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바람 잘 날이 없다. 눈만 뜨면 경천동지할 사건사고가 도배질을 한다. 세월호 충격으로 국가 안전처가 발족했지만 사고가 줄었다는 소리는 구두선이다. 천재(天災)와 인재(人災)가 뒤범벅이 돼 불나고 무너지고 폭발하는 굉음이 귀청을 찌른다. OECD국가 중 가장 높은 사고공화국의 불명예가 부끄럽다.

세상이 악해져서인지 유치원 교사들의 인성도 무자비하게 독해졌다. ‘쥐면 꺼질까’, ‘불면 날까’하는 여린 아이에 손댈 곳이 어디 있다고 콩쥐 계모 뺨치게 학대하다니 억장이 무너진다.

들끓는 분노에 휘발유를 불어 넣은 것은 13월의 세금폭탄이다. 오락가락 원칙 없이 갈지자 정부 행태에 민심은 이반을 넘어 분노를 표출한다. 콘크리트 지지세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대통령 지지도가 35%로 추락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자기 밥그릇에 콩 작으면 우라지게 등 돌리는 국민성을 몰라서다. 정부가 증세의 불가피성을 처음부터 까놓고 털어놓을 일이지 어물쩍 꼼수를 두다 혼쭐이 나고 있다.

투철한 소명의식 없으면 아무나 못한다.

다시 우리 얘기로 돌아가 모든 업종별 단체가 비슷하지만 섬유ㆍ패션단체마다 2월 정기총회 시즌이 임박하면서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다. 더구나 올해는 굵직굵직한 섬유ㆍ패션 중 앙 단체장들이 대거 임기가 만료돼 후임인선을 놓고 업계의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어떤 단체는 아직 나이가 젊고 능력이 있지만 4연임을 끝으로 스스로 후임에게 바통을 넘기기 위해 용퇴를 결심한 단체장도 있다. 또 지도자로 봉사한 지 10년이 됐지만 탁월한 능력과 헌신적인 봉사로 업계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연임이나 중임이 불가피한 단체장도 있다.

섬유ㆍ패션단체장들은 봉사와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어 웬만한 열정과 각오, 그리고 지도력이 없으면 수행하기 어려운 자리다. 시간과 몸과 돈을 희생해야 하는 고달픈 자리이다. 그래서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없고 하기 싫다고 쉽게 물러나기도 어려운 자리다.

그야말로 소명의식이 없으면 하기 어려운 것이 섬유ㆍ패션 단체장이다. 그래서 과거와 달리 희생과 봉사를 강요당하는 어려운 단체장을 하지 않겠다는 기피증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더구나 기업경영 환경이 어려워지면서 섬유ㆍ패션 단체 중 재정사정이 열악한 단체는 더욱 기피할 수밖에 없다. 섬유ㆍ패션 단체 중에서 회비를 받아 운영하는 곳은 열에 하나 있을까 말까다. 인기 있는 해외전시회 주관단체에게나 바늘구멍의 참가 경합을 의식해 고분고분 낼 뿐이지 대부분 회비납부가 부진한 것이 단체들이 겪고 있는 현주소다.

이렇게 운영이 어려운 단체는 누구보다 단체장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해당 단체장을 희망하는 곳이 있다면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난해 8월 우리나라 섬유ㆍ패션업계 수장(首長)을 뽑는 행사에는 무려 4명의 기라성 같은 업계 중진들이 나서 모처럼 모양세가 좋았다. 그동안 39년 섬산련 역사상 단 한 번도 경합 없이 추대형식으로 선임해 자의 반 타의 반에 의해 섬산련 회장을 맡아왔다.

섬산련이야 수천억 짜리 자체 빌딩을 보유하고 있어 재정 걱정이 없지만 그 자리마저 과거에는 선뜻 나서지 않은 것은 무보수 단체장직 수행이 웬만한 기업하나 운영하는 것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시도 때도 없이 개최되는 이런 저런 회의에 참석하느라 회사업무에도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 그렇게 봉사하고도 찬사와 갈채보다 비판의 잡음이나 심지어 음해성 형사고발까지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꼴을 겪기도 한다.

