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년 전 부터 제로(0%) 금리를 적용하고 있는 일본은 은행에 1억 엔을 예금하면 수수료 빼고 9900만 엔 밖에 원금을 찾지 못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대부분 금융자산이 많은 65세 이상 노년층은 은행에 돈을 넣지 않고 현금을 자기 집 안방 다다미 밑에 깔아놓고 생활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안 신종 도둑들은 아무집이나 대문 초인종을 눌러 안에서 "누구냐"고 물으면 "건강하십시요"하고 돌아간다. 대신 밖에 우유병이나 신문이 쌓여있고 초인종 소리에 반응이 없으면 "노인이 갔구나"하고 담 넘어가 안방을 뒤지는 도둑이 극성을 부린다는 것이다.

급기야 우리도 사상 초유의 금리 1%시대가 열렸다. 10억을 예금하면 한 달에 고작 120만원의 이자 수익이 전부다. 여기에 이자소득세 제하고 물가상승률 따지면 이자소득으로 살아가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

공멸 대비책 하루가 급하다.

오히려 금융자산이 노출돼 입게 될 상속세 벼락을 피하기 위해 5만원권 갖다 집안 장롱이나 금괴에 쌓아놓을 상황이 현실로 다가왔다. 한극운행에 따르면 지난해 10월까지 5만원권은 88조1000억 원이 시중에 공급됐으나 이중 55.7%인 49조1000억 원이 한국은행 금고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5만원권 발행 전인 2008년만 해도 화폐 환수율이 95.4%달했던 것과 천앙지차를 보이고 있다. 안방 장롱에 쌓아둘 5만원권이 더욱 늘어나는 것은 불문가지다.

기준 금리 1%시대가 열리면서 순기능의 바로미터는 부동산 경기다. 빚내서 집사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가계부채가 1100조에 육박한 우리 실정에서 더 이상 급증하는 것은 시한폭탄일 가능성이 크다. 반면 득달같이 환율이 요동쳐 달러 강세에 대비해 원화가 약세를 보여 섬유수출에 단비가 될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 원ㆍ달러 환율이 1130원대를 지나면 섬유수출 경쟁력이 크게 도움을 받기 때문이다.

또 하나 초저금리 시대를 맞아 멈춰버린 섬유ㆍ패션업계의 투자활성화 가능성에 기대를 모은다. 이자부담이 적다는 것은 설비투자나 R&D투자가 활성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금리, 고비용, 저효율 구조에서 우리 섬유ㆍ패션산업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 산업이 백약이 무효일 정도로 가물가물 시난고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상초유의 1%저금리 시대에 섬유ㆍ패션산업부터 신규투자가 러시를 이뤘으면 싶다.

때마침 한국섬유산업연합회가 성기학 회장의 특별지시로 위기에 빠진 섬유ㆍ패션산업 중흥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한다. 각 스트림별ㆍ권역별 섬유ㆍ패션산업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강도 높은 고단위 처방을 마련하겠다는 의도다.

작년 하반기 후반부터 착수한 이 섬유ㆍ패션산업 회생전략은 그동안에도 수없이 제기돼왔지만 그때마다 백가쟁명식 의견만 난무할 뿐 딱 부러진 전략은 별로 만들지 못했다. 시장경제와 실물경제 대가인 성기학 회장이 팔소매를 걷어붙이며 채근하고 있는 중흥전략의 핵심이 곧 성안되겠지만 이 처방이 얼마만큼 실효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그동안 기업인과 단체, 연구소, 학계 의견을 모아 80여개 항목을 수립한 다음 최종 20개 항목 내외로 압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20개 항목 중 진짜 우리 섬유ㆍ패션산업의 중증을 치유하고 회생시킬 만병통치약이 있을 리 없지만 그나마 기대를 갖고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조사 분석을 통해 압축한 중흥전략도 대부분이 자기 업체 자신의 연구소나 단체 등 이익단체를 위한 건의가 대부분이란 점에서 중간보고를 받은 성 회장이 버럭 화를 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산업이 몰락하고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공멸을 막을 것인가에 대한 실질적인 처방은 없고 대부분 이익단체가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내용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시간이 흐르더라도 획기적인 처방을 마련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금 우리 섬유ㆍ패션산업이 서 있는 현주소는 백척간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기불황에 사람은 없고, 은행은 괄시하고, 시장에서 경쟁력은 날개 없이 추락하는 상황에서 뾰족한 대안이 없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겠지"하며 천수답 경영으로 일관하다 자포자기 상태로까지 체념하고 있는 상황이다.
산업화시대와 달리 정부가 쓰러져 가는 산업을 안고 갈수도 없다. 단체나 연구소가 소멸돼가는 산업을 희생시킬 능력도 자질도 부족하다. 결국 기업의 운명은 스스로 결정할 수밖에 없는 각자도생의(各自圖生)의 시대다.

