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한강과 대동강이 꽁꽁 얼었다. 동생 소한(小寒)에 이어 형 대한(大寒) 추위가 경쟁하듯 맹위를 떨치고 있다. 죽은 자식 뭐 만지기이지만 아쉽고 안타깝다. 귀 떨어질듯한 동장군이 11월 초에 왔으면 의류업체들이 대박이 났을 것이다. 늑장 추위는 잘해야 떨이가격 재고 소진에 불과하다. 옷장사의 가장 큰 부조는 날씨다. 경기가 나빠도 날씨만 받쳐주면 호황은 따놓은 당상이다.
생선도 막 잡아 선도가 좋을 때 횟감으로 비싸게 팔린다. 선도가 다소 떨어지면 매운탕용으로 팔린다. 그마저 때가 지나면 젓갈용으로 헐값 처분된다. 시즌 지난 패션 제품 역시 젓갈값에 처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수 패션업계가 지지리도 돈복이 없다. 세월호 사태에 초상집이 된데 이어 지난해 메르스 사태에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가뜩이나 경기는 절벽이고 하늘로부터 천형(天刑)인 량 날씨까지 거꾸로 가 그야말로 하로동선(夏爐冬扇)이다. 올해 역시 세계경기 비상 속에 패션경기에 도움이 안 되는 총선까지 겹쳐있어 업체마다 소태 씹는 심정이다.

