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파구는 결국 레드오션, 섬유에 영혼 불어넣어야”

- ‘쏠라볼’로 두 번째 장영실상 수상 
- 이달중 글로벌 기업과 계약 성사
- 13일 힐링팩토리 3공장 준공
- 버티컬 반대, 협력사 상생 앞장 
- 다음 개발 화두는 광 축열·발광

세상에는 많은 직업들이 있다. 하지만 그 중 자기가 한 의사결정이 바로 성공과 실패로 연결되는 직군은 기업가가 유일하다. 때문에 뛰어난 기업인들은 흥망성쇠의 경계에서 항상 긴장하고 있어 일반적으로 고도의 민감도를 갖고 있다. 사회의 기저에 흐르는 조짐을 읽는 더듬이인 셈이다. 
이들은 고도의 더듬이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언제’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을 대게 정확히 알고 있다. 감각이고 통찰이다.
모두가 레드오션이라 단정하는 섬유산업에서 신시장을 찾아 푸른빛 바다를 만들고 있는 벤텍스의 고경찬 대표는 분명 누구보다 높은 더듬이를 갖고 있는 경영인이다. 그를 볕이 좋은 봄날의 오후 서울 잠실 벤텍스 본사에서 만났다. 마주한 그의 두 눈은 봄 햇살처럼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원유진 기자 


 

“중소기업은 자전거, 멈추면 쓰러져”   
‘약동하는 사양산업’. 형용모순이지만 이보다 벤텍스를 담백하고 명징하게 전달할 수 있는 표현이 있을까.
고 대표는 이를 “고목나무에 꽃을 피운다”고 표현했다. 모두가 섬유를 노동집약적 사양산업이라고 평가할 때 그는 ‘세상에 없는 기술’을 만들겠다는 포부로 산업의 패러다임 시프트에 도전했다. 결국 차별화된 기술력과 가치만이 바이어들의 발길을 다시 돌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고 대표는 2005년 1초만에 마르는 섬유 ‘드라이존’ 개발을 시작으로 냉감섬유 ‘아이스필’, 발열섬유 ‘히터렉스’ ‘메가히트’, 생체활성화 섬유 ‘파워클러’ 등 놀라운 결과물들을 쏟아내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오리와 거위 다운을 대체하는 광발열 충전재 ‘쏠라볼’은 기술의 독창성과 중요성을 인정받아 올해 벤텍스에 장영실상을 안겼다. 2011년 스스로 변신하는 스마트 섬유 ‘오토센서’에 이은 두 번째 수상이다. 현대자동차, 현대 모비스, GS칼텍스, LG화학 등 10여개 대기업과 경쟁해 거둔 성과이기 때문에 더욱 빛났다.
쏠라볼은 온도를 10도 올리는 탁월한 발열기능을 갖춘 충전재로 시장성과 수익성, 성장성을 모두 갖췄을 뿐 아니라 ‘동물사랑’이라는 스토리를 통해 대중적인 공감과 지지도 효과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어 시장의 반응이 뜨겁다. 특히 ‘나이키’ ‘파타고니아’ ‘마무트’ 등 미주·유럽 바이어들은 열광적이다.
이처럼 끊임없이 고민하고 도전하는 과정에 대해 고 대표는 자전거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중소기업은 자전거 타는 것과 같습니다. 자전거는 속도가 붙으면 사실 페달을 멈추고 손을 놓을 수도 있습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주변을 돌아보기도 하죠. 하지만 곧 속도가 줄고 쓰러지게 됩니다. 기술이라는 것은 속성상 곧 대체 기술로 인해 소멸되게 마련입니다. 머무를 수가 없지요. 부단하게 고민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미국 나이키는 지난해 하반기 벤텍스의 아이스필RX를 2016년 브라질 올림픽 공식 의류로 채택했다. 1차 계약 금액은 250만달러(약 27억2000만원), 향후 연간 4000만달러(약 436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또한 이달 중 글로벌 기업과 매출의 8% 러닝 로열티를 받고 기술울 수출하는 계약을 앞두고 있다.
매출목표를 묻는 질문에 고 대표는 손사래를 쳤다.
“기술은 개발부터 바이어에게 채택될 때까지 3년이 걸립니다. 올해 이니셜 오더가 시작됐고, 내년부터 메인 오더에 돌입합니다. 발열과 쏠라볼까지 확대되면 지금 숫자를 논하는 건 큰 의미가 없을 것같습니다.(웃음)”

“상생 마인드 갖고 레드오션에 맞서야”
벤텍스는 13일 경기도 포천 힐링팩토리 3공장 쏠라텍의 준공식을 가진다. 쏠라볼을 생산하게 될 3공장은 세상에 없는 새로운 섬유를 생산하는 만큼 라인 설계를 모두 벤텍스에서 진행했다. 기계설비 역시 모두 전문회사와 함께 만들었다.
하지만 고 대표는 3공장 못지않게 1·2공장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1·2공장은 저희 협력업체들이 입주해 좋은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벤텍스 물량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협력사와 중복되는 설비는 갖추지 않는다는 게 철칙입니다. 아무리 오더가 많더라도 염색·제편 공장은 만들지 않지요. 공장에 가면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더불어 성장한다’는 슬로건이 걸려 있습니다. 함께 상생하는 길입니다.”

