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하게도 대통령의 눈에 실핏줄이 터졌다. 온 국민은 그때 숨을 죽이며 핏발선 눈으로 판문점 회담장을 응시했다. 일촉즉발의 긴장과 분노로 이어진 무박4일, 43시간은 40일만큼 길었다. 얼씬하면 땡깡을 놓고 공갈치는 깡패집단 북한과 말이 통할까 반신반의 했다. 긴가민가 하면서 혹시나 했더니 성과는 장대했다.
벌써부터 합의문의 잉크도 마르기전에 일부 딴청을 부리지만 그만하면 아주 잘 된 성과다. 박대통령이 강력히 요구했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과는 거리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리지만 합의문은 최선을 다한 옥동자였다. 본시 공산당은 자기잘못을 절대 시인하지 않는 것이 기본 수칙이다. 개인이건 집단이건 과오를 인정하거나 시인하는 순간 자아비판에 들어가고 종착역은 아오지 탄광이다.
북한이 유감을 표명한 것은 사실상 사과이고 우리에게 굴복한 것이다. 중국의 압력을 피할 수 없었겠지만 더 이상 닦달하면 저들은 이판사판 반발했을 것이다. 천의신조로 이제 남북회담이 정례화 되고 신 남북시대 물꼬가 터지게 됐다. 박대통령의 지지율이 50%가까이 급상승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제발 남북 당국이 국민과 인민을 오금 저리게 하는 대결 국면을 끝내야 한다.

