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회 고객은 공무원 아닌 회원사, 신뢰와 실력으로 인정받아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제일모직 사장직에서 물러나 한국패션협회 수장으로 자리를 옮긴지 정확히 11년. 많은 게 변했다. 그리고 많은 일이 있었다. 일곱 명 직원 급여도 버거웠던 부실 협회를 자타가 공인하는 어엿한 알짜 단체로 탈바꿈시켰다. 이천패션물류단지 초대형 프로젝트도 맨손으로 시작해 보란 듯이 이뤄냈다. 동시에 억울한 오해로 인한 따가운 시선도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일희일비하지 않고 고집스레 자신의 길을 걸었다. 봉사라는 초심은 흔들리지 않았고, 경영만큼이나 가슴 뛴 일이었다.
그렇게 ‘작은 거인’ 원대연 회장은 열정적으로, 또 소신있게 협회를 이끌었다. 이제 그의 네 번째 임기도 종착역을 앞두고 있다. 새해 벽두를 앞두고 역삼동 사무실에서 마주한 그는 담담하게 그간의 소회와 한국 패션산업의 미래, 그리고 협회의 새로운 10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이사이 안경넘어로 비치는 그의 형형한 눈빛에는 지난 시간의 노력과 열정, 그리고 애환과 질곡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 재임 11년간 협회 위상 ‘급상’
- 적극 투자로 회원사 인정받아
- 이천 사업은 ‘무’에서 ‘유’ 창조
- K패션 글로벌 진출 지원 꾸준
- 기업가정신 갖고 세계 도전해야
- 불황, 경쟁력키우는 호황 준비기

 


- 이제 패션협회장으로서 네 번째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꺼려하던 패션협회장 직을 맡아 놀라울 정도의 성과를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고 계십니다. 지난 11년간의 소회를 밝혀주십시오.
“현직 은퇴를 앞두고 30년 이상 쌓은 섬유·패션 지식과 경험을 봉사하는 마음으로 우리 산업 발전에 바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패션협회 회장직을 제안받게 됐습니다. 당시 협회는 직원 7명에 월급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고 있을 만큼 상황이 어려웠었지요. 지금은 23명으로 식구도 늘어났고, 빚도 모두 청산했습니다. 번듯한 사무실도 확보했으니 이제 누가 봐도 온전한 협회의 모습을 갖췄습니다. 대다수의 협회들이 현상유지 혹은 축소되고 있는 상황에서 거둔 성과라 누구보다도 뿌듯합니다.” 


- 12년 패션협회 한 우물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큰 성취라 생각합니다. 재임기간동안 품고 계셨던 철학과 소신이 있으시다면 무엇입니까.
“회장직을 맡자마자 직원들에게 ‘협회는 회원사가 고객’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협회는 고객인 회원사가 원하는 걸 지원해줘야 신뢰와 지지를 받을 수 있지요. 협회의 힘은 정부의 재원이 아닌 회원사로부터 힘이 생기는 겁니다.”


- 협회장으로 한국 패션산업을 대변하고 지원하는 숨은 조력자 역할을 충실히 하셨습니다. 재임기간 중 가장 보람있던 일을 꼽는다면 무엇일는지요. 
“재임 초기에는 회원사들의 참여율도 무척 낮았고, ‘패션협회는 도움을 주는 곳이 아닌, 오히려 도움을 줘야하는 단체’라는 의식이 업계에 팽배해 있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회원사들이 관계를 회피하거나 부담스러워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명색이 한국패션협회인데… 자존심이 많이 상했죠. 사고의 전환이 필요했습니다. 아껴야 할 것은 아끼지만, 대외적인 성격의 행사는 협회 이미지 쇄신과 위상 확립의 효과를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규모축소로 유명무실하던 서울시장상을 폐지하고 대통령과 국무총리 상을 수여하는 ‘코리아패션대상’을 양재동 엘타워에서 성대하게 개최했습니다. 섬유센터에서 썰렁하게 진행하던 조찬포럼도 르네상스 호텔로 자리를 옮겨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 등 정재계 인사들을 모시고 열었습니다. 강사의 수준도 월등히 높였습니다.
이후 섬산련과 의산협도 함께 조찬포럼을 호텔에서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7회째를 맞은 ‘글로벌 패션 포럼’도 업계 관계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점차 회원사들의 협회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고, 사회적 인식과 위상도 크게 높아졌습니다. 오랜만에 패션협회 행사에 참석한 업계 대표분들은 변화된 위상에 깜짝 놀랄 정도였죠.(웃음) 높아진 협회의 위상을 바탕으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할 수 있는 선순환 고리를 만든 점이 제일 큰 보람입니다.”


