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긴장완화의 최후의 보루인 개성공단이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난 2004년 첫 삽을 뜬 개성공단이 13년만에 사망선고를 받고 날강도 북한에 몰수됐다.
세상사 모든 것이 주인 없는 송사 없고 원인 없는 결과 없다. 모든 원인이 핵개발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촉발된 북측의 책임이다. 5만 4000명의 북측 근로자가 연간 1억 달러를 임금으로 받아 20만 개성시민의 호구를 책임진 곳이 개성공단이다. 북한 근로자가 벌어들인 피 같은 달러가 김정은 개인금고를 채운 달러박스다.
우리측이 미일과 국제 공조를 위해 고육지책으로 개성공단을 중단한다고 발표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하루 만에 추방과 동결이란 보복으로 맞섰다. 그동안 124개 우리기업이 투자한 1조 900억 원에 달하는 자산을 동결 강탈하는 국제 강도짓을 저질렀다. 개성공단 임금수입이 없어도 핵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계속하겠다는 악다구니를 쓰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악랄하고 고약한 집단의 진면목을 다시 한 번 여과 없이 드러냈다.
 
남북간 최후의 보루 역사 속으로

그러나 지난 13년의 개성공단 과정을 돌이켜보면 허탈과 분노에 이른 기구한 전개에 대한 착잡한 감회를 떨칠 수 없다. 그 동안 가동과정에서 무수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칼날 위를 걷는 심정으로 위기를 극복해왔다. 2013년 4월 초부터 북측의 일방적인 통행금지로 5개월 반 동안 문을 닫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다. 중요한 것은 얼씬하면 조자랑의 헌 칼 쓰듯 폐쇄 협박해온 북측의 망동이 절제되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해 9월 개성공단 재가동 과정에서 “남북 당국은 개성공단은 어떠한 정치적? 군사적 상황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정상 가동한다”는 대전제에 합의하고 서명한 것이다.
그것이 불과 2년 5개월 만에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원인은 당사자인 우리뿐 아니라 국제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핵개발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때문이었다.
그런 한편 개성공단 폐쇄 이후 입주기업 당사자 뿐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충격과 우려를 금치 못하는 것은 개성공단의 역할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단순한 경제적 손익 뿐 아니라 정치군사적으로 개성공단이 갖는 의미는 결코 과소평가 할 수 없다.
사실 13년 전 개성공단이 첫 삽을 뜨기 전까지 그곳은 북한군 최정예 2개 군단이 주둔하던 요새였다. 탱크와 장사정포 등으로 무장한 남침로인 것이다. 이 군사적 요새를 북쪽으로 10km 후퇴시켜 송악산 쪽으로 군부대를 옮겼고 그 자리에 개성공단이 조성됐다. 총 2000만 평 규모를 개발해 공단과 호텔 등을 만들어 남쪽의 자본과 기술, 북측의 노동력을 결합한 남북 경제 교류 협력의 생생한 현장으로 키울 참이었다.  당초 계획이 빗나가 겨우 100만 평 시범단지로 출발했고 이마저 50만 평 규모에 124개 업체가 입주해 가동하고 있는 것이다.
124개 업체가 작게는 50억에서 많게는 300억 ~ 400억 원 씩을 투자해 총 1조 900억 원이 투자 됐고 연간 줄잡아 5억 달러 규모를 생산해 전량 국내로 들여오고 있다. 판매가 기준으로는 20억 달러 규모에 달해 연간 1억 달러 임금 주고 5억 달러 벌어오는 남는 장사다. 5만 4000명의 북측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임금 연간 1억 달러는 월 기본급 75달러에 연장근무를 포함한 총액 기준이다.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중국에서 가동했다면 3억 달러 5억 달러는 족히 줘야 될 임금이다.
