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0-30년 전만해도 “재수 없으면 뙈놈(중국인)과 겸상한다” 는 비속어가 유행했다. 6.25 전쟁 때 북한을 지원해 남과 북을 갈라놓는 중국에 대한 악에 받친 감정 때문이다.
그러나 6.25 전쟁 60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당당히 G2에 편입됐고 우리나라 교역량의 25%를 차지하는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오히려 우리가 13억 중국인과 겸상을 원하며 안달복달하는 형국이다. 때마침 군사적 굴기를 전세계에 과시한 지난 3일의 열병식에 한국 대통령이 초청받아 맨 앞줄 중앙에 자리 잡았다. 세상이 변한 변곡점의 꼭대기를 실감한 대목이다.
61년전 모택동 바로 옆에 서있던 김일성 자리에 박근혜 대통령이 떡 버티고 응시했다. 죽은 김일성이 저승에서 복통을 앓고 자지러졌을 것이다. 개인이나 국가나 영원한 동지나 영원한 적도 없다는 사실이 다시한번 실감난다.
그러나 중국은 벗겨도 벗겨도 속내가 드러나지 않는 양파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직시해야한다. 철없는 김정은의 경거망동으로 최용해가 말석으로 밀려 돌아갔다 하여 중국이 북한을 포기할리 없다. 대한민국에는 언제든지 비수를 꼽을 수 있지만 북한을 외면하고 적대관계로 돌아서지 않는다는 것은 삼적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일신방ㆍ삼일니트ㆍ송이실업 성공사례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할 명제가 있다. 아무리 명분과 실리를 중시하는 것이 외교라고 하지만 기본이 흔들려서는 안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의 열병식에서 북한을 제치고 최고 예우를 받은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미국 때문이다. 미국이 전쟁에서 우리를 지켜줬고 시장을 제공해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 됐기 때문이다.
실리를 위해 경계선에 설수는 있으나 중국에 경도됐다는 오해를 받아서는 안된다. 어디까지나 우리 외교와 안보의 초석은 한ㆍ미 동맹임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본질문제도 돌어가 우리나라 섬유소재 대향연인 ‘PIS 2015’가 3일간의 공식 일정을 마치고 4일 폐막했다. 세계적인 경기 불황과 메르스로 찌들은 수출과 내수시장을 겨냥한 이번 행사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주최측을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외국 바이어 래방객이 성에 차지 않고, 내수 패션 업체들의 상담 역시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것 같다. 불황의 깊은 터널을 아직 빠져나가기 까지 마지막 관문이 장애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랬지만 이번 PIS에서도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는 예외없이 재연됐다. 수출이나 내수 모두 문전성시를 이룬 회사가 있는가 하면 사흘내내 파리 날린 부스도 많았다. 곧 이어질 유럽 전시회와 상해 인터텍스타일 전시회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시황이 다소 변하겠지만 아직 뚜렷한 감이 안온다는 것이 참가 업체들의 한결같은 하소연이다. “이거다” 하는 뚜렷한 히트상품이 안보이고 바이어들도 경기 전망에 낙관도 비관도 못하고 엉거주춤한 상태다.
국산 섬유소재전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PIS에 국내외 참가 업체들이 나름대로 차별화 소재를 선보였으나 극소수 업체를 제외하고는 “그 나물에 그 밥”이 주류였다. 한마디로 “싸거나 좋거나” 양단간에 뚜렷한 특성이 드물어 예년 수준과 비슷한 계약 및 상담실적에 그쳤다.
PIS를 계기로 우리 섬유 패션 업계의 현주소를 다시 한번 재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이순간 대구산지의 제직ㆍ편직 업체와 염색 가공 업체는 여전히 시난고난 앓고 있다. 경기 북부 역시 물량이 없어 공장마다 비상이 걸렸다.
대명절 추석이 내일 모레인데 오더는 고갈되고 한숨소리가 요란하다. 대구산지 직기와 편직기 가동률이 2년이상 50% 내외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아무리 불황이라고 해도 잘하는 기업은 지금도 자체 설비를 풀가동 하면서 하청 직기 까지 돌리고 있다. 대구의 송이실업을 비롯한 일부 직물 업체는 오더가 몰려 표정 관리하고 있을 정도로 나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시화 염색공단에서 가장 큰 삼일니트 염색공장은 그 큰 공장이 요즘도 풀가동 하고 있다. 지난해 새로운 아이템에 맞는 최신 설비투자를 강화한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불황이라고 해도 설비와 신제품 개발에 투자하는 업체들은 오더 걱정이 없고 내용이 알차게 돌아가고 있다.
면방이 죽을 쓰는 국내 불황에도 일신방은 올 상반기에 영업이익이 작년보다 80% 가까이 늘었다. 면방영업에서 영업이익 100억원 돌파가 무난함에 따라 최근 면방 업체에서 유일하게 성과금 50%를 전직원에 돌렸다. 자동화 설비에 타 대방들이 집중하고 있는 코마사 위주에서 벗어나 멜란지 등 특수사 생산 비중을 높여 불황을 비켜간 전략이 적중했다. 불황타령에 매달릴게 아니라 쌈짓돈 다 동원해 첨단 자동화 설비로 품질과 생산성을 높이고 차별화 신제품을 개발하면서 마케팅 개발에 사즉생(死卽生) 각오로 매진하는 기업은 끄떡없이 성장하고 있다. 우리 섬유 패션 업계가 위험 수위에 도달한 것은 단순한 경기 불황만은 아니다. 중언부언 하지만 투자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대구를 중심으로 최근 몇 년간 첨단설비 투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요리집 막대기 3년 우려먹듯 10년 20년된 노후 설비로 대규모 첨단 설비의 중국과 맞짱 두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인 것이다.
대구 산지에서 과거 섬유로 돈버는 기업인 상당수는 공장 임대주고 뒷전에 물러나 있다고 한다. 좋은 시절 벌어놓은 돈으로 건물사서 뱃속 편하게 임대사업 으로 실속을 챙기는 먹튀 행태가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국내 투자가 이루워 지지 못한 상태에서 전부 해외로 탈출한 궁리만 하고 있다. 연간 신장률이 몇억 달러씩 이르는 대형 벤더들은 해외 소싱을 통해 일취월장한 반면 국내 섬유 산업은 곰팡이와 거미줄만 늘어나고 있다.

