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6월은 메르스가 삼켰다. 알고 보면 중동의 독감 수준이지만 마치 300년 전 유럽 인구의 절반이 희생된 스페인의 역병인양 온 나라가 와들와들 떨고 있다. 메르스가 몰고 온 파고는 경제 사회 전 분야를 덮치면서 처절하게 망가지고 있다. 온 국민의 가슴을 화석으로 만든 세월호 사건은 오히려 양반이었다. 가득액 100%인 관광 산업부터 젓 담고 있고, 백화점ㆍ재래시장 매출은 땅굴로 파고들어 경제 전반이 아비규환이다. 더욱 부화가 치민 것은 세계 14위 경제대국으로 부러움과 존경받던 한국인이 마치 세균 덩어리 야만인 인양 지구촌이 ‘에비’하며 기피하고 있는 점이다.
무능한 정부, 못 믿을 삼성병원을 탓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지만 우리가 사는 이 땅이 이정도 밖에 안 되는가 싶은 자괴감을 떨칠 수 없다. 경제가 거덜 나고 민심은 이반된 채 비분강개한 시민들이 체념을 길게 밴 채 각혈하듯 악다구니를 쓰는 심정을 이해할 것 같다.

기업 현장의 피말리는 고통을 아는가

‘허허 웃어도 빚이 천냥’ 이라고 생각하면 부채 공화국 대한민국이 걱정이다. 전국 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경연 발표에 따르면 지난 2013년 말 기준 정부와 가계, 기업부채를 합하면 국가 총 부채는 4835조3000억 원으로 추정됐다. 국가 부채 규모가 국내 총 생산 (GDP) 대비 무려 338.3%에 달해 이미 위험 수준을 넘어섰다.
불황으로 세수는 연간 20조원씩 펑크 나는 탓에 메르스로 인한 추경 규모가 15조 여원에 달한다고 한다. 개인이건 국가이건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으면 거덜 나는 것은 불문가지다. 국가 부채 규모를 생각하면 많은 사람이 잠을 못 이룰 상황이다. 한국 자동차 근로자의 임금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지적에도 민주노총이 총 파업을 선언한 이해 못할 나라다. 이 판국에 국회법을 둘러싼 정치권 갈등이 폭발해 야당은 물론 한집안 식구인 청와대와 여당 사이에 질그릇 깨지는 파열음이 온 나라에 퍼지고 있다. 세월호에 이어 메르스 사태로 억장이 무너져 집단 실어증을 호소하는 국민의 찢어진 가슴에 정치권이 또다시 소금을 뿌린 격이다.
본질 문제로 들어가 중언부언 하지만 기업하는 사람은 항상 교도소 담장 위를 걸어가는 아슬아슬한 삶을 살고 있다. 전 재산을 바쳐 투자된 자신의 기업을 위해 전력 투구하지만 타율에 의한 경기불황을 감당할 수 없어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부도를 겪기도 한다.
이쯤 되면 영락없이 교도소 담장 안으로 떨어지고 가족은 길거리로 내몰리는 참혹한 시련을 겪게 된다. 이 같은 신산고초의 기업인과 달리 자기가 피땀 흘려 돈 벌어보지 않은 정치인이나 탁상위에서 행정 하는 사람은 이런 고통을 알 리가 없다. 이미 동남아 경쟁국보다 임금은 10배나 비싸고 그러면서도 사람이 없어 피 말리는 고통을 호소하는 기업 현장 사정을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는것이 정치인이고 행정 하는 사람들이다.
세계적인 경제 불황과 세월호ㆍ메르스 사태로 내수 경기가 지하실 깊숙이 추락하는 시점인데도 정치권과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을 고집하고 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연장근무 수당과 퇴직금 등이 득달같이 따라 오르는 것은 불문가지다. 현재도 불황의 파고에 걷잡을 수 없이 휘청거리는 기업에게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을 추가 시키게 된다. 임금을 올리면 소비가 늘어나고 소비가 늘어나면 내수경기가 진작된다는 어설픈 논리다.
그러나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보는 이 같은 사고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지 정책하는 사람들은 도통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경기를 진작시켜 고용을 신규로 창출하는 것은 백번 권장해야겠지만 기업이 어려워지면 신규 고용은 커녕 기존 고용마저 포기하도록 하는 어거지 발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이 지불 능력이 있으면 임금 인상은 하지 말라고 해도 자발적으로 할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현재의 임금 구조로도 헉헉거리는 기업현장을 모른 채 노동정책이 임금인상에 포커스를 맞춘다면 기업할수 없는 나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더욱 한심한 것은 외국인 근로자에게도 최저 임금을 적용하는 나라가 지구촌 어디에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미국 같은 고임금 국가 이면서 복지가 앞선 나라도 외국인 근로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다. 