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국무총리가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야당 의원들로부터 복날 개패는 듯한 몽둥이 찜질을 당했다. 입에 바늘을 물고 혀끝에 독을 바르고 거침없이 찌르고 할퀸 신상 털기로 괜찮았던 이미지에 중상을 입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국무총리 이미지가 상처투성이가 돼 국정의 2인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지 걱정이다. 인사 청문회의 기본 목적이 도덕성과 자질 검증이지만 본인 가족은 물론 사돈팔촌까지 시시콜콜 약점을 뒤지는 행태는 누가 됐건 만신창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녹음 파일로 금방 탄로 날 일을 부지불식간에 거짓말을 한 것은 서툴기 짝이 없었다. 자신의 과오를 시인하고 사과한 이상 앞으로는 국정수행 능력에 초점을 맞춘 성숙된 검증으로 바뀌어야 한다. 야당도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집권의 대기자로서의 면모를 일신해야 한다. 당리당략보다 국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부인 못할 사실이다. 지금은 박근혜 정부가 토사곽란 상태인 나라경제를 치유하도록 믿고 맡기는 것이 정치권과 국민이 취할 태도다.

한국 임금 동남아 1년치… 전기료까지

말을 바꿔 설마 했던 한국 경제가 속절없이 망가지고 있어 이대로 방치하면 쪽박신세가 안 된다는 보장이 없다. 어렵게 빙빙 돌려 변명할게 아니라 세금징수 실적만 봐도 망가진 경제 상태를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지난해 국세 징수 실적이 정부 계획보다 무려 10조 9000억 원이 덜 걷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기업 실적이 부진하고 내수 경기가 냉골로 주저앉은 결과다. 심지어 세계 초일류 기업 삼성전자마저 지난해 7조9000억 원의 법인세를 낸데 반해 올해는 4조3000억 원에 그치고 있다. 현대자동차, LG전자도 3000억 원 이상이 줄었다. 2012년부터 내리 3년간 세수 펑크가 이어지고 있고 올해도 많건 적건 세수 펑크는 받아놓은 밥상처지다.

기업실적 부진은 경쟁력이 그만큼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아무리 이리저리 통박을 굴려도 한국경제의 경쟁력 회복은 손에 잡히지 않고 있다. 고임금에 인력난이 겹치면서 국가경제의 대동맥인 제조업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를 비롯 10대 재벌이 현금을 500조 규모로 보유하면서도 국내 투자를 꺼리고 해외투자에 집중하는 이유는 뻔하다. 이런 임금구조와 인력난에 전력요금, 강성노조가 겁나 엑소더스가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임금 인상률은 지난 23년간 OECD국가 중 1위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실질 임금이 구매력 기준으로 환산해 이미 일본을 앞설 정도다. 고임금뿐 아니라 제조업 현장에 기피증이 심해 오는 사람이 없다. 섬유사업장뿐 아니라 대다수 중소제조업은 50~60대 근로자가 대부분이다. 살아가기가 팍팍해 일은 더 하고 싶지만 눈이 어두워져 퇴사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신규 젊은 인력은 떡 쪄놓고 빌어도 철저히 외면한다. 가동률 50% 미만에도 사람이 없어 쩔쩔매는 산업현장에는 경기가 살아나도 걱정이다. 감당할 인력이 없기 때문이다.

기업은 포기하지 않는 이상 어딘가로 비상구를 찾아야 하기에 너도 나도 해외로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타 산업도 집단탈출이 있었지만 섬유와 봉제공장만큼 대량으로 탈출하는 업종은 드물다. 본지 보도대로 작년 9월 말 기준으로 국내 크고 작은 섬유ㆍ봉제업체들이 무려 5500개 업체가 해외로 나갔다. 투자규모만 자그마치 7조4000억 원에 달한다.

김정일ㆍ김정은이 좋거나 도와주려고 간 것이 아니라 기업이 살기 위해 125개 업체가 동토의 나라 개성공단으로 갔다. 그 곳에 가면 칼날 위를 걷는 위험부담은 있지만 값싸고 풍부한 젊은 인력이 있기 때문이다. 5500개 이상의 국내 기업이 해외로 집단 탈출한 뒷자리는 공동화(空洞化)란 후유증이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 첫 번째가 이미 봉제산업에서 비롯돼 종업원 100명 이상 봉제공장은 국내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열 손가락 미만이다.

