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를 지탱하는 대들보는 안보와 경제다. 이 양대 축이 새해 초부터 심하게 흔들려 비상사태에 접어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와 연두 기자회견에서 비장한 각오로 국가 비상사태를 거론한 것도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절박한 상황과 호소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버린 정치권과 노동계의 삐딱한 사고가 문제다.

솔직히 경제가 갈수록 수렁에 빠져들고 있어 기업들이 피가 마르고 있다. 국제 유가 폭락과 미국 금리인상, 달러 강세로 시난고난한 세계 경제가 더욱 간당간당 해지고 있다. 수출 의존도가 80% 이상인 우리 경제구조에서 정부가 단골메뉴로 내놓은 내수 활성화 정책이 얼마나 먹혀들지 걱정이다. 세계 경제와 국내 경기가 격랑에 휘말리면서 우리 기업들이 태풍 속 편주(片舟)같이 위험천만한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유일한 소통창구 개성공단 막아서야

설상가상으로 경제 비상사태에서 북한의 4차 핵실험이 불거져 안보 비상사태까지 들이닥쳤다. 급기야 우리 정부가 중단했던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는 등 전방위 대북제재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북한 핵문제는 우리 안보에 직접 영향을 주는 무서운 뇌관인 반면 미국과 중국, 일본이 공동으로 관련된 국제 문제이기도 하다. 가장 효율적인 핵 억제 방법은 북한 경제교역의 90%를 차지하는 중국이 북한의 산 맥줄을 끊어버린 것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중국이 압록강 밑을 통과해 신의주로 연결된 단둥(丹東)의 송유관을 틀어막는 순간 북한은 ‘에비’하고 핵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경제의 아킬레스건을 쥐고 있는 중국이 북한을 포기할 생각이 있다면 문제는 간단히 풀린다. 그러나 중국이 북한을 포기한다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헛된 미망(迷妄)일 뿐이다.
우리 정부가 참다못해 대북 확성기를 다시 트는데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상종하기 어려운 고약한 집단이 확성기에 놀라 핵을 포기할리 만무하다. 국제사회와 공조해 대북제재를 강화하는 것은 당연한 전략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북한 핵 외교를 강화해 북측에 전방위 압력을 가하는 한편 대화의 문까지 차단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때마침 4차 북한 핵실험의 망동이 터진 것을 계기로 우리 정부가 득달같이 개성공단 체류인원 축소 조치를 내렸다. 행여 있을지도 모를 북측의 경거망동에 대비해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다.
그러나 남북이 급박하게 대치하는 위기 상황이라도 유일하게 남아 있는 남북 대화의 문인 개성공단에 관한 조치는 남북 모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만에 하나 개성공단이 잘 못되면 그때는 상호 총부리를 겨누는 막다른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남북간 육해공 대화 채널이 모두 폐쇄된 채 유일한 소통의 숨구멍은 개성공단 뿐이다. 남북 경헙의 상징이자 대치국면의 완충지인 개성공단이 폐쇄되면 상시 전투 상태로 치닫을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체류인원 800명을 600명으로 축소한 것도 이같은 점을 감안해 아주 선언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개성공단이 끝장나면 판이 깨져버린 막다른 상황만은 막아보겠다는 사려 깊은 조치로 해석된다.
이 시점에서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개성공단은 남북 모두 정경분리원칙에 입각해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자계훈(自戒訓)을 되새겨야 한다. 개성공단 10년 동안 무수히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폐쇄란 막다른 위기를 넘기면서 오늘에 이른 것은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그 당위성이 남북 모두에게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도 그동안 수차례 몽니를 부리며 폐쇄 운운했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한 것은 인민의 호구지책을 위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 4월부터 9월까지 무려 5개월 반 동안 북측의 일방적인 통행금지 조치로 폐쇄된 일이 있지만 결국 자충수란 사실이 입증되면서 꼬리를 내렸다. 개성시민 30만 명 중 5만 4000명이 근무하고 있는 개성공단은 누렇게 부황된 인민들에게 이팝과 고깃국을 제공하는 최고의 구세주인 것이다. 166일 동안 문을 닿으면서 북측 근로자들이 일터를 잃고 월급을 못 받아 내부적으로 심각한 고통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기간 동안 피해는 북측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남측 기업인들은 통행금지로 원부자재 및 완제품 반출이 안 돼 124개 업체의 미반입 재고가 1868억 원에 달했다. 패션제품을 생산해놓고 반입이 안 돼 거래 원청업체들이 봄 여름 시즌 제품들이 없어 혼란과 손해를 겪었다. 원부자재 전제품을 100% 남측에서 조달한 개성공단은 우리 측의 4000여 협력업체와 3만 명 가까운 종사자들에게 큰 피해를 안겨줬다.
남한 경제가 북한의 40배에 달한 점을 감안할 때 북측은 아주 많이 피해를 입고 남측은 조금 덜 손해 봤다 쳐도 우리도 아팠다. 피차 데미지를 입고 나서 다시는 이런 사태가 재발되지 않겠다고 양측이 합의한 후 비온 뒤 굳은 땅처럼 개성공단 가동이 정상궤도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남북 긴장이 고조되더라도 개성공단은 무풍지대인양 평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남북 당국의 인내와 계산이 깔려있는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 남측에서 왜곡하고 있는 퍼주기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일이다.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5만 4000명에 대한 임금은 연간 9000만 달러에 달한 것은 사실이다. 중국이나 베트남 가면 공짜로 부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보다 몇 배 더 줄 수밖에 없다. 거리가 가깝고 관세가 없고 10년 세월 다진 숙련도는 명품 생산기지로 정착했다.
물론 인사권은 아직 우리 기업이 가져오지 못하고 3통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그 나름대로 가치와 필요성은 공감하고 있다. 연간 9000만 달러가 지급되는 규모는 크지만 남측에서 왜곡하는 핵 개발비 사용이 꼭 맞는 논리나 근거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북한은 러시아와 중동지역에 수만명 규모의 노예 노동자를 파견해 매년 5-6억 달러의 임금을 송금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 무기 수출, 마약 밀매 등으로 연간 3-4억 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개성공단 임금이 핵 개발비에 일부 사용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핵 개발비 전체를 개성공단 임금으로 조달 한 것으로 왜곡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커피 초코파이 먹는 의식 변화 성과

개성공단 가동 10년이 지나면서 연간 생산액이 5억 달러를 넘어설 정도로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이 북한 도와주러 간 것이 아니다. 난파선에 쥐 빠져 나가듯 국내 중소기업의 해외 탈출 러시속에 중소기업이 살기 위해 정부 정책을 믿고 간 것이다.
10년 가동동안 단순 경제 수치로 따질 수 없는 많은 변화를 보였다. 처음에는 처다 보지도, 묻는 말도 대답하지 않던 북측 근로자들이 이제는 황색 바람을 타고 대화가 소통되고 있다. 초코파이를 넘어 커피를 매일 마시고 씻지 않던 그들이 목욕을 하고 비누 샴푸를 일상으로 사용한다. 아무리 3인조 5인조가 감시해도 의식은 60-70%이상 남쪽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대통령도, 군인도 할 수 없는 기업이 해낸 변화의 성과다. 평화 통일을 대비해 그들의 의식 전환은 경제군사적 차원을 넘어 매우 값진 성과다. 개성공단을 더 이상 퍼주기로 왜곡해선 안 된다. 남북 모두 개성공단만은 건들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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