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서울 주목하는 ‘지금’이 바로 기회”

- 젊은 봉제 기능인력 육성 계획
- 디자이너엔 中시장 ‘기회의 땅’
- 中 국내 기성복 경쟁력 약세
- 진입장벽 높은 하이패션 강세
- 연합회 젊은 디자이너 참여↑
- 패션위크·패션코드 상생해야

 

집을 짓다, 밥을 짓다, 농사를 짓다…. 우리말 ‘짓다’는 이처럼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지만, 모두 ‘삶’이라는 공통의 전제를 포함하고 있다. 삶속에서 다듬고 조율하고 해소해 가는 일련의 과정을 일컬어 우리는 ‘짓다’라고 표현한다.
이상봉 디자이너가 브랜드 ‘이상봉(LIESANGBONG)’ 론칭 30주년을 기념해 출간 예정인 책의 제목을 ‘빌딩(Building·짓다)’로 정한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경제적인 논리로 ‘삶’을 배제한 채 대형과 평균을 앞세워 만들어진 옷들이 홍수를 이루는 요즘이지만, 그는 여전히 수공적이며 삶의 결이 묻어나는 ‘옷 짓기’를 고집하고 있다. 오히려 디자이너의 손으로 짓는 하이패션의 글로벌 경쟁력을 기성복보다 높이 평가하는 이상봉 디자이너다.
새해 벽두를 앞두고 그를 역삼동 본사에서 마주했다. 담담하게 한국 하이패션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남겨진 숙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이사이 안경넘어로 비치는 그의 형형한 눈빛에는 지난 30년의 노력과 열정, 그리고 애환과 질곡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 늦었지만 30주년 축하드립니다.
“올해(2015년)는 정신없어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패션코드에서 열린 30주년 기념 패션쇼도 겨우 진행했으니까요. 책 출판 역시 여름부터 준비했는데, 콘텐츠를 계속 보완하다 보니 내년 초에나 출판될 것같습니다. 이렇게 30주년이 다 지나갔습니다.(웃음)”

- 출간 예정인 책 내용이 궁금합니다.
“‘옷을 짓는다’는 의미로 ‘빌딩’이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국내에는 패션 전문 서적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나마 대부분이 비매품이라 학생들이 출판 사실조차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허다하죠. 그래서 이 책에선 제 30년 디자이너 인생뿐 아니라 디자인 작업 과정과 무대 뒷모습 등을 담은 사진을 함께 수록해 패션디자이너 지망생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습니다. 판매용으로 기획했고, 1월에는 만나볼 수 있을 겁니다.”

- 젊은이들을 위한 지원도 꾸준히 하시는 걸로 압니다. 구체적인 지원 내용 소개 부탁드립니다.
“연합회의 여러 가지 신진 디자이너 지원사업과는 별개로, 젊은 봉제 전문가 육성을 준비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생산직의 고령화는 시급한 선결과제입니다. 의류 봉제도 예외는 아닙니다. 봉제 현장에 가면 젊은사람이 50대입니다. 기술력이 좋아도 나이가 들면 손이 느려질 수밖에 없죠. 반면 중국은 어릴 때부터 기술력을 쌓은 젊은 기능공들이 현장을 이끌고 있습니다. 이태리도 꾸준히 양질의 기능공들을 배출하면서 하이패션 산업을 유지하고 있고요. 이렇게 가다가는 샘플조차 국내 제작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올해(2015년)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콘테스트를 만들어 취업과 진학 등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했었습니다. 이름도 봉제가 아닌 ‘소잉’이나 ‘패션 메이킹’ 등으로 바꿔 말이죠. 이런저런 일들로 계획이 미뤄졌지만, 내년(2016년)에는 꼭 실행에 옮기려고 합니다.”