숲을 못 보는 퍼주기 왜곡 이제 그만

당장 이산가족 상봉 일정이 가시화 되고 진전되면 막혔던 금강산 관광도 재개될 가능성이 커졌다. 천안함 사태로 빚어진 5ㆍ24조치도 한바탕 기 싸움 끝에 해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단도직입적으로 우리 섬유패션 산업과 가장 밀접한 개성공단의 활성화 또한 두말하면 잔소리다. 이번 남북 당국이 고위급 회담 합의로 개성공단은 앞으로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통일부가 5ㆍ24조치 해제 전 에도 금강산 관광 논의가 가능하다고 했지만 이건 잘못된 발상이다. 관광이 중요한게 아니라 죽어가는 중소제조업의 돌파구가 시급한 것이다. 어떤 형태이건 천안함 문제부터 풀고 5ㆍ24조치를 해제해야 한다. 개성공단 투자를 원천 봉쇄한 상태에서 금강산 관광 협의는 앞뒤가 안맞는 것이다.
세상은 돌고 돌아 변곡점의 꼭대기에 서있다. 6ㆍ25전쟁 개입으로 남북분단의 책임을 면할 수 없는 중국의 전승 기념식과 열병식에 박대통령이 참가한다. 60년 전 김일성이 서있던 그 자리에 박대통령이 최고 VVIP 예우를 받고 서게 된다. 중국의 우방인 북한은 김정은 대신 최용해가 뒷자리로 밀려나게 되는 천지개벽이 현실화 됐다.
남북관계는 본질적으로 우리내부의 의견이 분분할 수 있지만 이제부터 개성공단 만은 남남 갈등에서 배제 시켜야 한다. 언필칭 퍼주기 범주에 개성공단을 포함시킨 것은 그야말로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보는 어리석은 발상이다.
중언부언 하지만 우리기업이 10년 전 가동을 시작한 동토의 땅 개성공단에 간 것은 북을 도우러간 것이 아니다. 고임금과 인력난으로 제조업 현장마다 거미줄과 곰팡이가 가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예견하고 위험을 무릎쓰고 갔다. 북을 돕기 위해서가 아닌 기업이 살기 위해 간 것이다. 지금은 질서가 잡히고 그런대로 안정을 찾아가고 있지만 처음 시범단지에 입주한 16개 선도 기업들은 말못할 고통과 불안을 감내해야 했다.
기업마다 정부 말을 믿고 전 재산을 바쳐 투자했는데 북측의 위협 못지 않게 우리정부의 냉대 또한 가볍지 않았다. 16개 선발기업의 신산고초를 발판으로 지금 100만 평 시범단지 내 절반정도에서 124개 업체가 그런대로 안정가동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우여곡절을 거듭하며 유지해온 개성공단의 확대 필요성은 중소 제조업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 사람이 없어 중소기업 현장에는 ”돈보다 더 급한 것이 사람“이라는 절규가 쏟아진지 오래다. 우리 생산 현장에는 50-60대 노인 근로자가 겨우 생산현장을 지키고 있으나 그나마 눈이 어두워져 5-6년이면 그만둬야 한다. 청년실업자가 100만 명이 넘어도 생산현장에는 떡 쪄놓고 빌어도 오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하는 수없이 말이 안통하고 생산성이 떨어진 외국인 근로자에 의존하고 있으나 이 또한 녹록지가 않다. 우선 도입 쿼터제로 묶여있어 필요한 인력을 제대로 조달할 수가 없다. 더구나 기업 현장을 모르는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의 황당한 발상으로 이뤄진 외국인 근로자 최저임금 적용으로 기업부담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요즘도 웬만한 중소기업 생산 현장의 외국인 근로자의 월 수령액은 250만원을 오르내린다. 연장ㆍ휴일 근무를 선호해 외국인들이 중고 승용차를 사서 휴일이면 애인과 놀러 다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고 있다. 극심한 인력난에 고임금은 물론 전기료는 베트남보다 더 비싸고 물류비를 포함 직간접비가 높아 중소 제조업이 생존할 수 없는 환경이다.
그래서 그동안 난파선에 쥐 빠져 나가듯 국내 섬유 제조업체 6000여개가 해외로 빠져 나갔다. 남은 기업들도 여건과 기회만 되면 나가고 싶지만 막차 타다 상투 잡을까봐 망설이고 있다. 베트남에 면방 업체들이 몰려 갔지만 그곳도 이미 포화상태라서 거액을 투자한 공장들이 가동하자마자 재고를 쌓아 놓고 있다. 가격은 폭락하고 판로가 막히니 덤핑 투매로 소진하기에 급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어디냐.? 개성공단이 섬유를 비롯한 중소 제조업의 돌파구가 될 수밖에 없다. 갖은 고통과 위험을 무릎 쓰면서도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은 대부분 괜찮게 수지를 맞추고 있다.
우선 인건비가 월 기본 75달러에 연장ㆍ휴일ㆍ수당ㆍ사회 보장비를 합쳐 170달러 수준이다. 베트남의 370달러에 비해 절반에도 못 미친다. 부족한 인력 보강이 선행돼야 하지만 우리말이 통하는 양질의 노동력을 갖고 있다. 내국인 거래여서 관세가 없고, 물류비가 싸 서울서 부산 이동보다 가깝다. 수출은 아직 막혀있지만 내수용은 그 보다 좋은 곳이 없다. 한ㆍ중 FTA가 발효되면 중국 수출은 역외가공으로 인정받는다. 10년간 한 직장에서 근무한 숙련도는 품질을 보장 해주고 있다.

시급한 선행조건 이참에 밀어붙여야
 
이번 남북 고위급 회담 합의를 통해 개성공단 활성화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북을 도와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러져 가는 우리 중소 제조업의 돌파구를 위해서다
지금까지는 봉제ㆍ신발 위주였지만 편직ㆍ제직ㆍ염색 까지 버티칼 시스템으로 개성공단에 가야한다. 그래야 섬유산업이 각 스트림 간 동반 성장이 가능하다.
다만 선행돼야할 문제가 있다. 개성공단 확대 전제조건으로 북측에 압력과 설득을 강화해야 한다. 당장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기숙사 문제를 양측이 협력해 해결해야 한다. 국제 산업 단지를 겨냥해 미뤄지고 있는 3통 문제 해결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와 함께 놀고도 월급 받는 사회주의 병리를 해소하기 위해 근로자 인사권을 입주 기업이 하루속히 쟁취해야 한다. 우리정부의 장기 융자와 보험제도도 대폭 보강해 입주 기업의 위험 부담을 해소해야 한다.
이런 문제를 이번 8ㆍ25 합의를 발판으로 밀어 붙여야 한다. 개성공단이 활성화 되면 섬유패션 산업은 새로운 르네상스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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