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탐방] (주)성진장갑(대표 김동식)

공장 4곳 1300대 기계에서 연 1억켤레 생산
일본ㆍ프랑스ㆍ러시아 절찬 수출, 내수도 절반
세계 최고의 산업용 명품장갑…더 노력해야죠
“퀄리티 높여 중국 저가 제품공세에 맞설 것”

김동식 성진장갑 대표(오른쪽)는 한 평생 세계 최고 명품 장갑을 만드는 것 밖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얼굴이 사진으로 찍히는 것을 사양하다 설득 끝에 잠깐 포즈를 취했다. 왼쪽은 관리를 총괄하고 있는 김광수 이사.

 

“명품장갑을 아시나요? 장갑도 명품이 있습니다. 편하고 깨끗하고 질기면서도 아름다운 명품장갑 말예요. 성진에서 생산되는 성진나이스장갑이야말로 바로 세계 최고의 장갑입니다”
김동식 성진장갑 대표의 설명에 기자는 토를 달았다. “깨끗하다? 장갑은 어차피 사용하면서 금세 더러워질 텐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김 대표가 장갑을 뒤집어 보이며 “그게 아니고요, 장갑에 남아있는 인체에 유해한 코팅 등 잔류물이 남는데 클린 작업을 통해 이를 완전히 제거해야 합니다. 특히 일본ㆍ유럽에 수출을 많이 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가장 신경써야할 부분이죠”한다.
기자가 지난주 의정부 용현산업단지에 위치한 (주)성진장갑을 찾았을 때 공장의 위용을 보고 깜짝 놀랐다. 대량 생산이라지만 소형 제품(장갑)을 만드는 회사이기 때문에 규모를 나름 짐작했던 터다. 하지만 이 같은 선입관을 단번에 뒤집어놓았다.
편직실, 코팅실, 자동포장실, 도트실 일명 사바리실 등 여러 단계로 구축된 3개의 대형 공장이 포진돼 있었고, 이곳에서 쉴 새 없이 다양한 장갑들이 쏟아져 나왔다. 줄지어 바지런한 기계들이 질서있게 자동으로 돌아가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창고에는 말 그대로 장갑 산더미였다.
기능별, 용도별 장갑들은 단계별 공정과 테스트를 거처 포장박스에 담겨 비축선반으로 옮겨져 선적을 준비하고 있었다. 포장지엔 일본과 유럽행을 나타내는 글씨가 찍혀있었다.
성진장갑은 이곳 의정부 3개를 포함해 전주까지 4개의 공장에 1300대 기계가 있다. 연 1억 켤레의 장갑이 생산돼 각각 수출과 내수로 절반씩 나가고 있다. 베트남 법인에서는 동남아 지역 판매를 전담한다.
“직원 250명이 설비를 풀가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창하게 내세울 만큼은 아니죠” 김동식 대표는 회사를 소개하면서도 자랑에는 인색했다. 보통 사장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누가 봐도 국내 최고 장갑회사일 뿐 아니라 맨손으로 일군 성공신화의 주인공인데도 심지어 자신의 얼굴이 신문에 나오는 것조차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었어요.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지만 더 명품으로 가야하죠”
기계 수량 뿐 아니라 최신 설비, 생산량 등에서 세계적 규모라는 게 함께 자리한 김광수 관리 이사의 설명이다.
성진은 지난해 매출 225억 원 가량을 달성했다. 이중 수출이 43%로 일본ㆍ프랑스ㆍ러시아 등에 96억원 어치를 팔았다. 전년도보다 수출액이 소폭 감소했는데 이는 글로벌 불황으로 산업 활동이 위축된 탓이다.
김 대표는 “많이 팔았지만 순익은 외려 줄었다”고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성진장갑에서 나오는 것은 대부분 산업용이다보니 경기를 많이 타는 편이다.
절단방지용 HPPE장갑 비롯해 라텍스, 면장갑, PU코팅 장갑, NBR합성수지 장갑, 정전기 방지 ESD, 엠보싱 PVC 장갑 등이 주력 제품이다. 부엌용 고무장갑을 빼놓곤 모든 장갑이 성진에서 만들어진다고 보면 된다.