초기 가동 당시는 북측 근로자들이 말을 걸어도 대꾸하지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지만 어느덧 자유로운 대화가 이루워지고 초코파이에 이어 라면을 먹고 심지어 커피까지 마시는 천지개벽이 이루워졌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 실험장이 적중해 북측 근로자 모두 60-70%는 남측 사고가 길들어져 의식의 대 변화를 가져왔다. 개성공단이 당초대로 확장돼 북측 근로자 수가 20만-30만 명으로 늘어났다면 평양도 꼼짝 못했을 것이란 것이 정설로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은 대통령이나 총칼로도 이룰 수 없는 기업에 의한 변화의 바람임을 부인할 수 없다.
내국인 거래라서 관세가 없고 물류비가 싸 서울서 부산가면 출장이지만 개성가면 외출로 복명서를 단다는 얘기다. 전직이 안 돼 10년 이상 같은 직장 직종에서 근무하는 동안 숙련도가 뛰어나 품질 경쟁력에서 중국과 베트남산보다 훨씬 높은 비교우위를 갖고 있다. 이태리 신사복 기술자가 개성공단에 가 품질을 보고 “이태리보다 한 수 위다”고 감탄할 정도였다.
경제적인 면 못지않게 정치 군사적으로도 남북 긴장 완화의 완충지로서 매우 큰 역할을 했다. 천안함, 연평도 사건금강산 관광 중단 사태에도 남북 양측은 개성공단을 유지했다. 2013년 북측의 어이없는 몽니로 가동이 중단됐다가 재개된 후에는 북측 태도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개성공단 중단 시 겪었던 혹독한 고통을 의식해 그들도 개성공단을 애지중지했다.
우리측 입주 기업들은 개성공단 안정가동에 자신감을 갖고 마음껏 투자했다. 중국과 베트남보다 유리한 양질의 노동력과 저임금에 물류비관세 모든 면에서 비교우위를 자신하며 통 크게 투자했다.
그러다 이번에 청천벽력 같은 날벼락을 맞았다. 우리 정부의 전격적인 중단조치도 예상하지 못했고, 득달같은 북측의 자산 동결과 빈 몸 추방을 전혀 예상 못한 것이다. 자식 같은 공장 설비는 물론 수십억 완제품을 한톨도 못 가져오고 빈 몸으로 빠져 나왔다.
사실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은 대다수 전 재산을 개성공단에 투자했다. 실상을 모르는 국외자들의 수없는 퍼주기 오해를 감수하며 개성공단 사업장을 통해 회사의 명운을 걸었다. 단순 시설 투자비 뿐 아니라 완제품과 남아있는 원부자재를 손도 못 대고 고스란히 두고 와 수십억 원 어치의 완제품을 두고 온 기업이 수두룩하다. 의류와 신발업체 일각에서는 완제품을 두고 온 물량이 금액 기준 60억-70억 원에 달할 정도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이들 기업이 대북제재의 불가피한 정부방침을 거역할 수는 없다. 순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부를 믿고 투자했고 열심히 기업을 영위했던 입주 기업들의 줄도산을 방지하는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사업장도 잃고 거래선도 잃어 모든걸 상실한 입주 기업들에게 살길을 마련해줘야 한다. 과거 정권이건 현 정권이건 정부를 믿고 투자한 기업들이 무슨 잘못인가. 다각적이고 적극적인 특단의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남북경협기금 실탄 턱없이 부족

그러나 정부의 개성공단 가용 실탄은 고작 4820억 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것도 기금 지출계획 상 대출은 1.176억 원, 보험금은최대 3644억 원까지만 지원이 가능 하다는 것이다.
이 금액으로는 피해보상 지원액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더구나 해당 보험에 가입한 회사는 70여개 사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원 절차도 신속하게 이루워져야 한다. 2013년 5개월 반 동안 가동이 중단될 당시 보험금을 타기까지 이런 저런 절차가 마무리 되는데 4개월이 걸렸다. 이번에도 그 같이 미적거리다가는 기다릴 여유 없는 기업들이 먼저 떡쌀을 담글 수밖에 없다. 보다 적극적이고 입체적이며 신속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공장도거래선도 만들어 놓은 물건도 모두 상실한 개성공단 입주 기업의 울부짖는 소리를 정부가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악에 받친 그들의 절규를 우리 모두가 감싸야 한다.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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