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을 처연히 바라보며 올해 유난히 기구한 전개에 대한 착잡한 감회를 떨칠 수 없다. 언제라고 어렵지 않을 때가 없었지만 마치 옹기짐 지고가다 자갈밭에 넘어진 것 같은 허탈과 분노가 앞을 가린다.
우리 경제의 엔진인 수출이 수직 하강하고 내수는 어거지로 밀어붙인 건축경기를 제외하면 대부분 업종이 빙하기를 방불케 한다. 국민의 흐르는 눈물을 닦아줘야 할 정치권의 무능과 뻔뻔함에 진력난 상태다. 여당의 독주를 견제할 건강한 야당은 지리멸렬 상태이고 오히려 초읽기에 들어간 분당(分黨)에 앞서 질그릇 깨지는 소리만 요란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또 다른 이름인 지리멸렬당 대표는 돌아가는 통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이대로는 “끌로 파도 안 된다”는 내년 총선 결과를 삼척동자도 예견하고 있는데 야당 대표만 모르는 것 같다.

중국이 못하는 품목이 금맥이다

야당이 존재감이 없으니 시도 때도 없이 대통령에게 호통을 당하고 있다. 대통령이 한 달도 안 돼 개혁을 발목 잡는 국회를 향해 맹비난한 것도 야당이 협력과 견제 구실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이다.
영리한 여우는 굴을 여러 개 파는 법이다. 분당위기의 외통수에 몰린 야당과 당대표가 뚝심으로 포장한 고집과 아집을 버려야한다. 기차 떠난 다음 손들어 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탈당하고 분당하면 집나간 사람도, 나가라고 방치한 당대표도 끝장임을 알아야한다. 마지막 한 모금 남은 물병을 모래위에 쏟는 우를 범하지 말고 야당도 살고 당대표도 사는 길을 선택해야한다.
본질문제로 돌아가 한ㆍ중 FTA가 우여곡절을 거듭하다 국회 비준이 끝나기 무섭게 오늘 20일부터 정식 발효된다. 정부와 언론이 포장하듯 15억 인구 5000조 시장이 우리 품에 들어올 것이란 장밋빛 청사진에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그러나 중국이 어떤 나라인데 누구 좋으라고 시장을 호락호락 내주겠는가? 10년 20년을 두고 쥐 소금 먹듯 조금씩 조금씩 열게 해 당장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오히려 관세장벽 정도는 우습게 아는 무서운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우리 안방시장 침투가 더욱 가속화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한다. 아직은 한국 임금의 절반, 또는 3분의 1수준에 불과한 저임과 첨단 설비로 무장한 대단위 규모경쟁이 몰고 온 파고가 더욱 무섭게 덮칠 수 있다.
섬유교역에서도 지난해 기준 중국으로부터 섬유 수입은 65억 9000만 달러인데 반해 우리나라의 대중 섬유 수출은 40%도 채 안된 25억 1500만 달러에 머물렀다. 중국산은 8% 관세를 물고도 한국보다 20%내외의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한국시장을 초토화시킨 것이다. 여기에 작건 많건 FTA발표로 관세율이 조금이라도 낮아지면 더욱 중국산의 범람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여진다.
물론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주종 품목 중 상당부문은 양허제외의 초민감 품목으로 묶여있다. 또 민감 품목으로 10년 후부터 단계적 철폐품목 등으로 2중 3중의 방어벽을 쳐놓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미 동ㆍ남대문 시장에서 판매되는 의류제품은 60%이상 중국산이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국내 봉제산업이 90년대 후반부터 급속히 공동화되면서 중국산 의류가 우리 안방시장을 장악한 것이다. 한ㆍ중 FTA가 발효됐다고 해서 중국산 의류의 한국수출이 줄어들 리 만무하다. 우리 의류제품이 갑자기 중국으로 대량 수출될 리도 더더욱 만무하다.