장갑이 나오는 과정은 일반 섬유제품보다 공정과 테스트가 까다로워 보였다.
원사 꼬기 작업을 거치거나 제직을 한 뒤 손모양의 장갑을 만들고, 용도별 고팅을 한 뒤 테스트를 거쳐 완제품으로 ‘인증’을 받기까지 단순하지 않았다.
그런데 코팅과정에서 인체에 유해한 잔류물을 제거하는데 심혈을 기울인다는 말은 뜻밖이다. 김 대표에 따르면 유해 잔류물 제거야말로 성진장갑의 고기능성 퀄리티 외에 또 다른 차별화 경쟁력이다.
“일본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 수출되다보니 특히 이 부분에 크게 신경을 써요, 일부 제품은 중국산 원자재를 사용하는데 중국 소재로 만들어 나온 제품은 신뢰가 떨어져 몇 번이고 체크해야 합니다”
김 대표는 40년간 장갑에 올인하면서 설비에도 달인이 됐다. 클린기계 등 상당수 기계는 자신이 직접 만들어 효율성을 높였다. 이를테면 클린 공정단계의 일본산 기계들이 한손모형으로 된 것을 양손모형으로 바꿔놓은 것은 김 대표 작품이다. 공장을 동행하며 안내를 맡은 김 이사에 따르면 타워형 기계나, 체인 등 신기계의 상당수가 김 대표의 손길로 완성된 것이다.
장갑시장도 중국의 물량 공세가 예외 아니다. 값싼 중국ㆍ동남아제품들이 활개치면서 매출 증대에 지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역시 품질로 승부를 하겠다는 전략이다. 단가가 비싸더라도 품질에서 중국산을 앞도하면 결국 시장에서는 성진제품을 찾게 된다는 것.
김 대표가 장갑업종에 뛰어든 것은 도전과 집념으로 무장한 자신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고향 전북 익산에서 상경해 20세 무렵 우산판매업을 하다가 1991년 ‘장갑’을 만들기 시작했다. 모두가 장갑 업종을 비관적으로 생각하며 3D업으로 인식해 관심을 갖지 않았던 시절 그는 기계 14대로 서울 종암동에서 ‘형제장갑’을 설립 본격적으로 장갑생산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IMF 외환위기 때 전환점이 왔다. “누군가 장갑생산 설비를 구매하려고 계약까지 마쳤는데 장기불황을 우려해 기계를 포기했더라고요. 이를 모두 헐값으로 사들였어요. 장갑에 인생을 걸겠다고 다짐한 거죠”
결국 이 기계들이 김 대표의 뚝심과 결합해 오늘날 성공신화를 만들었다.
당시의 ‘형제장갑’이 ‘형제나이스장갑’을 거쳐 현재 세계적인 장갑메이커 ‘성진 나이스장갑’으로 성장한 것이다.
김 대표에 따르면 장갑은 산업동향과 맞물리며 재고가 쌓이다 소진하기를 반복하면서 결국 대부분 팔려나간다.
이날도 창고에는 가늠하기조차 힘든 완제품 물량이 쌓였다. 그런데도 기계는 쉴 새 없이 돌고, 장갑들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따라서 재고에 대해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재고가 쌓인 듯 하다가도 경기가 호전되거나 계절이 바뀌면 금세 내수와 수출 선에 물량 대기가 바쁘기 때문이다. 250명의 근로자가 3교대로 24시간 기계를 움직이고 있다.
김 대표는 모두가 신형 설비인데다 ‘성진나이스장갑’이 선진국에서 정평이 나있는 때문인지 자신감이 엿보였다.
앞으로 목표를 물었다.
“한 가지밖에 없어요. 내 새끼 같은 장갑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사랑받는 세계 최고의 명품으로 만드는 것 밖에요”
회사 밖으로 나오자 김 대표가 새로 뽑았다는 통근버스가 구내식당 쪽에 주차돼 있었다. 배웅한 김 이사는 “김동식 대표가 직접 광주까지 내려가 버스 회사에서 꼼꼼히 살펴본 뒤 손수 운전해 끌고 왔다”고 귀띔했다.

   
   
성진장갑의 공장설비. 맨 아래사진은 김 대표가 ‘절단방지 장갑’의 품질을 확인시켜 주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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