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PEOPLE - 강기옥 디자이너

- 패션대상 대통령상 수상 영광
- 어느덧 30여년, 패션은 숙명·천직 
- 디자이너·CEO 행복한 워크홀릭
- 젊은이들과 소통으로 感리프레쉬
- 내수한계, 새로움으로 돌파해야
- 中시장 진출, 꼼꼼한 검토 필수
- 우린 손이 매운 민족, 곧 세계화

 

패션(Fashion)은 단순이 한 벌의 옷이 아니라 우리의 집단적 열망, 즉 패션(Passion)이 만들어 내는 발명품이다. 그리고 그 발명품은 한 사회 내에서 공유할 수 있는 무수한 기억들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소비를 통한 인간의 획일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사물과 사람간의 정서적인 연결은 탄력을 잃고 말았다. 사물에 내재되어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선택을 통해 확인하는 일련의 테이스트 형성과정은 소멸되거나, 극소수 계층의 전유물로 왜곡되어 왔다.
‘획일화된 다양성’이라 할 만한 형용모순의 시대에 패션디자이너로서 대중과 30여년간 만나온 강기옥 디자이너의 패션에 대한 생각이 궁금했다. 매 컬렉션마다 독창적이고 과감한 디자인과 소재로 상괘에서 벗어나기를 주저하지 않은 그. 모든 것을 돈으로 계산하는 자본주의 시대, 그가 지키고 유지하고픈 패션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기대와 불안이 엇갈리는 마음을 안고 강기옥 디자이너의 역삼동 키옥 패션하우스 문을 두드렸다.

원유진 기자

- 우선 지난해 코리아패션대상 대통령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패션업계가 모두 어려운 상황에서 과분한 큰 상을 받게 되어 어깨가 더 무겁습니다.(웃음) 대한민국 패션을 위해서 더 열심히 뛰라는 채찍으로 알고, 올 한해 더 열정적으로 K-패션을 위해 달리겠습니다.”

- 벌써 패션업계에 발을 내딛은 지도 3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어느덧 그렇게 됐네요. 지금 이 모습을 상상하며 오지는 않았지만, 순간순간이 행복했던 것같습니다. 제가 사업을 늘려가면서 스트레스를 과하게 받았는지, 잠시 건강이 안 좋아져서 일을 쉰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인생을 다 산 것처럼 주체할 수없는 슬픈 감정이 속에서 몰아치더라고요. 아버지께는 죄송하지만, 부친상보다 더 큰 슬픔이었어요. 그때 ‘숙명’ ‘천직’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코코샤넬을 좋아하는데, 8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디자이너로서 충실하셨죠. 저 역시 그 이상 에너지를 발산하며 디자인을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패션디자이너로서 어렵고 버거웠던 일도 있었을 텐데요.
“대부분의 디자이너는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동시에 CEO를 겸하고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디자이너 브랜드를 전개하는 선후배님 모두 갖고 있는 고민일 겁니다. 감성적인 부분으로 디자인을 하다가도, 이성적인 부분으로 단호한 결정과 선택을 해야 하죠. 특별한 재주가 아닌가 싶습니다.(웃음)”

- 그래서 그러신가요. 업계에서도 특히 워크홀릭(?)으로 유명하십니다.
“저는 남편에게 감사해야 해요. 제가 살림은 제로거든요.(웃음) 밤 11시도 그냥 집인 것처럼, 집에 갔어도 작업실인 것처럼 일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경영까지 하다 보니, 정작 디자인할 시간이 모자랍니다. 스트레스도 일하면서 푸니까요. 워크홀릭이라고 할 만하죠.”

- 매 시즌 컬렉션을 볼 때마다 젊은 감각에 탄복을 하게 됩니다.
“‘감도있다’ ‘젊다’라는 게 디자인의 기준·잣대가 되는 건 아닙니다. 핫트렌드에 비춰 이 옷이 정말 괜찮은가. 호응을 하는가. 옷에 담은 메시지가 보는 이들에게 정확히 전달이 되는가가 중요하죠. 패션은 팔딱팔딱 뛰는 생물입니다. 옷에는 역동하는 디자이너의 힘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젊은 후배들 보다 테크니컬 노하우는 강해도 감각은 둔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젊은 친구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그들의 문화와 트렌드를 이해하고, 제 자신도 온전히 리프레시하려고 노합니다.” 

