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양은 눈부신 오색찬연 만추(晩秋)의 계절이다. 이 좋은 계절 섬유인에게 영원한 자긍심과 꿈과 희망을 안겨준 섬유의 날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11월 11일, 산업계 처음으로 제정된 섬유의 날이 올해로 29회를 맞았다. 축제의 날을 맞아 올해도 모법기업인을 비롯한 섬유패션산업발전에 기여한 많은 인사들이 정부의 훈ㆍ포장을 받는다. 1인지하만인지상의 국무총리가 직접 참석해 시상하는 등 행사의 대미를 장식한다.
이 축제의 날을 맞아 당연히 기쁘고 설레어야 시점에 마음 한구석에 휑하는 빈자리가 다가온다. 고단하고 팍팍한 섬유패션 환경의 무거웠던 침잠이 새삼 표면으로 부상해 표출되기 때문이다.
섬유패션 산업은 고사하고 나라 안팎으로 돌아가는 통박이 불안성 가연심리를 부추기고 있다. 하늘이 대노한건지 목타는 가뭄에 대지가 타들어가고 있다. 자고 새면 싸움질만 하는 정치권에 기대를 접은지 오래지만 갈수록 진영논리에 매몰된 추태에 넌덜머리가 난다.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싸고 또다시 국민을 내편ㆍ네편으로 갈라놓았다.

언제까지 경기타령 할 것인가?

