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팍팍하고 고단했던 올 한해가 저물었다. 정치는 여전히 무기력과 무책임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제1야당은 안철수 탈당을 막지못해 옹기짐 지고가다 자갈밭에 넘어지고 말았다. 국민여론이 분기충천하며 이를 막지못한 지도부를 향해 “접시에 코박고 죽으라”는 성토가 이어지고있다.
지리멸렬한 야당의 반사이익으로 표정관리하는 여당을 향한 시각도 썩좋은것만은 아니다. 견제세력 없는 여당의 독주를 국민은 경계하고 있다. 이때문인지 안철수 탈당으로 풍비박살난 야당과 함께 여당지지도도 함께 추락하고 있다. 정치는 생물이다. 럭비볼처럼 어느방향으로 튈지 예측하기 어렵다.
또 하나 충격적인 것은 요즘 두산인프라코어가 20대 신입사원에게까지 명퇴를 중용한 사실에 여론이 들끓고 있다. “사람이 미래다”는 광고카피의 주인공 그룹이 신입사원까지 명퇴시킨다고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섬유해외 진출 5600개사 8조원 투자

그러나 앞뒤 자르고 해당기업을 인민재판식으로 여론몰이하는 우리사회가 너무 심하다. 올 3분기까지 누적 당기 손실이 2465억원에 달한 이 회사가 구조조정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사정을 대부분 외면하고 있다. 기업이 살아야 기존직원도 유지하고 신입사원도 뽑는 것은 당연지사다. 눈덩이 적자에 생사기로를 헤메는 기업이 구조조정하면 안되고, 그대로 함께 가라앉아야 하는지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신입사원 명퇴가 잘한일은 아니지만 오죽 절박했으면 그랬겠는가도 생각해볼 일이다.
본질문제로 들어가 중언부언 하지만 국내 섬유기업이 난파선에 쥐빠져 나가듯 해외로 탈출행렬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수출입은행이 집계한 해외투자통계에 따르면 올 9월말 현재 국내 섬유기업의 해외투자는 법인기준 총 5571개사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의 투자 규모가 자그마치 76억 2966만 6000달러에 달했다. 지난 20년간 원화기준 8조원에 육박하는 거액을 해외에 투자했다.
5600개 기업이 해외로 탈출했다면 국내산업은 사실상 상당부문 공동화(空洞化)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그 첫단계에서 봉제산업이 붕괴됐고 국내에는 쭉정이만 남고 말았다. 봉제가 나가면 니트ㆍ우븐직물이 따라가고 이제는 장치산업인 방직공장까지 앞다퉈 따라나가고 있다.
90년대 초반부터 시작해 2010년까지 “나가야 산다”는 유행어처럼 자금력 있는 섬유기업들은 앞다투어 빠져나갔다. 2010년 이후 중국의 급격한 임금상승을 계기로 주춤했지만 2013년 9월말 이후 2년동안 101개사가 추가로 나갔다. 이들회사의 투자금액도 자그마치 3억 8000만 달러에 달했다. 능력만 있으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탈출행렬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섬유뿐 아니라 모든 중소제조업이 매한가지지만 국내에서 기업을 영위할 수 있는 토양과 여건이 악화돼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모두가 공감하는 고임금과 인력난이 가장 큰 결정적인 요인이다. 생산현장에는 중국에 이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임금의 5-10배를 줘도 인력이 얼씬하지 않은 것이 우리 현실이다. 청년실업률이 50%라고 악다구니를 써도 중소제조업 현장에는 소용없는 일이다. 하는 수없이 생산현장에는 50-60대 근로자가 그나마 버티고 있으나 이들 역시 눈이 어두워져 줄줄이 퇴직하고 있다.
궁여지책으로 외국인근로자에 의존하지만 말이 안통하고 생산성이 훨씬 떨어져도 내국인 보다 많은 고임금을 주고 있다. 제조업 현장의 피말리는 경영난은 안중에 없는 알량한 인사들이 매년 최저임금을 올려 현재도 이들에게 연장근무를 포함해 월 26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최저임금이 또 인상돼 내년부터는 외국인 근로자에게 휴일ㆍ연장근무 수당과 숙식비지원을 포함해 월 320만원 수준으로 늘어나게 된다고 제조업현장의 볼멘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근로자 고용이 용이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절대수가 부족하다. 하는 수없이 공장을 돌리기 위해 불법 체류자를 고용하지만 적발되면 가차없이 검찰에 불려가 전과자 신세가 되고 만다. 섬유업계를 비롯해 중소기업계가 떡쪄놓고 빌어도 내국인근로자가 안오니 외국인 쿼터를 늘려달라고 해도 정부부처끼리 핑퐁만 치고 있다. 글로벌경쟁시대에 고임금과 인력난을 못이겨 나갈 수밖에 없고 결국 정부가 이를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섬유기업이 벌써 5600개사가 8조원 규모를 투자했다면 갈만한 곳은 거의 갔다고 볼수있다. 해외투자가 한두푼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나간다고 전부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문제는 국내에 남아있는 기업이 더 이상 소멸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대로 가면 경기 불황과 자금난의 어려움도 문제지만 생산 현장에 사람이 없어 버틸재간이 없다.
5년내에 현재의 기업 절반정도는 간판 내리고 문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수밖에 없다. 특단의 비상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냄비 속 개구리신세가 돼 시난고난 하다 떡쌀 담글 수밖에 없다.
바로 늦었지만 지금부터 기업은 기업대로, 정부의 산업정책이 바뀌어야한다. 물론 기업의 운명은 기업 스스로 해결해야한다. 정부나 단체에 의존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마다 곳간사정이 어렵지만 뒤주를 다 뒤져 첨단설비 투자에 과감히 배팅해야 한다. 그래야 인건비 비중을 줄이고 품질과 생산성 경쟁이 가능하다.
첨단설비투자 없는 기술개발은 허구다. 이 바탕에서 시장에서 먹히는 R&D투자를 강화하고 차별화 제품에 올인해 위기를 극복해야한다. 현재의 정본품이나 어중간한 차별화 제품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신시장 개척 등 마케팅개발도 매한가지다 마지막 사즉생(死?生) 각오로 총력을 경주할 때다.

