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탑산업훈장] 안윤정 (주)한아인터내셔날 대표이사

부인복 사이즈 직접 만들어 여성 기성복 시대 열어… 국내외 컬렉션도 꾸준
여경협 회장 재임시 종합지원센터 설립·공공구매 5%법제화, 직원복지도 으뜸

안윤정 앙스모드 대표이사가 제 29회 섬유의 날에 동탑산업훈장을 수훈한다.
안 대표는 1970년대 개인 의상실로 시작해 여성기성복 시대를 연 주인공으로, 패션산업 발전에 누구보다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한국여성경제인연합회 5대 회장을 역임하는 등 여성의 적극적인 사회진출과 여권신장, 더 나아가 여성 기업인의 경쟁력 강화에 헌신한 프론티어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이번 수훈이 다소 늦은 감도 없잖은 이유다.
안 대표 앞에 가장 먼저 붙는 수식어는 ‘패션 디자이너’이다. 40년이 넘게 패션산업 한우물을 고집한 패션디자이너 1세대인 그는 한국형 맞춤 부인복 ‘유어 사이즈(Your Size)’를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한 그는 1975년 서울 장위동에 앙스모드의 모태인 ‘안윤정 부띠끄’를 오픈했다. 당시 명문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출신 패션디자이너가 흔치 않던 시절이었지만, 꿈을 향해 과감히 패션계 입문을 선택했다. 낭중지추(囊中之錐)의 실력을 갖춘 그는 편안하고 스타일리시한 주문복으로 승승장구했다.
일년만에 의상실을 충무로로 옮길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뤘지만, 안 대표는 수동적인 비즈니스에 머물러 있던 의상실을 넘어 혁신적인 패러다임 시프트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기성복’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1979년 롯데백화점 소공동점 오픈과 동시에 주저없이 부인복 ‘앙스모드’로 여성 기성복 시대의 문을 열었다. 당시 백화점은 검증된 패션 유통채널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늘어날수록 맞춤복보다 기성복에 대한 니즈가 증가할 것이라 확신으로 모험을 감행했다. 그리고 이는 보기 좋게 들어맞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의 기성복 도전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맞춤 일색인 시절이었기 때문에 시장에 유통되고 있는 사이즈 스팩이 44, 55 정도가 고작이었다. 우리나라 중년여성의 사이즈는 시장에서 찾을 수 없었다. 안 대표는 의상실에서 주문복을 만들었을 때 모아 놓은 데이터베이스 통계로 66, 77, 88 사이즈를 만들어 냈다. 그의 ‘유어 사이즈’ 개발은 한 마디로 대박이었다. 대부분의 경쟁 브랜드가 그녀의 사이즈를 카피할 만큼 정확했다.
맞춤보다 잘 맞는 앙스모드의 기성복은 부인복 시장의 구도를 바꿔놓을 만큼 획기적이었다. 매장은 발 디딜 틈 없이 그의 옷을 찾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옷이 없어서 팔지 못할 정도였다. 하청없이 직영공장만을 고집하는 품질 제일주의와 자신이 만든 옷은 직접 입어보고 확인하는 완벽주의까지 더해져 충성도 앙스 마니아층은 빠르게 확산됐다. 소공동점의 성공을 기반으로 서울, 부산, 대구 등 전국 백화점에서 성공신화를 이어갔다.
안 대표는 대중적인 성공에도 디자이너로서의 컬렉션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지난 40년 동안 그는 서울컬렉션 등 국내에서 열리는 각종 패션쇼는 물론, 오사카 박람회, 파리인터내셔널 패션쇼 등 해외 패션박람회와 패션쇼에 참가해 한국 패션의 위상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패션 관련 지원이 전무했던 시기에는 자비를 들여서라도 세계 무대를 밟았다. 오늘날 젊은 디자이너들의 세계진출의 밑거름이 된 셈이다.         
패션디자이너뿐 아니라 안 대표는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우리사회의 ‘유리천장’을 깨는 데 앞장선 여성 기업가로 인정을 받고 있다. 그는 대한패션디자이너협회 회장(1985~1991년)을 거쳐 한국여성경제인협회(이하 여경협) 창립멤버로 2007년 제 5대 회장에 취임해 남다른 리더십과 추진력으로 여성 기업인 경쟁력 강화에 앞장섰다. 여경협은 전국 15개 지회, 2000여개 회원사를 거느린 명실상부한 국내 여성기업인의 최고·최대 단체로이다.
안 대표는 여경협 회장 취임 당시 공약으로 내걸었던 ‘여경협의 명품 브랜드화’ ‘경영연구소 설립’ ‘조달 물량의 5% 의무계약 규정 법제화(여성기업 할당제)’ 등을 3년간 빠짐없이 실천해 여성경영인 단체의 수장으로서의 임무를 완벽히 수행했다. 재임기간 동안 그는 여경협 10년 숙원사업이었던 여성기업종합지원센터 설립을 현실화했고, 조달청의 공공구매 우선구매가 없어진 상황에서 그동안 안 대표가 쌓아온 두터운 신뢰관계로 설득에 나서고 회원들의 염원과 후원에 힘입어 2009년 2월과 4월 국회 상위위와 소위원회에서 통과되도록 만들었다.    
화려한 외부활동 이면의 조용한 상생 노력도 안 대표를 더욱 빛나게 하는 요인이었다. 그는 밤샘작업이 다반사인 패션산업의 특성을 감안해 사내 어린이집을 직접 운영했고, 집이 없는 직원들을 위해 사원 사옥을 제공하는가 하면, 직원 자녀들의 학비지원도 하는 등 대기업도 쉽지 않은 직원 복지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 실천가형 기업인으로도 인정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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