멕시칸을 비롯한 수백ㆍ수천만 불법 체류자를 알면서 눈감으며 저임금 근로로 노동 집약 산업을 유지 발전시키고 있다.
하물며 대한민국이 무슨 자선국가라고 외국인 근로자에게도 최저 임금을 적용해 제조업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연장 근무를 포함하면 대부분 산업현장에서 월 200만원 이상을 받고 있다. 오히려 내국인보다 우대받는 역차별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네팔이나 파키스탄 근로자들이 두바이 등지에 취업하면 지금 이 순간도 월 300-400달러 임금 조건이다. 이 같은 임금 수준에도 못가서 안달이고 경쟁률이 치열하다.
네팔ㆍ파키스탄 뿐 아니라 동남아 근로자들 사이에서 세계에서 가장 가고 싶은 근로 희망지는 1위가 독일이고, 2위가 한국이다. 사람이 없으니 제조업 현장에 거미줄과 곰팡이가 슬지 않도록 울며 겨자 먹기로 우리 기업들이 외국인 근로자를 이같이 비싼 대우를 하며 고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마저 외국인 근로자 쿼터제가 철저해 사람 배정이 하늘의 별따기다. 급한 김에 불법 체류자도 마다않고 쓸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제조업 현장의 인력난으로 인한 불법 체류자 채용이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지지만 그 대가는 가차 없는 법의 제재다. 섬유를 비롯한 제조업 기업인들이 불법체류자 사용한 죄로 별이 몇 개씩 붙은 전과자 신세가 되고 있는 것이다.
공장 문을 닫을 수 없어 불법 체류자를 고용할 수밖에 없지만 사용자도 처벌 대상이란 점에서 이들 불법 체류자들이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한다. 적발되면 고용주도 처벌 받는 사실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세서 또다시 충격을 금치 못하는 것은 불법 체류자라도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다. 가뜩이나 얼씬하면 배짱 근로를 하는 불법 체류자들에게 날개를 달아주지 않을까 걱정이다.
대법원은 “불법 체류 자체를 합법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제조업 현장에서는 불법 체류자를 고용해서라도 공장 가동을 지탱해야하지만 단체 행동 등 어깃장 놓는 이들을 통솔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불법 체류자를 고용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공장 문을 닫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현실과 대법원 판결과의 괴리가 너무 큰 것이 사실이다.

외국인 최저 임금ㆍ산업용 전기료 헛발질

이 땅에서 중소 제조업이 고사하기 딱 좋은 정책의 오류는 산업용 전기료도 매 한가지다. 고임금에다 인력난에 그나마 중소 제조업에 수출 경쟁력이 도움이 되는 것은 저렴한 산업용 전기료다. 실제 몇 년까지만 해도 원자력 발전을 통한 양질의 전기료는 국내 중소 제조업 경쟁력에 버팀목이었던 것이 부인 못할 사실이다. 그런데 지난 3-4년 산업용 전기료가 40% 가까이 올랐다. 이제는 중국이나 베트남ㆍ인도네시아 보다 같거나 오히려 비싸졌다.
8월부터 산업용 전기료가 내린다고 하더니 가정용 14% 보다 훨씬 낮은 2.6% 인하 효과에 그치게 됐다. 적어도 5% 이상은 내려야 제조업 수출 경쟁력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 어느 전직 경제단체장 말대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커녕 기업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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