실제 한국모방협회가 재정이 어려워진 후 회장 희망자가 없어 상근 책임자가 억지로 회장직을 대행하고 있다. 연간 시장규모가 7조원 규모로 커져 각광받고 있는 아웃도어산업의 구심체를 자처하며 출범한 아웃도어산업협회도 출범 2년이 되도록 회장을 선임하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 가지 아쉽고 안타까운 것은 취임 이후 분골쇄신 총력을 경주해 봉사하는 지도자를 향해 뒷다리 잡고 흔드는 세력들이 가끔 나타나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그 단적인 예가 한국패션협회다.

먼저 필자가 친불친을 내세워 특정인을 두둔하거나 미화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는 사실을 전제해 둔다. 어디까지나 팩트(Fact)에 근거해 사실만을 말할 뿐이다.

현 원대연 회장은 전임 공석붕 회장에 이어 10년간 패션협회를 이끌어 왔다. 10년 전 그는 제일모직 사장을 막 그만둔 시기에 공석붕 회장 후임 선임이 협회 재정 악화 등으로 난항을 겪자 공 회장과 필자가 그를 추천했다. 패션협회장 추천을 받은 원 회장은 당시 변 묻은 새발 털듯 거절한 사실을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

우여곡절과 설득을 거듭해 패션협회장으로 취임했다. 패션협회 재정이 워낙 열악해 직원 퇴직금을 포함해 부채규모가 자그마치 7억 원에 달했다. 전임 공석붕 회장도 전 직장인 IWS한국지부를 퇴직하면서 받은 퇴직금 일부를 직원 봉급으로 지원한 경우가 있을 정도로 재정 상황의 어려움을 겪은 곳이다.

그로부터 원 회장은 자신의 역량과 인맥 등을 총동원해 부채 정산에 나서 부채를 다 갚았고 직원들에게 상여금을 주고 퇴직 충당금을 모았다. 또 당초 6~7명의 직원을 20명 이상으로 늘릴 정도로 살림규모가 커졌고 2년 전에는 성수동에 180평 규모의 어엿한 자체 보금자리까지 마련했다.

그야말로 빈집에 소가 들어온 격이다. 경기도 이천에 대규모 패션 물류아울렛 단지를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성공적으로 조성한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영원한 슈퍼 ‘甲’의 공룡백화점으로부터 패션 입점업체들을 보호하기 위해 백화점협회와 패션협회간 상생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하는 쾌거를 일구어냈다. 지난 연말에 개최된 대한민국 패션대상 시상식에는 패션역사상 처음으로 5대 백화점 사장 전원이 참석하는 성의를 보여 정부와 업계 참석자들이 달라진 패션협회 위상에 혀를 내둘렀다. 원 회장의 능력과 지도력이 만들어낸 결정체다. 그가 아니었으면 패션협회는 이미 파산했을지도 모른다.

협회 파산위기 때 그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정부에서도 헌신적인 노력과 능력을 높이 사 패션업계를 위한 지원예산을 섬유ㆍ패션단체 중 가장 큰 규모로 배려하고 있다. 그 모든 혜택이 원 회장 개인이 아닌 업계에 돌아가는 것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심지어 패션경영의 대가로서 사심 없이 봉사한 원 회장을 향해 일부 섬유매체가 업무상 배임으로 음해성 형사고발까지 해 검찰조사까지 받은 수모를 겪었으나 털고 털어도 먼지가 안 나 지검과 고검 모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지금 이순간도 그의 탁월능력과 헌신적인 능력에 대다수 패션기업인들은 찬사와 갈채를 보내며 계속해서 봉사를 요청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각에서 그를 시기하며 흔들어대는 음습한 음모와 음해가 있다는 소문에 많은 패션기업인들이 비분강개하고 있다. 패션협회가 끼니가 간데 없을 때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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