벤더들이 국산 원단 외면한 진짜 이유

이를 두고 섬유업계에서 “벤더들은 해외서 돈벌고 국내 산업에 도움이 안된다”고 푸념하지만 이것은 억지소리다. 국산소재를 구매할 수 있는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못갖춘 책임을 전가 할 뿐이다. 자기 두레박 끈 짧은 것은 생각않고 남의 우물 깊은 것만 탓하는 어리석음이다. 벤더 업체 구매담당자들은 하나같이 “국산 원단은 가격 비싸고 품질도 떨어져 외국산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고 실토한다. 니트 직물은 홍콩계 나이스다잉이나 퍼시픽 같은 글로벌 원단밀의 대규모 설비 제품에 국산은 품질ㆍ가격 모두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의류 바이어들의 노미네이션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규모 경쟁은 밀릴 수밖에 없지만 차별화 특화경쟁은 설비 투자가 선행되야 가능하다. 삽질하지 않고 물이고이기를 바라는 요행을 더 이상 기대해선 안된다. 우리 섬유 패션 산업이 이모양 이꼴로 표류하는 것은 기업뿐 아니라 정부 책임도 크다. 일본처럼 설비 투자 기업에 과감한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하지만 우리정부는 생각도 안하고 있다. 고임금ㆍ인력난에 경쟁력 있던 전기료마저 베트남보다 비싸진 상황에서 기업의 투자 기피를 정책적으로 개선하며 지원하는 그런 산업 정책이 요구된다.<조)

 

 

저작권자 © 국제섬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