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국회의원 총선을 ‘돈 먹는 하마’ 라고 한다. ‘30당 20락’ 이니 ‘50당 30락’ 같은 유행어가 그래서 나왔다. 과거에는 30억 쓰면 당선이고 20억 쓰면 낙선 공식이 최근에는 50억 쓰면 당선, 30억 쓰면 낙선이란 희화적인 유행어가 나돈다. 선거 때면 당연히 기존 친분이나 미래 보험을 위해 기업인들의 격려 방문이 줄을 잇는다. 분명한 것은 선거 사무소에 갈 때 많건 적건 빈손으로 가는 기업인은 거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치열한 선거전에 실탄이 무한정 필요한데 빈손으로 눈도장 찍는 어리석은(?) 기업인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죽은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8명중 가장 먼저 검찰에 소환돼 혼쭐이 난 이완구 전 국무총리와 홍준표 지사의 구차한 변명에 국민의 여론이 들끓고 있다. 3000만원이란 액수에는 이미 관심이 사라진지 오래다. 웃고 장난치는 모습을 TV화면을 통해 온 국민이 보았는데 그 사람과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니 돈을 떠나 양심을 의심한 것이다.


글로벌 밴더들의 신산고초를 아는가.


모래시계 검사 출신의 홍지사 역시 이런 이유 저런 핑계 대다가 결국 마누라 치마폭에 숨는 식의 발언에 아연실색한 것이다. 정치인들이 돈받은 올무를 부인한 것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지만 자칫 살아가면서 가장 중시해야 할 덕목인 인정과 의리마저 저버린 행동은 두 번 죽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본질 문제로 돌아가 섬유패션뿐 아니라 모든 중소기업이 장기불황에 경쟁력을 잃고 시난고난 삶은 개구리 신세를 호소하고 있다. 세상이 분초를 다투고 변화하는 변곡점의 꼭대기에서 세계의 공장 중국마저 섬유산업의 다운스트림 경쟁력을 않고 있을 정도다.
섬유 의류를 비롯 7000여개 한국기업이 진출했던 중국 청도 소재 섬유 봉제 공장들의 탈출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이미 공장 근로자의 임금이 월800달러대 까지 치솟은 데다 인력부족이 심각해 중국내 섬유 봉제업체들이 베트남, 방글라데시 등으로 빠져 나가고 있다.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듯 일본이 한국에 밀렸고 한국은 중국에 덜미를 잡힌지 불과 십수년 만에 중국마저 급격히 밀리고 있다. 임금이 치솟고 사람이 부족하면 섬유뿐 아니라 모든 경공업이 위기에 몰리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하물며 고임금에 돈보다 더 급한 인력난에 전력료마저 베트남보다 비싼 여건에서 우리 기업의 생존 자체가 어려운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이대로는 안 되니까 포기하라는 얘기는 어불성설이다. 인류역사와 같이해온 섬유 의류산업은 영원히 존재한다는 사실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세계 섬유 의류시장 규모 3조5000억 달러 속에 분명히 우리의 몫은 있기 마련이고 하기에 따라 앞으로도 세어를 얼마든지 넓힐 수 있다.
대전제는 삽질하지 않고 물이 고이기를 바라는 어리석은 발상의 척결이다. 모두가 어렵다고 해도 잘되는 기업은 지금 이 순간도 일취월장하고 있다.
중언부언하지만 본지에 소개된 상장, 비상장 섬유패션 기업의 경영실적이 웅변으로 말해주듯이 이 불황에도 승승장구 하는 기업은 예상보다 많다. 글로벌 패션기업인 이랜드월드와 영원무역ㆍ세아상역ㆍ한세실업ㆍ한솔섬유 등 글로벌 의류 밴더들 모두 호황을 만끽하고 있다. 직물업체로서 봉제수출을 겸영하는 삼일니트ㆍ영텍스ㆍ비전랜드를 비롯한 직물업체들 역시 고도성장을 보이고 있다. 세상에 없는 기술을 개발한다는 목표아래 획기적인 발열섬유와 혈액순환 섬유를 독자 개발한 밴텍스는 나이키와 듀폰에서 상상을 초월한 거액을 받고 거래를 체결하고 있다. 이들 외에도 많은 기업들이 소리 소문없이 섬유패션에서 금맥을 캐고 있는 것도 부인 못할 사실이다.
