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불어터진 국수”발언을 놓고 정치권에 날선 공방이 거듭되고 있다. 설익은 국수보다 적당히 불은 국수 맛이 좋을 수 있지만 너무 불어터진 국수는 젬병이다.

그러나 정치권은 국수가 불어터지거나 설익은 문제만 집착할 뿐 근본적으로 시어터진 반죽의 잘못된 문제를 도외시해 답답하고 분통이 터진다. 우리 경제가 잘못 꼬이기 시작해 벼랑 끝으로 몰리는 근본 문제인 반죽이 어디서부터 잘못되고 있는데 대한 성찰은 안하고 서로 네 탓 타령이다.

지금 당장 겪고 있는 최악의 불황도 문제지만 미래에 대한 비전이 절벽에 부딪히고 있다는 점을 외면하고 있다. 살기가 팍팍한데다 감당하기 힘든 사교육비 부담으로 아기 울음소리가 사라진 것부터 국가적 재앙이다. 현재의 인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출산률이 2.1명이 돼야 하지만 지난해 출산률은 1.21명에 불과해 저출산 세계 1위 국가다. 반면 고령화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빨라 수상해서는 안 될 저출산ㆍ고령화 금메달 국가다. 생산 인구는 급감하고 노인 인구만 급증하면 그 나라는 희망이 없다.

패션브랜드 중국 공략 개성공단 호재

설상가상으로 나랏빚인 국채 발행규모가 507조로 늘어나 사상 최대 규모를 나타냈고 박근혜 정부 들어서만 불과 2년 사이 87조가 늘어났다. 후손들에게 상속해야할 산더미 부채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나랏빚은 물론 개인부채도 이미 지고 갈 수 없는 한계상황에 봉착했다. 한국은행의 공식 발표대로 작년 말 현재 개인부채(가계대출+판매신용) 규모가 벌써 1089조원에 달한다. 어느덧 부채 공화국이다.

아무리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국민성이라지만 산더미 빚을 지고 있으니 소비가 살아날리 없다. 청년 실업자가 100만명에 달하고 이중 절반은 취업을 아예 포기하고 말았다. 개인이건 국가이건 벌어들인 수입보다 나가는 지출이 많으면 거덜 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경기불황에 일자리마저 줄어드니 소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국세 펑크액이 지난해에만 11조원에 달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같은 근본 문제에 대한 잘못된 반죽은 제쳐 놓고 국수가 불어터졌느니 설익었느니 갑론을박 하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다.

거두절미하고 그동안 베일에 감춰져있던 한ㆍ중 FTA가 양국정부 간 가서명이 이루어지면서 뚜껑이 열렸다. 정부 협상팀이 섬유분야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갖고 국내 산업 방어에 집중해 섬유분야는 비교적 선방한 사실이 확인됐다.

섬유분야의 1256개 품목 중 당장 중국 공세에 위기를 겪고 있는 화섬사와 화섬직물 등 핵심 산업은 거의 대부분 양허에서 제외시켰다. 섬유분야 양허제외 품목인 초민감 품목에 153개 품목이 포함돼 한ㆍ중 FTA 전체 양허 제외품목의 60%를 차지할 정도다. 또 20년간 단계적 관세철폐인 민감 품목도 116개 품목에 달한다. 한ㆍ중 FTA 결과만 두고 보면 우리 섬유산업은 준 농업 대우를 받은 것이다.

물론 ‘옥에 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미래의 먹거리이자 국가적 전략산업인 탄소섬유의 한ㆍ중 FTA타결은 한마디로 실패했다. 현행 관세제도는 한국산이 중국에 나갈 때 17.5%를 부과 받고 중국산 탄소섬유가 한국에 들어올 때 8% 관세를 부과 한다. 우리 측은 공정한 룰을 형성하기 위해 한ㆍ중 양국 모두 관세율 0%를 제안했다. 그러나 우리와 함께 중국이 국가전략산업으로 키우고 있는 탄소섬유는 협상막바지까지 일언반구 않다가 어물쩍 중국산만 0%로 가는 꼼수에 걸렸다. 반면 한국산의 대 중국 수출은 현행대로 17.5%를 그대로 적용키로 마무리한 것이다.

