 우리나라 패션기업의 선두주자를 자처하는 패션그룹형지 정도니까 회장의 결단으로 그 많은 손해를 감수하며 과감히 지급한 것이다. 다른 원청 패션기업들이 알게 모르게 개성공단 기업에 내용 증명을 보내고 담보물 제공을 요구하는 그런 행태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최병오 회장 대승적 용단 평가해야

개성공단은 이제 완전히 사망한 것으로 봐야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삼일절 경축사에서 북측에 “대화의 문을 완전 닫은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지만 전제조건은 북한의 핵 포기다.  그럼에도 천방지축 길길이 뛰고 있는 북한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것으로 믿는 것은 해가 서쪽에서 떠주기를 바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개성공단 폐쇄로 인한 우리 내부의 갈등과 마찰을 하루빨리 수습하고 정부가 피해기업이 새롭게 재출발하도록 모든 선제적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 첫 걸음은 보험지급, 금융지원 등 지원이란 이름으로 호도할 것이 아니라 마찰의 원인인 원부자재의 유동자산 보상책이 선행돼야 한다. 원부자재 보상 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한 후 국내 대체단지나 해외 소싱 기지 확보를 마련해주도록 해야 한다. 둥지를 잃은 새는 알을 못 낳는다. 개성공단 기업들이 새 둥지를 마련하도록 보상 문제부터 해결해주길 거듭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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