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기회로 탈바꿈, 올해 3억7천만불 찍어

베트남ㆍ인니 등 1만 5000명 구슬땀…‘여성복수출 지존’
美 접수…Ann Taylor 등 빅바이어들과 거래
‘한국 대표 의류 수출회사’ 야망 30년 성공신화

“패션회사가 옷만 잘 만들어 성공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생산뿐 아니라 기획에서 배송까지 통합시스템으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죠”

의류로 세계 시장을 호령하고 있는 풍인무역 박영표 대표의 철학이다.
여성의류 전문 수출업체 (주)풍인무역이 제 51회 무역의날 행사에서 3억불탑을 수상했다.
3억불 ‘금자탑’은 섬유업계 전체가 글로벌 불황속에서 수출이 부진했던 터라 더욱 돋보였다.

박영표 대표의 풍인무역은 1989년 설립됐다.
1982년 삼성물산 수출사업부에서 첫 출발한 박 대표는 섬유산업은 대기업보다 특화된 전문기업에서 리드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독립하게 된다. 그는 늘 ‘기능이 다양한 최고 품질의 옷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의류수출 회사를 키우겠다’고 되뇌며 야망을 품고 있었다.

이후 30여년간 의류 수출 한우물에 전력투구했다.
해외 패션 트랜드를 끊임없이 분석하고, 새로운 디자인과 패턴 개발에 매진했다. 연구개발을 통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해내고, 원부자재의 아웃소싱 확대로 신규 바이어를 개척했다.  풍인이 국제시장에서 궤도에 오를 즈음 해외 생산기지를 잇따라 인수하면서 미주-유럽지역까지 바이어를 확보해 글로벌 소싱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위기도 적지 않았다. 후발업체에 대한 편견과 인지도 저하로 고전했고, 2003년 사이판 니트 공장 화재는 견디기 힘든 시련이었다. 사이판 악재는 무엇보다 박 대표가 모든 것을 걸다시피 한 사업이어서 충격이 컸다고 술회한다.

그는 특유의 긍정 마인드와 오기ㆍ신념으로 이를 극복 해나갔다.
손해를 보면서도 바이어와 약속을 칼같이 지켰고, 직접 에이전트를 찾아가 안심시켰다. 당시의 바이어가 Ann Taylor로 현재 풍인의 최대 거래처가 됐다. 위기 때 신뢰가 효자 역할을 한 셈이다.

박 대표는 풍인의 경쟁 상대를 세계 시장에서 겹치는 중국, 홍콩, 남미에 소재한 기업들로 잡고 이들보다 조금이라도 앞서기 위해 차별화 전략을 전개해 나갔다. 품질과 신뢰에서 1등 회사가 되자는 것이다. 바이어가 원하는 옷을 만들어 선적하는데 그치지 않고 고객과 함께 호흡하고 니즈를 파악해 항상 새로움을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니트ㆍ우븐 모두를 다루고 있는 것도 점도 경쟁력으로 내세운다. 또한 한국 본사에서 R&D와 영업 BIZ 등을 통해 미주 지역 주요 바이어의 의류 오더를 수주하고, 베트남ㆍ인도네시아 등 현지 법인에서는 우븐과 니트 복종 부문을 동시에 생산하면서 효율성을 기했다.

결과적으로 풍인의 성장가도는 박 대표의 전략과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풍인무역은 해외 공장에만 약 1만 5000명의 인력을 두고 있다.
현재 미국 52개주 전역을 비롯, JC Penney, Macy's, Kohl's, Ann Taylor, Elie Tahari, Talbots, Athleta, WHBM, Chico's, Club Monaco 등 유명 벤더와 거래하고 있다.

박 대표는 리더십도 돋보인다.
투명한 경영마인드와 체계적인 시스템을 적용하고 폭넓은 복지를 제공하면서 임직원들로부터 존경받고 있다. 그의 이같은 경영 방침은 시장이 치열한 경쟁구도와 침체로 이어진다 해도 내부 역량이 강화되면 인재를 자산으로 재도약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경영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풍인은 사실 지난해 이미 수출 3억불을 찍었다.
“올해 3억 7000만 달러 이상을 바라보고 있는데 다른 섬유회사들이 부진한 것에 비하면 큰 수치죠” 한해를 쉼없이 달려온 박 대표의 여유섞인 자긍심이다.

박 대표는 지속되는 불황에도 단련된 모습이다.
“경기가 호황일 때를 기다리면 이미 늦고 다른 기업과 차별화하기도 어렵죠. 불황은 호황을 준비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국제섬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