이미 DTY 를 비롯해 중국산 화섬사가 가격경쟁력은 물론 정본품의 품질 경쟁에서도 한국산을 앞서고 있어 수입 범람을 막을 수가 없다. FTA로 인해 한국산 화섬사의 중국수출이 늘어날 수도 없다. 대구 경북 산지의 주종품목인 화섬직물 역시 화섬사와 함께 초민감 품목으로 묶여 있지만 이것은 8% 관세장벽을 넘어 20%이상 가격차로 막을 길이 없다. 모두가 공감하다시피 일반 화섬직물 생지가 대량으로 들어와 대구염색공단에서 염색가공 해 나가고 있다. 대구 직물 업계의 주종품목인 치폰까지 중국산이 대량 반입되면서 산지 직기 가동률이 50% 내외로 쪼그라든지 오래다. 한ㆍ중 FTA가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하며 대응해야 한다.
바로 한ㆍ중 FTA가 발효돼 한ㆍ중 양국 섬유 업계가 품목에 따라 병아리 눈물 수준의 관세감면이 이루워진것과 별개로 살 길을 찾아야 한다. 일단 FTA가 발효되면 심리적으로 대중 수출 분위기는 좋아질 수밖에 없다. 품목별로 중국 수출을 늘리거나 중국산 제품의 수입을 억제하기 위한 적극적이고 다각적인 노력이 경주돼야 한다.
먼저 한국산 패션의류의 중국수출을 늘리는 전략을 적극 강구해야 된다. 관세율 조정은 별무이지만 아직도 중국에서 불고있는 한류를 이용한 한국 패션 브랜드의 중국 진출은 바람을 탈 수 있다. 이랜드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 하면서 효율적으로 파고드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러나 십수년 전부터 중국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던 제일모직 같은 기라성 같은 기업이 아직도 10년 전과 다름이 없는 제자리걸음의 원인을 알아야 한다. 그만큼 중국의 유통을 파고드는 것이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패션기업 뿐 아니라 롯데, 신세계 같은 간판 유통업체가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고도 후퇴한 사실을 명심해야한다. 패션 업체들이 유통까지 겸업하려는 과욕을 버리고 브랜드와 제도는 한국에서 하는 전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화섬 기업들은 공룡중국 앞에 주눅들어 한숨만 쉬지 말고 소재의 차별화로 돌파구를 마련해야한다. 중국의 2대 화섬업체인 ‘행리’나 ‘생홍’은 1개 회사 캐퍼가 한국 전체 생산량을 앞서고 첨단설비의 대량생산으로 가격과 품질 경쟁력 까지 갖추었다.
그러나 몸체 큰 대형 화섬업체의 약점은 차별화의 순발력을 발휘할 수 없는 취약점을 지니고 있다. 연중 직방식 대량 생산 체제의 중국 화섬업체의 약점을 활용해 칩방 중심의 한국 화섬업체들의 차별화가 훨씬수월한 것이다.
대구나 경기북부 섬유업계도 매한가지다. 섬유 메카 대구산지가 지난 5년 이상 불황의 깊은 터널에 갇혀 옴싹달싹 못한 것은 중국과 경쟁하다 백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국산 직물이 가격뿐 아니라 품질까지 급속도로 따라와 해볼 재간이 없었다. 지금도 이같은 상황에서 표류하는 태풍속의 편주 신세가 이어지고 있다.

수출단체가 해야 될 소명이다.

그러나 궁즉통(窮則通)이라고 궁하면 통하게 돼 있다. 사즉생(死卽生) 각으로 지혜를 모으면 길이 열리게 돼 있다. 바로 중국이 안하거나 못하는 품목을 찾아 그 곳에 전력투구 하는 것이다. 중국이 못하는 품목은 직물에서 너무나 많다. 모두가 어렵다고 아우성치는 상황에서도 지금 이 순간 엔죠이 하는 직물기업들은 중국이 못한 품목을 찾아 선택과 집중하는 기업이다. 중국과 같은 품목으로 맞짱두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란 사실을 모두가 경험하고 있다.
때마침 민은기 (주)성광 회장이 이끄는 한국섬유수출입조합이 내년부터 TF팀을 구성해 중국과 일본의 직물산업을 정밀조사 한다는 소식이다. 일본이 하고 한국이 못하는 품목ㆍ중국이 못한 품목만 제대로 파악해 업계에 공지해주면 그것만으로 불황극복의 절반의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너무 타당하고 현명한 결단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저작권자 © 국제섬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