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섬유소재연구원(KOTERI)ㆍ김숙래 원장
민간硏에서 작년 산업부 전문연구원 새출발
경상비 지원없어 국책과제ㆍ기업수탁으로 자립
비용대비 연구개발 성과 탁월…당국 힘 실어줬으면
“독일에 ‘Fraunhofer’가 있고 일본에 ‘AIST’가 있다면 한국에는 KOTERI가 있다”
지난달 말 섬유센터에서 세계 최초의 ‘ECOROOM염색’과 ‘CELLⅢ가공’ 기술을 발표하던 날 KOTERI 관계자가 ‘에코룸’을 소개하며 자신감에 찬 말이다.
사실 한국섬유소재연구원(KOTERIㆍ이사장 조창섭)을 독일과 일본의 세계적 첨단 소재 연구소와 비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비용대비 효율성만 놓고 보면 KOTERI가 이들 기관에 밀린다는 말에 50여명의 구성원들은 동의할 수 없다. 그만큼 자긍심이 대단하다.
KOTERI는 국내 유사 섬유연구기관과는 달리 정부로부터 경상비 지원을 전혀 받지 않고 있다. 순전히 정부 국책과제를 수행하면서 이를 통해 연구개발 자금을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연구원은 올 봄 세상에 없던 두 기술을 탄생시켜 국내 섬유산업계를 흥분시켰다. 업계가 KOTERI에 환호하는 이유다.
글로벌 강소연구원의 KOTERI의 중심엔 김숙래 원장(섬유공학박사)이 있다.
지난주 양주시 검준공단에 위치한 연구원을 찾았을 때 김 원장은 기자를 이곳저곳을 안내하면서 그동안 연구원이 이뤄낸 성과물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R&D에서 탄생시킨 신소재의 기업 상품화 적용, 연구원의 절치부심 자력갱생 얘기를 할 때는 유난히 자긍심을 나타내보였다.
“연구원(KOTERI)의 최대 강점은 재정 자립도와 기업이 원하는 기능성 제품의 상품화입니다. 두 가지 모두 다른 섬유패션연구소와는 다른 모습일겁니다”
G-KNITㆍK-KNIT 사업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KOTERI가 ‘ECOROOM염색’과 ‘CELLⅢ가공’ 기술을 내놓으면서 이를 재확인시켰다.
사실 그동안 국내 연구소들이 신제품을 개발ㆍ발표할 때마다 기업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기업 자체의 R&D와 비교해 혁신과 창조성에서 임팩트를 주지 못한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두 기술이 공개되자 W, H, S기업 등에서 독점권을 확보하기 위해 물밑작업을 벌이는 등 부산하게 움직였다.
상온에서 염색하는 친환경기술로 광택과 터치 등 표면 특성이 우수한 고감성 니트제조기술‘ECOROOM 염색’과 기존의 실켓가공을 개선하기 위해 영하 33℃에서 액체암모니아 처리하는 ‘CELLⅢ 가공’ 기술은 혁신소재를 갈망하던 기업들에게 단비 같은 소식이다.
이 기술은 현재 연구원내 공장에서 활발하게 시연되고 있다.
KOTERI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보여준 차별화의 한 모습이다.
10년 전 출범한 한국섬유소재연구소는 지난해 전문생산기술연구소로 재탄생하면서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섬유소재연구원(KOTERI)으로 거듭났다.
민간보다는 정부 산하기관으로의 편입이 경영 및 연구개발에서 안정적이다는 판단에 김숙래 원장은 관련 부처를 드나들며 산업부 편입을 위해 힘을 쏟았다.
하지만 과정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정부서 지원하고 있는 섬유연구소가 6~7개 있는데 또 필요하냐는 겁니다. 하지만 경기도에 섬유중소기업이 5000여개(경기북부만 3000여개)가 포진해 있습니다. 주로 니트소재를 다루고 있죠. 단지 ‘또 하나의 연구소’가 아닌 경기도 니트산업을 핵심으로 하는 혁신적인 R&D 기관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역설했습니다”
김 원장은 산업부의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자신이 그동안 섬유 연구소에서 닦은 역량과 동기부여ㆍ당위성을 거론하며 담당관을 설득했다.
어렵사리 목적을 달성했지만 이번엔 예산지원이 문제였다. 당국은 애초부터 허가는 하되 예산 지원을 생각도 않고 있었던 것이다.
“‘좋아, 그렇다면 한 번 해봐라. 단 정부 보조금 없이 자립해라’ 이런 식이었죠. 말이 산하기관이지 경상지원은 한 푼도 없다니 허탈했습니다” 김 원장은 쓴웃음을 지으며 당시의 설움을 털어놓았다.
절반의 성공, 한마디로 반민반관(半民半官)인 셈이다.
“출범 초기 최소 2~3년 동안만이라도 기반을 잡을 수 있게 지원해줄 것으로 알았는데… 재정 지원을 받고 있는 다른 기관들이 부러울 따름이죠. 산업부 입장에선 열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이 없을 텐데 말이죠”
김 원장은 이 같은 설움을 극복하기 위해 오로지 오기로 무장한 뒤 연구 개발과 비즈니스에 몰입했다.
지난해 예산 116억중 60억 규모를 중기청 과제를 수행해 조달했고, 200여 업체들과 60~70여건을 공동 개발했다.
“순수민간 수탁이 30%를 넘습니다. 비용으로 따지면 30억원 가량 되죠. 조만간 민간 수탁 비중을 50% 이상 끌어올릴 계획입니다.”