그러나 기업이 할 수 있는 것은 마지막까지 전력투구하되 안 되면 국가가 지원하는 것 또한 정부 몫이다. 정부가 다 안고 갈 수는 없지만 "산업이 죽건 말건 알바 아니다"는 논리 또한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이같은 대전제에서 가장 시급하고 절박한 문제가 무엇인지 그걸 찾아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언필칭 가장 절박한 것이 '돈'이라고 한다면 정부가 돈 보따리로 구제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진정 투자를 하겠다고 해도 은행이 획일적인 규정을 이유로 외면하는 이런 모순을 시정하는 것이 급선무다.

일시적인 자금난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회사도 가능성이 있다면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매출과 실적이 전년보다 줄거나 일시적으로 적자가 났다고 산소호흡기를 끊어 버린 야멸찬 돈장사의 횡포를 근절시키는 것도 중흥정책의 하나다. 국내 교직물 업계의 선두주자의 하나였던 (주)파카가 획기적인 화섬방적사 설비를 위해 부동산을 담보로 은행의 문턱이 닳도록 쫓아다녔으나 최근 3년 실적이 안 좋다고 후취담보 조건마저 외면해 기업 문을 닫고 말았다. 햇볕 날 때 우산 빌려주고 비오면 회수하는 은행권의 패쇄적인 행태가 바뀌어져야 한다. 섬유ㆍ패션산업이 부당하게 받고 있는 차별대우를 근본적으로 쇄신하는 것이 급선무다.

불황에도 사람이 없어 50~60대에 생산현장을 맡기고 있는 인력수급 대책도 발등의 불이다. 외국인 근로자 도입 한도를 고용인원의 30%까지 허용하도록 정부를 설득해야 한다. 지금과 같이 송출회사가 수천만원씩 수수료를 챙기는 송출제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이탈을 막을 수 있다. 또 최저임금제를 내국인과 똑같이 적용하는 세계 유일의 선심제도부터 뜯어 고쳐야 한다.

제2, 제3의 파카사태 막아야 한다.

사람이 올 수 있도록 공장 환경 개선비용 정도를 정부가 지원할 수 있도록 건의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글로벌 시대에 우리만 울타리 막고 살수는 없지만 가급적 국내 산업을 보호할 수 있는 해외수입품의 불공정 행위를 막도록 해야 한다.

당장 우리 경공업이 살길은 개성공단이라면 정경분리를 내세워 개성 섬유공단조성을 정부에 적극 촉구해야 한다. 북한 돕기가 아니라 우리 기업이 살길은 이것이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책이라면 밀어부처야 한다.

섬유ㆍ패션산업 중흥전략이 없다고 포기하면 정부나 단체, 연구소의 존립의미가 없다. 사즉생(死卽生)각오로 심도 있게 길을 찾으면 나올 수 있다. 이 바탕에서 강도 높은 처방을 만들어 전 섬유ㆍ패션인이 함성을 질러 정부에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 섬유ㆍ패션인이 중구삭금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정부가 적극 나선다. 지금 우리는 죽 쒀서 식힐 시간이 없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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