봉제가 가니까 니트편직ㆍ화섬ㆍ교직물이 따라 나가고 심지어 전통보수 업종인 면방회사들까지 경쟁적으로 나가고 있다. 최근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의 투자환경을 조사하고 돌아온 업계 인사들의 분석은 더욱 충격적이다. 한국 공장의 한 달 임금이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의 1년분과 맞먹는다는 것이다. 웬만하면 국내에서 버티기 위해 참아왔지만 더 이상 국내 공장을 고집하는 것은 기업 간판 내리고 문 닫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실토했다.

인건비 뿐 아니다. 제조업에서 우리가 가장 불리한 취약점은 임금차와 인력난, 전기료 문제다. 우리나라는 원자력 발전으로 비교적 저렴한 전력료가 경쟁력이었지만 최근 3년간 야금야금 올린 산업용 전기료가 40% 가까이 올랐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에 비해 유리한 여건이 상실된 채 오히려 비싸게 먹히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발전체계는 유류를 사용한 화력발전 비중이 극히 작지만 그동안 국제 유가가 오를 때면 득달같이 전기료를 올려놨다. 그런데도 배럴당 120달러에서 50달러 밑으로 폭락한 국제 유가에는 뭉그적거리고 전력료를 안 내리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미 해외로 엑소더스한 섬유봉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남아있는 국내 기업이 버틸 수 있는 여건이 발등의 불이지만 대비책이 없다는 점이다. 중국이나 동남아보다 우리 제조업 경쟁력이 떨어진 것은 인건비와 전기요금 빼면 별반 큰 차이는 없다. 인력난과 고임금에 전력료 메리트마저 떨어진 한국 내 기업들은 ‘모’아니면 ‘도’신세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해외로 탈출하거나 국내에 남아있다 수명을 끝내는 것이다. 진즉부터 우려해온 일이지만 섬유기업들 상당수가 투자를 기피하고 있다. 미래가 안 보이는 시계제로 상태에서 더 투자하는 것보다 그동안 땅값이 많이 올라 공장팔면 수십, 수백억 챙기고 문 닫을 기세다. 대기업이 갖고 있는 화섬산업도 중국에 대응하자니 계란으로 바위치기란 걸 알고 어느 날 갑자기 문 닫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화섬산업이라고 별 재간이 있을 수 없다. 기업의 생존전략인 흑자 기조를 기대할 수 없는 채 최근 몇 년처럼 계속 적자를 기록한다면 오너가 “문 닫아”하는 날이 갑자기 닥칠 수 있다. 물론 그쯤되면 중국산이 한국의 안방시장을 장악하고 가격 폭등의 횡포가 만연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추가탈출 불 보듯. 대비책 발등의 불

일본의 세계적인 컨설턴트 오마에 겐이치 씨가 “한국산 제품은 중국이나 동남아 제품에 비해 5배~10배 이상 값을 더 받을 수 있는 제품이 안 나오면 공멸할 것이다”고 충고한 대목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중국과 동남아산보다 5~10배 더 받는 것은 저절로 되는 요술이 아니다. 구조를 고도화하고 중국이 할 수 없는 차별화 특화전략으로 틈새시장을 장악하는 전략이 아니고서는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거두절미하고 이같은 상황이 해소되지 않으면 남은 기업들도 한국에서 더 지탱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기업 스스로의 구조 고도화를 위한 자구노력이 선행되면서 기업이 하기 어려운 문제는 정부의 산업정책으로 풀어야 한다.

그럼에도 정부의 산업정책은 계속 뭉그적거리고 있고 기업은 죽 쒀 식힐 시간이 없는 아사 직전 상태에서 ‘해외탈출이냐’, ‘버티다 죽느냐’의 위기에 몰려 있다. 기업, 정부, 단체가 산업현장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생존할 수 있는 처방을 마련하는 것이 발등의 불이다. 공멸을 재촉하는 초침소리가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뭉그적거리다가는 게도 구덕도 다 놓칠 수밖에 없고 그때 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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