철보다 무게는 4분의 1에 불과하고 강도는 10배나 강한 탄소섬유 제품의 용도는 무궁무진하다. 철강을 대체할 탄소섬유는 이미 일본회사들이 선점하고 있는 비행기 날개와 자동차, 조선 등 각 분야에 사용될 미래의 쌀이다. 중국이 전략적으로 탄소섬유 산업을 육성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시장만 개방시키고 자국 시장은 닫아버린 꼼수에 당하고 말았다.

한ㆍ중 FTA에서 기대를 모은 것은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공산품에 대한 역외가공인 점이다.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공산품은 ‘메이드 인 코리아’로 인정하는 것은 개성공단을 통한 한국의 패션브랜드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소비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은 한류바람을 타고 우리의 패션제품 선호도가 강한 곳이다. 월 기본급 70달러 남짓에 야근 수당을 합쳐도 월 150달러 미만인 개성공단은 가격경쟁력과 품질경쟁력에서 이미 검증된 바 있다.

국내 패션브랜드가 개성공단에서 제품을 만들어 중국에 공급할 경우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으로서 폭발적인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미 (주)신원 같은 패션기업은 중국에 5개 브랜드를 진출시켜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가운데 자사의 개성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이 중국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어차피 세계 최대 소비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13억 중국시장은 우리의 제 2의 내수시장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국내 패션기업들이 이같은 호재를 이용해 개성공단 활용도를 높일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개성공단 제품이 중국 시장에서 일시에 큰 성과를 내기는 성급한 발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베트남이나 중국에서 만든 제품과 달리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에 대한 중국 소비자들의 선호도를 제대로 활용하면 큰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할 것은 한ㆍ중 FTA가 개성공단의 긍정적인 평가를 제외하고는 우리 섬유ㆍ패션산업에 영향을 받을 상황이 아님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한ㆍ중 FTA타결 결과가 한국섬유산업의 방어논리로 접근한 것은 잘된 일이지만 근본적으로 우리의 경쟁력은 FTA와 상관없이 폭삭 주저앉고 있는 것이다.

현재도 기본관세 8%내외와 엔티덤핑 관세 등으로 울타리를 막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산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규모경쟁과 신설비로 무장한 중국은 인건비 부문에서도 아직 한국의 5분의 1이상 저렴한 장점을 갖고 있다.

굼뜬 구조혁신 이대로 가면 공멸한다.

우리 섬유업계가 현재의 구조로 중국 섬유업계와 맞짱을 두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봉제가 무너진데 이어 화섬ㆍ 면방ㆍ직물ㆍ염색 모두 벼랑 끝에 몰린 것은 중국의 규모경쟁과 가격경쟁에 이겨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한ㆍ중 FTA가 한국섬유산업 방어논리에 아무리 충실했다 해도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는”흐름을 역류시킬 수 없다. 그만큼 우리 섬유산업 구조는 취약할 대로 취약해진 상태다. 지금 상태에서는 백약이 무효다.

중언부언하지만 명제는 분명히 설정돼 있다. 중국보다 비싼 제품, 중국이 못하거나 하지 않는 차별화 전략이다. 그러나 이같은 명제가 저절로 이루어진 요술이 아니다. 투자하고 연구개발하고 국내외 마케팅력 강화가 선결과제다. 지금처럼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 우리 업계의 구조혁신이 굼뜬 상태에서는 공멸을 재촉할 수밖에 없다. 쇠락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는 천수답 경영체질에 혁명적인 구조혁신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난파선에 쥐 빠져 나가는 흐름을 막을 재간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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