대부분 연구소의 순수 민간 수탁이 매우 낮은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성과다.
자립도는 뛰어나지만 예산 부족 탓에 비즈니스ㆍ홍보ㆍ마케팅 부문이 위축돼 연구원과 브랜드간 소통에 제한이 따르고 있다. 소재 납품 비중이 많음에도 연구원 살림 또한 늘 빠듯하다.
김 원장은 지난해 자신을 비롯해 임직원 임금을 최대 30% 삭감했다.
최근엔 핵심연구원을 제외한 비즈니스ㆍ마케팅 부문 20여명을 감원했다.
하지만 구성원들은 이에 아랑곳 않고 불철주야 연구에 매진하면서 잇따라 신소재 탄생의 개가를 올린 것이다. 공장가동률 역시 꾸준히 90% 이상을 나타내고 있다.
김 원장 자신도 연구실과 일선 기업들을 방문하며 연구와 비즈니스 등 1인 다역을 하고 있다.
이쯤 되면 출범 당시 산업부 산하 편입에 난색을 표하던 당국도 할 말이 없게 생겼다.
KOTERI는 2009, 2013, 2014년 산업부 우수기관으로 선정되는 등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5년 된 연구원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놀라운 실적을 보이고 있다.
민간수탁 부문은 2012년 35억 원, 2013년 33억 원, 2014년 25억 원 등 3년 총예산 300억 중 93억 원(31%)을 기록하고 있다.
연구원이 자랑하고 있는 개발소재의 납품을 보면 차별화가 뚜렷하다.
2012년 850건(18억 원), 2013년 618건(21억 원), 2014년 336건(7억 원) 등으로 최근 3년 총 1804건(46억 원)을 나타냈다. 지난해의 경우 예산부족으로 연구실적이 다소 부진했다.
국책사업은 3년간 200여개의 중소기업과 공동연구를 수행하면서 213억 원을 수주했다. 국책사업 분야는 ‘우수공공기술연구소’ 포상이 말해주듯 최고의 실적을 이뤄내고 있다.
이밖에 국내 대표기업들과 기술 제휴한 상생협업연구소, 지역중소기업에 기술지도, 세계적 친환경 특화기술로 무장한 그린기술연구소 등의 명성을 다지며 글로벌 연구기관으로 도약하고 있다.
김 원장은 연구원이 3년여 동안 연구 끝에 개발해낸 ‘ECOROOM염색’과 ‘CELLⅢ가공’에 유별난 애착을 갖고 있었다.
두 기술은 지난달 23일 섬유센터에서 발표회를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ECOROOM염색’과 ‘CELLⅢ가공’이 발표 되던 날 세아상역, 신성통상, 영원무역, 한세실업, 한솔섬유 등 국내 유수의 벤더 및 제조업체 관계자 300여명이 참석해 환경문제 발생억제와 제조자가 원하는 생산비용 절감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고 호평했다. 이후 업체들은 앞다퉈 독점계약을 맺자고 제의해오고 있다.
이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김 원장은 아쉬움이 남는다.
연구원이 개발한 신소재는 60% 이상이 원사기업들이 수혜를 입을 만한 아이템이다.
한데 패션의류업체들과는 달리 정작 원사 업체들은 자금지원 등에 매우 소극적이다.
“원사 업체들을 찾아가 CEO들과 얘기를 하면 호의적입니다. 하지만 실무로 연결하는 과정에서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더군요”
김 원장은 이에 대해 실무진의 매너리즘과 관행에서 비롯된듯 하다고 꼬집었다.
게다가 몇몇 기업은 연구원이 애써 개발해낸 노하우 및 샘플을 해외에서 적용시키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에코룸ㆍCELLⅢ 깜짝 개발
국내 유력 업체들에 기술제공
좀 더 많은 기업 수혜 바라죠
김 원장으로서는 꽤나 서운한 대목이다.
그럼에도 KOTERI의 진가를 알고 있는 국내 유력 기업들은 KOTERI와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등 활발하게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원사기업은 휴비스, 코오롱, 삼일방직, 일신방직 패션의류기업은 LG패션, 형지, 한솔, 신성통상, 영원아웃도어, 세아상역 등이 KOTERI와 MOU를 맺고 있다.
한세실업, 제일모직, 이랜드 등은 협의 중이다.
신성통상의 경우 자사 직원 2명을 KOTERI에 파견하는 등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소재 300개를 만들어내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동대문 상가에서 TOP5에 속하는 소재업체 ‘야드인’과는 공동으로 10월중 소재를 전시한 뒤 12월쯤 발표회를 거쳐 동대문지역에 본격 진출할 계획이다.
섬유공학박사 출신인 김 원장은 섬유개발연구원과 생산기술연구원을 거쳐 산업기술평가원 본부장을 역임한 뒤 이곳으로 와 R&D에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있다.
순수 민간연구소였던 KOTERI가 산업부 산하 전문연구소로 거듭난 것도 김 원장의 집념어린 노력의 결과다.
그는 혁신적 연구개발(R&D)에 비즈니스(B)가 가세해야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바로 R&DB다.
김숙래 원장은 KOTERI가 섬유소재 R&D에 올인하 듯 당국도 KOTERI에 좀 더 힘을 실어줬으면 한다고 토로한다.
“KOTERI는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할 것입니다.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는 일, 우린 바로 그 일에 매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