- 중국 이야기가 나왔으니 자연스레 주제를 중국시장으로 넘겨보겠습니다. 지난해 연합회는 디자이너들의 중국 진출과 관련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 걸로 압니다.
“올해 광저우 쇼핑몰에 연합회 디자이너 6명이 입점을 했습니다. 만족도가 기대 이상으로 높습니다. 홍은주 디자이너는 현지에서 살다시피 할 정도로 공을 들이고 있을 정돕니다.(웃음) 내년 1월에는 동북삼성의 핵심도시인 하얼빈에서 요청을 받아 초청쇼를 검토 중입니다. 쇼핑몰 내 한국관 오픈도 약속된 상황이라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진행할 예정입니다. 사실 중국시장에서는 이제 기성복 보다 하이패션의 경쟁력이 더 크고, 비전도 있다고 봅니다. 그만큼 연합회에 중국측의 사업제안도 부쩍 늘고 있습니다.”

- 중국시장 내에서 하이패션의 경쟁력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실 국내 시장에선 트렌드와 함께 유통 환경도 바뀌면서 마담 부티크 중심의 디자이너 브랜드들의 설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시장에서 만큼은 얘기가 다릅니다. 현재 중국은 봉제·소재·유통 모두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중국 시장에서 국내 기성복들의 가격·품질 경쟁력은 점점 약해지고 있지만, 디자이너 중심의 하이패션은 당분간 진입장벽을 유지하면서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합니다. 그들도 문화적 자산이 쌓이면서 패션디자인에 대한 안목이 높아졌고, 의류에 있어서만큼은 사이즈 스펙, 디자인 감성 등에서 유럽 명품브랜드보다 국내 하이패션에 대한 선호가 큽니다. 봉제 역시 고급 소재를 다룬 경험이 없어 이 또한 국내 하이패션엔 기회가 됩니다. 중국은 디자이너에겐 기회의 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중국 유통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류 패션의 수명을 향후 2년 정도로 예측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디자인 외에는 패션산업의 모든 부문에서 중국은 상당한 수준의 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디자인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 기성복 업계에서 한때 날리던 디자이너들이 대부분 중국시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광저우 일대에만 우리 디자이너가 1000명 넘게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거기서 나오는 옷은 거의 전부 한국인들이 만들어 주는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익히고 배우는 만큼 중국 디자이너들의 역량도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유학파를 중심으로 해외 컬렉션에서도 당당히 인정받고 있고요. 디자인의 메리트까지 사라진다면 기성복의 ‘차이나 드림’은 연기처럼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견 디자이너의 하이패션은 기성복과 달리 중국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쉽게 따라가지 못한다고 현지 전문가들도 평가합니다. 덩달아 중국내 맞춤복 시장도 커지고 있고요.”       

- 내년 5월이면 두 번째 연합회장의 임기도 끝이 납니다. 연합회 탄생의 산파역할을 하셨고, 지금까지 리더로서 단체를 이끌어 오셨습니다.
“디자이너들이 한목소리를 내기위해 뭉친지도 이제 햇수로 4년이 됩니다. 주위에서는 기적이라고도 했었죠.(웃음) 그동안 성장통도 있었고, 디자이너들의 기회확대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힘들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 디자이너들을 대변할 단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느꼈고, 연합회는 앞으로도 꿋꿋이 맡은바 역할에 충실할 겁니다. 그리고 빠른 시일 내에 젊은 디자이너들이 연합회를 이끌고 가야만 한국 패션의 미래가 있다고 봅니다. 그들은 그들이 얼마나 유능한지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꾸준히 젊은 디자이너들과 소통하면서 함께 어울려 연합회를 만들어 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새해를 맞아 패션업계에 제언 부탁드립니다.
“세계가 아시아 패션의 중심으로 우뚝 선 한국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유럽과 미국은 물론 중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들도 한국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우물 안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반드시 우리 힘으로 우물 밖으로 넘어서야 합니다. 그 첫 번째는 상생이고 공생이며, 인정입니다. 중진들은 패션위크를 통해 하이패션부터 스트리트패션까지 다양한 창조물들을 선보이고, 신진들은 패션코드 등 수주회를 통해 비즈니스부터 실력을 쌓아야 합니다. 두 시스템이 상호보완적으로 시너지를 발휘해야 합니다. 한 마음으로 뭉쳤을 때 서울이 세계 패션의 중심이 되고, 패션 한류를 유지·확대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기회를 절대 놓쳐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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