문제는 세상은 절대 공짜로 이루어지는 요술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들 성공한 기업들은 그야말로 사즉생 (死卽生) 각오로 25시를 뛰면서 맨땅에 헤딩하며 성공이란 과실을 따냈다. 좋은 대학 나와 현실에 안주하며 배급 주는 식으로 갑질 하던 면방과 화섬에서 만년 ‘乙’로 비애를 씹던 글로벌 의류 밴더들은 죽기 살기로 후진국에 뛰어들어 소싱기지를 마련했다. 영원무역이 30여년전 마누라는 없어도 장화없이 못산다는 불모지 방글라데시에 진출해 세계 최대 아웃도어 회사를 만든것 또한 저절로 이루어진 요술이 아니다.
세아ㆍ한세ㆍ한솔을 비롯 수많은 의류 밴더 들이 중남미ㆍ동남아에 나가 대규모 소싱 기지를 확보하여 오늘의 위상을 구축하기까지 신산고초를 겪었다. 40년 전 위험을 무릅쓰고 남미 엘살바르도에 신사복 공장을 투자했으나 정변이 터져 야간에 맨몸으로 국경을 넘어 탈출한 신사복회사 캠브리지 창업주의 행보는 눈물겹다. 과테말라 법인장이 현금 탈취를 노린 현지 갱단의 총격을 받아 아직도 몸속에 총알을 안고 사는 세아상역 법인장의 체험담도 감동적이다.
대구 직물산지의 불황이 갈수록 더해 기진맥진하고 있지만 글로벌 SPA 브랜드에 대량 공급하면서 안정 성장을 유지하고 있는 덕우실업도 그 과정은 피나는 노력의 결실이었다. 창업주 아들은 불모지 터키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아예 5개월간 터키에 주저앉아 유력 바이어와 인연을 맺었고 불황기에 과감한 설비 투자를 단행해 적중했다.
글로벌 기업 누구도 편하게 저절로 성장한 기업을 찾기 어렵다. 하나의 예증으로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인 2조7500억 엔 (25조295억 원)의 영업이익을 낸 일본 도요타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리콜사태와 동일본 대지진 악재로 천문학적인 적자를 냈다. 이 과정에서 도요타는 자존심을 죽이고 포크스바겐을 벤치마킹한 모듐 시스템을 개발해 생산원가를 절감시켰다. 엔저 덕이 가장 크지만 이 같은 자구 노력이 크게 결실을 본 것이다. 삼성전자에 밀려 무너지던 소니도 PC사업을 접고 스마트폰 부품사업에 집중해 2013년부터 흑자로 전환했다.
더욱 특기할 것은 한국에 밀리고 중국에 치여 고립무원의 한계상황에 처했던 일본 후꾸이 산지가 기사회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 내 대표적인 화섬 직물 산지인 후꾸이가 지난 10여년 간 기진맥진 탈진상태에 있다가 작년부터 다시 오더가 늘어나 가동률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후꾸이 산지가 죽었다 다시 살아난 배경은 엔저효과가 크지만 그에 못지않게 차별화 전략에 올인한 덕분이다.


기사회생한 후꾸이 산지서 배우자


한국이나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은 철저히 피해가며 특화전략으로 승부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화섬업계에서도 이미 알고 있듯이, 같은 한국산 폴리에스테르사를 사용해 만든 원단도 한국산은 야드 당 1.40달러인데 반해 일본산은 4달러에 팔리고 있다. 후가공 기술에서 그만큼 앞섰다는 얘기다.
유니클로같은 값싸고 질 좋은 제품만이 아니고 고급 의류시장 전략도 한국과 다르다. 최근 일본의 면방관련 기업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일본 어패럴 업체들은 인도 프리미어社에서 150수 또는 180수 세 번수 면사를 들여다 편직 가공해 만든 티셔츠 한 장에 1만8000엔 (18만원)씩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고급 제품에 대한 편직ㆍ가공기술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대구 산지도 스스로 창조하기는 어렵겠지만 모방하는 데는 뛰어난 순발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 일본 후꾸이 산지의 부활을 벤치마킹하기위해 하루 빨리 발품을 많이 팔 것을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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