변화와 혁신 아직 멀었다

내수 패션경기 뿐 아니다. 우리 경제의 모세혈관인 섬유수출 전반이 심하게 위축되고 있다. 단순 실적으로 지난해 섬유수출이 전년보다 10% 이상 줄은 데 이어 올해도 반전의 기미가 별로 안 보인다. 물론 난파선에 쥐 빠져 나가듯 해외로 탈출행렬이 줄을 잇는 상황에서 통계에 의한 실적 개선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그나마 대형 의류수출 벤더들이 호황을 만끽한데 이어 해외 진출기업들이 비교적 안정 성장을 유지하고 있어 다행이다.
그런 한편 냉철히 따져 우리 섬유업계가 어려운 국내외 환경에서 불황에 대비한 사즉생(死卽生) 각오의 변화와 혁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말로는 위기라고 하면서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한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아직도 많은 기업들이 말로만 어렵다고 할 뿐 혁신제품 개발과 시장개척에 미온적인 천수답 경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상은 분초를 다투는 변곡점의 꼭대기에 와있는데 섬유패션 상당수는 경쟁력 없는 자신의 탓보다 경기불황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
타 섬유 스트림도 예외는 아니지만 가장 심한 분야가 대표적인 보수 업종인 면방업계다. 말로는 위기라고 땅 꺼지는 한숨 소리가 요란하지만 걱정만 하고 행동이 부진한 대표적인 업종이다.
중언부언 하지만 섬유산업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면방업계가 가장 큰 위기 상황에서 변화가 가장 굼뜨고 있다는 평가다. 최근의 동향을 봐도 2010년 국제 원면파동 때 떼돈을 번 이후 5년째 불황보다 더한 공황상태에서 휘청거리고 있다. 주종인 코마사를 고리당 30달러 내외의 적자를 보면서 막장투매로 일관한 지가 오래 됐다.
가랑비에 옷 젖고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작은 것 같지만 누적 적자가 지속되면서 각 사마다 경영위기가 목에 차있다. 지난해에도 일신방을 제외한 모든 면방업체가 면사 영업에서 눈덩이 적자를 냈다. 기라성 같은 면방 회사들이 지난 3년간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좀비 기업 명단에 드는 치욕을 겪고 있다. 전성기 때 370만 추에 달하던 설비가 겨우 100만 추 규모로 줄었으나 아직도 공급과잉에 시달릴 정도다.
이유는 간단하다. 치솟는 인건비에 사람은 없고 인도, 베트남산에 눌려 가격 경쟁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쌓이는 재고를 놔두는 것 보다 막장투매를 해서라도 재고를 없애는 것이 덜 및진다는 어리석은 전략에 인이 박혔다. 얼은 발에 오줌 누기 전략은 결국 오줌이 식으면 더욱 얼어붙는 자충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면방업계가 급변하는 시장환경에 맞춰 치열하게 혁신했는데도 이같은 절망적인 상태가 왔는지 자성해볼 일이다.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미적대고 뭉그작 거리는 보수업종의 타성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우선 대다수 업체들이 당면한 원가 경쟁력과 혁신 신제품 개발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다만 원가 경쟁력 중 국제 원면가격은 피할 수 없는 요지부동이고 방적비는 한국의 인건비 구조상 획기적으로 떨어뜨리기 어려운 상황은 불가피 하다. 반면 발등의 불인 차별화 특수사 개발에 얼마나 전력투구 했는가를 평가하면 F학점에 불과하다. 작년의 대공황에도 영업이익 100억 원을 올려 독보적인 우량기업을 재확인한 일신방의 경우처럼 순발력과 사활을 건 특수사 개발전략을 면방사들은 강 건너 불구경 했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마케팅 전략이 봉건적 사고를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베트남에 한국 면방 업체 6개 사가 나가 있지만 원가 구성의 큰 축인 방적비에서 베트남보다 한국이 훨씬 비싸다.
같은 베트남 진출 기업 중 훈련이 잘 되고 생산성이 높은 면방사는 방적비를 고리당 140달러 선까지 낮출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한국 면방업체는 작아야 170달러에서 많게는 240달러까지 방적비가 들어가고 있다.
인건비와 일반 관리비가 훨씬 비싼 국내 면방업체들이 베트남산보다 훨씬 비싸게 팔아야 손익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런데도 현실은 베트남 가격과 같이 파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히려 베트남 진출 업체들이 한국산 코마사 덤핑투매로 가격을 못 받는다고 아우성 칠 정도다.
마케팅 전략이 그 만큼 떨어진다. 베트남에 진출해 있는 국내 면방업체의 상당수가 영업을 서울 본사에서 담당한다. 대량 거래처는 당연히 잘 나가는 중 대형 의류수출 벤더들이다. 그렇지만 세상이 바뀌어 이미 ‘甲’이 돼버린 벤더들은 인도산과 베트남산을 기준으로 면사 가격을 후려친다. “이 가격으로 하든지 아니면 말든지” 하는 압력에 ‘乙’은 백기를 들고 응한다.
그래서 베트남에 진출한 면방 회사들도 베트남 섬유업체에 파는 가격이 한국 벤더들에게 파는 가격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 정설이다. 앉아서 의류 밴더에 의존하지 말고 수많은 베트남 섬유업체와 직거래를 해야 했다. 국내 면방 영업팀이 널브러진 베트남 구석구석 거래선을 발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발품을 팔았는지 묻고 싶다.

혁신제품 마케팅전략 아직 멀었다

국내 벤더들에게 의존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채산은 팍팍할 수밖에 없다. 벤더들은 바이어에게 오더를 받은 후 일정 마진을 떼어놓고 역으로 원가를 구성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원부자재 가격 후려치기로 이어지고 있다. 오더를 놓치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응하고 있으나 이것이 자멸을 재촉하는 길이다.
뿐만 아니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면방사 뿐 아니라 대만 중국 업체들도 대형 시장의 하나인 방글라데시를 비롯한 봉제 국가에 면사 수출을 강화하고 있다. 화이트사 가격도 훨씬 유리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甲’인 벤더 의존율을 줄이고 직수출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면방업계가 변화와 혁신으로 체질을 바꿔 새 성장판을 열어야 한다. 과거 순발력 강한 종합상사맨이 면방업체로 전직하면 미적거린 행태에 복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굼뜬 체질부터 달라져야 한다. 더불어 업계의 화합과 단결이 무너지고 있는데도 제 구실을 못하는 방직협회도 환골탈퇴 해야 한다. 성을 쌓는 데는 10년이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하루라는 사실을 면방업계부터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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