- 스파컬렉션부터 서울컬렉션까지 쉼없이 작품세계를 펼쳐 오셨는데, 지난번 2015추계 서울패션위크에서는 뵙지 못했습니다.
“서울패션위크에 여러 가지 변화가 있으면서, 지원 서류 가운데 일부 미비한 점이 있어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대신에 바이어들을 대상으로 PT쇼를 일주일 정도 진행했습니다. 올해 3월에 열리는 패션위크도 참가신청을 했지만, 불필요한 서류라던가 평가기준, 행사시기 등 패션디자이너와 패션비즈니스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선행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요즘 많은 디자이너들이 중국시장 진출을 타진하고 있습니다.
“저희도 일주일에 한 두 번씩 중국분들과 미팅이 있습니다. 분명 중국은 매력적이고, 충분한 가능성을 갖춘 시장입니다. 중국 측도 ‘한류’가 비즈니스에 좋은 호기로 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고요. 디자인 쪽은 중국이 아직 기반이 약하다 보니 브랜드 콘셉트를 잡고, 전체적인 기획을 해주는 부분에선 내셔널브랜드 경험이 풍부한 디자이너들에게 기회가 될 테고, 하이엔드나 꾸띄르적인 시장도 파이가 커지면서 저희같은 디자이너 브랜드에게도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해외 비즈니스를 다년간 진행한 경험에 비춰본다면, 무작정 중국 시장에 뛰어들 게 아니라 꼼꼼한 검토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입니다.”      

- 내수 문제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돌파구를 어떻게 보십니까.
“지금 현재 디자이너 브랜드들의 상황은 한 때의 경기 영향이 아니라 추세라고 봅니다. 새로운 고객창출은 안 되고, 옷은 올드해 공감은 더욱 요원해집니다. 시장에 들어올 자리가 없어진 젊은 디자이너 후배들에게는 더 힘든 상황이고요. 단호하게 얘기해서 다른 걸 보여줘야 합니다. 새로운 것을 통해 소비자들의 발길을 돌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젊어져야 해요. 일례로 ‘타임’이라는 브랜드는 20년이 넘었습니다. 론칭 때 타깃도 30대고, 지금도 같습니다. 고객들은 흘러가지만, 브랜드는 계속 변화합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 디자이너들도 자각을 하고, 유통에서도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앞서 샤넬을 좋아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국내엔 샤넬처럼 100년이 넘는 브랜드가 없습니다.
“대외적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히스토리 브랜드가 없는 건 아쉽습니다. 디자이너 브랜드만 해도 20~30대인 후배들이 일명 ‘선생님 브랜드’를 하라고 하면 전개에 애로사항 들이 많습니다. 샤넬이 세컨브랜드를 하지는 않잖습니까. 저 역시 ‘키옥’을 히스토리있는 브랜드로 가자는 게 제가 가지고 있는 장기적인 로드맵인데 쉽지 않네요.”

- 한국 패션의 미래는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는 젓가락 문화잖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손끝이 맵습니다. 손끝이 맵다는 건 촉이 예민하다는 거예요. 아이디어가 특출납니다. 오히려 IT보다 글로벌 시장에서 장기적인 경쟁력이 있습니다. 투자를 지속한다면 분명 케이팝 이상의 케이패션 시대가 열리리라 확신합니다. 지금 시장에 진출하는 젊은 친구들은 저희 세대와는 달리 이미 글로벌 마인드를 갖추고 있습니다. 다양한 문화에 익숙하고, 그들과 소통하고 정서를 나누는 데 장벽이 없습니다. 일본이 겐조, 이세이미야케, 꼼데가르송 등 유명 디자이너를 배출했듯이 우리도 그들 못지않은 글로벌 디자이너가 조만간 탄생할 겁니다. 김연아가 세계를 휩쓸었듯이 말이죠.” 

- 올해 키옥의 계획은.
“이제는 세계가 일일 생활권입니다. 해외를 내수와 같이 보지 않고선 브랜드 전개가 어렵습니다. 현재 뉴욕 전시와 쇼룸을 계속 협의 중인데 금년 중에 시작을 할 겁니다. 큰 매출은 아니어도 꾸준히 신장을 하고 있고, 올해도 그 흐름은 이어가야 하고요. 중국 시장도 직진출이 아니더라도 파트너십을 통한 라이선싱이나 기획으로 전개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한술에 배부르지는 않습니다. 한발 한발 내딛으면서 나아가야죠. 지난  30여 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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