-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듯이 억울한 오해도 받으셨습니다. 결국 지난해 2월 무혐의로 종결되었지만, 적잖은 생채기로 남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저는 공과 사를 엄격하게 구별해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일하면서 그런 부분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말자 했는데, 본의 아니게 지난 3~4년 동안 마음고생을 참 많이 했습니다. 차명계좌 운영과 경비과다 지출 등 사실과 다른 내용의 기사가 한 업계 월간지에 게재되고 일부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곡된 내용을 부풀리면서 흔들어 댔습니다. 제가 데리고 있던 협회 부회장이 술 먹고 뱉은 말이 꼬투리가 된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러한 오해도 사람을 잘못 쓴 제 부덕함이라 여겨 무대응으로 일관했지만, 해당 월간지 대표가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데는 더 이상 쉬쉬할 수 없어 정공법으로 가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작년 2월 무협의 판결이 나서 자동적으로 결백은 증명됐습니다. 씁쓸했지만, 제 자신과 주변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단속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 이천패션물류단지 사업은 패션산업은 물론 여느 제조업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대형 프로젝트였습니다. 이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고, 성공적이라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취임 전부터 협회가 준비 중이었지만, 역량이 미치지 못해 보류되어 있던 사업이었습니다. 도심이 확장되고 회사가 성장하면서 수도권 창고 이전에 대한 회원사들의 니즈는 확실했습니다. 회원사와 신뢰도 쌓고, 협회의 수입원도 만들 수 있는 기회라 여겨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자금력없이 일을 하려니까 걸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고, 협회의 추진력에 대한 믿음도 낮아 투자받기가 어려웠습니다. 산적한 개발 관련 허가 문제도 쉽지 않았습니다. 협회와 관계자는 물론 회원사까지 함께 집념으로 수많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면서 진행했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물류·상업 단지가 마무리된 상황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셈이죠.(웃음) 이 사업을 통해 협회는 차후 관이든 민간이든 누구와도 함께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엄청난 레퍼런스를 얻었습니다.”


- 국내 패션브랜드의 해외 진출에도 적극 나서고 계신 걸로 압니다. 
“협회를 맡고 나서 기치로 내세운 것이 한국패션의 세계화였습니다. 패션은 IT·BT 못지않은 지식정보 산업이고, 소득증가와 함께 부가가치도 오르는 선진국형 산업, 그리고 고부가가치 문화 창조산업입니다. 20~30년 후 동북아시대가 오면 세계 정치·경제·문화뿐 아니라 패션도 한중일이 중심이 될 겁니다. 그런 흐름에 발맞춰 국내에서 글로벌 브랜드나 디자이너가 하나 배출된다면 한국 패션산업의 세계화는 분명 급물살을 탈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협회도 뉴욕과 상해에 패션비즈니스센터를 개설해 국내 기업의 해외진출을 돕고 있습니다. 그 밖의 지원행사도 단순히 단발성 전시가 아닌 가시적인 성과와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현재 센터를 통해 많은 국내 기업이 해외진출에 도움을 받고 있고,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몇 년 안에는 반드시 결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 국내 브랜드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무엇보다도 CEO의 철학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국내시장에서도 브랜드 하나를 제대로 성공시키는 데 5년이 넘게 걸립니다. 당연히 해외시장은 몇 곱절의 노력과 시간이 더 필요하지요. CEO가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글로벌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있어야 디자인·제작·유통 인프라가 모두 세계화 될 수 있습니다.
물론 국내 시장 1등도 중요하지만, 13억 중국을 비롯한 세계시장이 모두 우리 무대입니다. 협회가 진행하는 해외 수주회만해도 경영인이 직접 방문해 현지 바이어와 소통하면서 문제점을 수정·보완 노력하는 브랜드는 반응이 다릅니다. 더 많은 국내 패션기업 CEO들이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을 갖고 세계시장에 도전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백화점 유통과 상생의 노력도 적극 앞장서고 있습니다. 지난 코리아패션대상 시상식에도 5개 백화점 대표들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성과와 계획이 궁금합니다. 
“우리 업계에 처음있는 일이었을 겁니다. 엄청난 변화죠.(웃음) 패션과 백화점은 결국은 동반자 관계라는 공감대를 만들어 낸 것이 큰 수확이고, 이를 토대로 꾸준히 협조와 조율을 해나갈 계획입니다. 또한 홈쇼핑, 할인점까지 유통 협력사들을 넓힐 예정입니다.”


- 국내 패션업계는 위기입니다. 글로벌 SPA와 장기불황 등 2중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회장님께서 생각하시는 돌파구는 무엇입니까.
“인생이나 사업이나 부침이 있습니다. 어려울 때가 있으면 분명 좋을 때가 있습니다. 힘들 때 구조조정하고 힘을 강화해 호기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좋은 시기가 오면 반드시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건 대부분 브랜드들이 이전과 똑같이 옷을 만들어서 팔고, 남은 제품은 세일하고… 현상 유지에 급급하고 있습니다.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어려울수록 트렌드에 흔들리지 말고 자기 색깔과 경쟁력을 가진 브랜드를 만들어야 합니다.”


- 새해 패션협회가 새롭게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 바랍니다.
“글로벌 브랜드 사업은 꾸준히 진행하고, 이천패션물류단지도 잘 마무리할 겁니다. 그 밖에 기존 진행하던 고정 사업들 역시 더욱 강화·발전시켜 진행할 예정이다. 본격화되고 있는 하남시 패션특구 개발도 이천 프로젝트에 이은 대형 사업이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 협회가 그 동안 쌓은 노하우를 활용해 창의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사업 개발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은 개인별 사업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그 성과를 통해 연봉을 받습니다. 협회의 경쟁력 강화와 함께 회원사에 더욱 다양한 혜택을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한해가 될 것입니다.(웃음)”


- 마지막으로 2015년 새해를 맞은 독자들에게 덕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새해에도 창조적 혁신과 끊임없는 도전으로 모든 섬유·패션 산업이 성장하기를 기대합니다. 협회도 한국 섬유·패션의 위상 제고와 가치 향상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올해도 여러분의 무궁한 발전과 건승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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