미온적인 섬유산업 정책으로는 안된다.

정부의 섬유패션산업 정책도 보다 적극적이고 다각적인 방안으로 탈바꿈해야한다. 지금까지의 정부 섬유패션산업 정책은 극히 평범하고 형식적인 요소가 많은 것은 부인 못할 사실이다. 너도 나도 해외로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그것은 그것대로 지원하되 남아있는 국내기업이 더 이상 소멸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산업정책을 이원화해 운영해야 한다. 해외진출기업과 국내기업을 연계지원하되 국내산업에 필요한 정책을 개발해 집중 지원해야한다.
이웃 일본은 아직도 섬유산업 설비투자에는 우대금리를 적용해 무한정 융자혜택을 부여하듯 우리도 첨단설비 촉진을 위한 금융지원이 급선무다. 섬유업종은 4순위 이하로 밀어내 융자를 기피하는 금융권의 경도된 정책부터 고쳐야한다.
외국인근로자 쿼터확대를 위해 산업부가 발품을 팔아가며 노동부와 법무부를 설득해야 한다. 내국인근로자가 온다면 금상첨하지만 안오는 상황에서 노조 눈치나 보며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중소제조업 죽으라는 얘기나 다름이 없다.
특히 요즘 정부가 남북경협을 위한 제2 개성공단 조성을 구상하는 것과 때를 같이해 개성공단 섬유클러스터 구축을 위해 산업부가 총대를 매야한다. 통일부는 정치적인 논리로 대응하겠지만 산업부는 남북간 정경분리원칙을 내세워 개성공단 활성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팔소매를 걷어야 한다. 획기적인 섬유산업정책이 안나오면 국내섬유산업은 5년내 상당부문 조종(釣鐘)을 울릴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벌써 냄비 속 개구리에 물이 더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저작권자 © 국제섬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