경기도 포천 힐링팩토리 3공장 '쏠라텍'

그는 일명 ‘버티컬’이라는 제조회사들의 수직계열화에 대해 ‘자살행위’라고 표현할 만큼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고 대표는 “장치산업이라는 것은 설비투자가 선행되어야 하고 필연적으로 자금이 묶일 수밖에 없다”며 “생산은 전문가에게 맞기고 대신에 하드웨어에 어떤 소프트웨어(화학기술)를 첨가해 영혼을 불어 넣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한국 섬유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일반 플리스의 경우 국내에서는 경쟁력이 없지만 여기에 발열기술을 더하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고 대표는 레드오션에 주목할 것을 업계에 주문했다.
“블루오션이라는 신기루를 쫓기보다, 시장의 규모도 크고 안정적이며 이해도도 높은 레드오션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합니다. 유니클로의 히트텍은 레드오션에서 찾은 신시장의 대표 사례이지요. 이처럼 레드오션은 벗어나야할 시장이 아니라 오히려 지배해야 하는 시장입니다. 어떤 전략으로 레드오션 안에서 블루오션을 만들어 낼지 고민해야 합니다.”
     

“프로모션통한 거래관행 반드시 개선”
벤텍스는 OR쇼에 나가면 글로벌 바이어들도 40분 상담시간 제한에 예약을 하고 기다려야 할 만큼 인기가 높다. 또한 글로벌 기업의 한 연구소장은 벤텍스의 소재를 두고 “30여년간 섬유·패션 업계에 있는 동안 봤던 기술 중 가장 아름답고 혁신적”이라 극찬하기도 했다.
이런 벤텍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국내시장에서는 해외에서 만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품질과 기능성은 차치하고 수입 원단이라는 배경에 대한 맹신이 여전한 업계 풍토 때문이다.
“아직 국내에서는 브랜드 밸류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종의 사대주의인 셈이죠. 예를 들어 수입은 야드당 2만원이라도 비싸다는 말 안하고 사지만, 국산은 5000원만 되도 비싸다고 깎으려 듭니다. 우리가 월등히 뛰어난 기능을 갖고 있어도, 아무런 기능이 없는 수입산을 몇 배 비싼 가격을 주고 삽니다.”
특히 고 대표는 원청기업이 아닌 프로모션을 통한 원부자재 업체의 거래관행에 문제가 많다고 꼬집었다. 그렇다 보니 결제가 투명하지 않고, 갈등이 빈번하다는 것이다.
“내수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프로모션을 통한 거래 시스템에 있습니다. 적지 않은 프로모션들이 부실기업입니다. 먹고 튀는 거죠. 이들 프로모션들은 원단에 어떤 형식으로든 클레임을 겁니다. 불량이라곤 하지만 소비자들은 구분을 못하죠. 그리고는 절반을 꺾자는 요구를 합니다. 팔릴 수 있는 물건을 가격을 깎아 자기 마진을 만드는 것이죠. 국내의 상당수 업체들이 그렇습니다. 이러한 내수 관행에 과연 견딜 수 있는 기업들이 얼마나 될까요? 없다고 봅니다.”
이와 같은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으로 그는 원청 기업의 적극적인 개입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원단이 1억원이고 완제품 가격이 5억원이라고 하면, 구매를 할 때 4억원과 1억원을 프로모션과 원단 업체를 나눠 결제를 하면 된다는 것. 
이러한 업계 관행 때문에 그는 가급적 내수보다 수출물량을 지속 확대할 계획이다. 아직은 내수 비중이 크지만 내년부터는 30% 미만으로 줄어들 것으로 고 대표는 내다봤다. 
  

“사랑담은 기술로 아름다운 기업 만들터”

고 대표는 기업가와 개발자, 두 가지 정체성을 따로 떼서 생각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개발은 반드시 상용화를 전제로 해야 하고, 상용화를 위해서는 필드에서 소비자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그들의 ‘니즈’와 ‘결핍’을 이해해 개발에 녹여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고 대표의 투트랙 전략은 보기 좋게 들어맞았다. 땀을 1초면 마르게 했다가, 에너지로 전환하는가 하면, 유기체처럼 형태가 변하도록 했다. 그렇게 땀에 대한 과제가 마무리되고 나자 태양광을 통해 발열하는 소재를 개발했다. 100% 적중률이었다.
벤텍스는 바이어로 하여금 ‘만족’보다 다음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중소기업은 끊임없이 페달을 밟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가 요즘 몰두하고 있는 화두는 무엇일까.
“쏠라볼을 통해 태양광을 통한 발열에 성공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발열 후 어떻게 축열을 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최대 화두죠.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증폭시키는 것과 축열의 개념은 완전히 다릅니다. 축열기술은 아직 발명된 사례가 없습니다. 마지막 단계는 광을 통해 어떻게 발광을 할지가 될 겁니다.(웃음) 그 다음은 뭘 할까요. 바람? 충돌에너지? 끊임없 상상하고 고민합니다.” 
이와 같은 고 대표의 섬유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오늘날의 벤텍스를 일궜음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아마 그는 섬유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물론 이 시대를 이끄는 혁명까지 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 지도 모른다. 섬유 업계에서는 이미 ‘성공한 기업가’로 통하는 그에게 끝으로 스스로 정의하는 성공에 대해 물었다.
“성공은 세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꿔가는 데 일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성공이죠. 돈을 벌고, 사장이 되고, 회장이 되고… 하지만 기업이 사회의 지탄을 받는다면 실패라고 봅니다. 그래서 ‘세상에 없는 기술에 사랑을 더한다’는 신념으로 아름다운 기업을 만들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바람대로 된다면 성공이란 단어를 그때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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