충격적인 것은 한국경제의 위기를 알리는 경고음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성장률이 2.5%로 떨어지면서 청년실업률이 20%를 넘고있다. 우리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이 10개월째 뒷걸음치고 있다. 그것도 자그마치 두자릿수까지 추락하고 있다. 내수경기는 아예 절벽이다.
우리나라 주력산업이 모조리 흔들리고 있다. 빈곤퇴치의 주역인 섬유뿐 아니라 반도체, 자동차, 철강, 조선 등 대한민국 경제를 일군 대표업종이 모조리 속절없이 고전하고 있다. 지난 3년간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번 좀비기업이 3300개에 달했다. 이들 한계기업을 정리하겠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지만 자칫 섬유패션기업에 교각살우(矯角殺牛)의 부작용이 생길까 겁난다.
문제는 이지경이 된 근본원인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란 점이다. 세계경기 침체와 중국경제위축 등 외생적 변수도 있지만 절체절명의 국가적 과제인 개혁과 혁신이 진전되지 못한 것이 근본원인이다. 발등의 불인 노동시장 개혁은 정치권과 강력한 노조의 벽에 가로막혀 5개월째 헛발질 이다. 금융과 공공ㆍ교육개혁은 시작도 못하고 있다. 앞날을 생각하면 국가 장래가 가물가물 해진다. 무엇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노령화에 비해 출산율이 가장 낮아 대재앙을 예고하고 있다.
양의 동서를 불문하고 65세 고령인구가 24%를 넘으면 그나라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불과 25년후인 2040년 우리나라 노인인구가 30%에 달할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의 12%수준에서 노인인구가 산술급수적인 차원을 넘어 기아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통계가 나왔다.
우리나라 15세에서 49세까지 여성 출산률이 세계에서 가장낮은 1.1명에 불과 하면서 5020만명 현재의 인구가 2050년에 4200만명으로 줄고, 2100년에는 1900만명으로 급감한다는 것이다. 생산인구가 격감하면 돈 버는 사람보다 부양해야할 대상이 더 많은 것은 불문기지다.
우리얘기로 돌아가 급속히 감소하고 있는 섬유수출과 절벽에 가까운 내수패션경기를 조망하면서 어디서 무엇부터 잘못됐는지 냉철히 복기(復碁)해봐야 한다. 지난해 섬유의 날에도 같은 말을 반복했지만 모든 원인을 세계경제침체에 핑계되며 남탓하는 것으로 변명했다.
국내 제조업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고 돈보다 더 급한 것이 사람인 처지에서 투자도 연구도 이루워지지 않았다. 작년 섬유의 날과 금년 섬유의 날에 무엇이 달라졌는지 성찰하고 통렬히 반성해한다. 투자도, 연구도 제자리걸음 이었다. 치열한 전투정신도 없고 전략도 없는체 엉거주춤 경기타령에 매몰린 것이 섬유패션업계의 현상이었다.
섬유패션산업 스트림 중 치열한 국제 경쟁속에 고도성장을 유지하고 있는 의류수출 벤더 외에 성한 곳이 별로 없다. 대다수 스트림이 기진맥진 탈진 상태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다.
면방산업은 대표적인 장치산업이고 전통산업이지만 이 업종부터 섣가래에 이어 대들보까지 무너지고 있다. 공급과잉에 인도산에 눌려 막장투매로 시장질서까지 교란되고 있다. 대방(大紡)들이 코마사에 매달려 죽기살기식 출혈경쟁에 매달리고 있다. 반면 호치민에 있는 일본 곤도방은 지금 이순간도 5만추 공장에서 생산된 코마사를 배급주듯 불티나게 팔고있다.
똑같은 원면이지만 공정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여 가장 좋은 면사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옛날 짚신장사를 하는 부자(父子)가 있었는데 똑같은 짚신인데도 아버지가 만든 것은 장날마다 잘팔리고 아들이 만든 짚신은 안팔렸다. 영문을 모르고 불평했던 아들에게 아버지가 눈을 감으면서 “잔털을 깨끗이 깎아라”고 일러줬다는 일화가 있다. 우리면방이 코마사중에서도 이런 정성을 갖고 맬란지나 술라비얀들 차별화를 경주하면 지금과 같은 위기는 극복 할 수 있을 것이다.
화섬 또한 규모경쟁의 중국에게 계란으로 바위치기 상황을 피해가기 위해 중국과 비켜가는 품목에 전력투구했어야 했다. 설비는 노후되고 값은 비싸고 연구개발이 제대로 못이루워진 상태에서 중국과 싸우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화섬산업이 곤두박질 친 것은 수요자인 화섬직물과 환편ㆍ경편 등 수요업계의 경쟁력이 추락했기 때문이다. 원사소재의 차별화가 안되니 직물업계 힘으로 차별화가 어려워 동반추락 한 것이다.
섬유수출이 급속 냉각된 것은 허리부문인 직물수출이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대구산지의 화섬직물과 대구ㆍ경기북부 환편ㆍ경편직물이 경쟁력을 상실했다. 최신설비로 무장해 대량의 규모경쟁으로 나선 중국과 인도에 밀려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 중국이 못하는 분야 많다.

과거 우리가 일본에서 배웠듯이 똑같이 중국이 우리를 배우고 최근에는 인도가 부상해 안팎으로 협공당하고 있다. 설비투자 안하고 기술개발 안되고 마케팅 개발도 제대로 안되니 낙조가 드리워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섬유산업의 허리부문인 직물수출이 활기를 띠면 섬유산업 전체적으로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바로 대안은 전략이다. 우리 섬유산업이 급속히 위축된 것은 중국이란 거대한 공룡의 추격 때문이다. 그러나 공룡은 몸체가 커 순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이 못하는 소재와 직물은 의외로 많다. 우리가 그것을 제대로 파악해 중국과 비켜가며 차별화로 승부하면 불황을 극복할 수 있다. 그래서 본지가 제안한 일본이 하고 한국이 못하는 것, 중국이 한국을 따라오지 못한 부문을 집중조사 연구하는 것이 급선무다. 정부나 섬산련, 수출 및 생산자 단체, 연구소, 현장기술사가 포함된 TF팀을 하루빨리 구성해 조사해야한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은 만고의 진리다. 이를 토대로 과감한 투자와 연구개발ㆍ마케팅 전략이 필연적인 논리이자 현실적인 대안이다. 미분적 현상안주를 벗어나 적분적 확대균형에 매진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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