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노희찬 회장

지난 6년간 ‘(주)한국섬유패션산업 회장’직에 열정 봉사
탁월한 지도력, 헌신적인 자기희생 단체장 귀감 롤모델
스트림간 협력간담회 창설, 스트림간 기술개발 예산 400억으로 확대
섬산련 장학재단, 한ㆍ중 FTA 대비 섬유 초민감 품목 반영
한ㆍ중ㆍ일, 한ㆍEU, 한ㆍ독일, 한ㆍ인도 협력회의 주도
크고 작은 수많은 공적 남기고 다음 주 총회에서 바통 넘겨
섬유패션산업 중흥위해 거보 영원히 기억될 통 큰 지도자

명실공히 ‘주식회사 한국섬유패션산업’ 회장으로서 지난 6년여 간 섬유패션업계를 이끌었던, 노희찬 한국섬유산업연합회장이 무거웠던 짐을 후임에게 넘기고 다음 주 떠난다. 탁월한 지도력과 열정, 헌신적인 봉사로 어려운 섬유패션산업의 재도약을 견인하며 무수한 업적을 남긴 그는 소신처럼 업계의 3연임 요청에 손사래를 치며 물러난다.

지난 연말까지도 3연임을 바라는 업계의 열화 같은 요청을 고사하며 후임 회장에게 바통을 넘기는 마지막 순간을 맞고 있는 그는 후임 선임을 둘러싸고 과열현상을 보인 일부 행태에 마음고생이 컸다. 대구상공회의소 회장 재임시절을 비롯 수많은 공인의 길을 걸어오면서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것이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을 철저히 배격한 지도자다.

그런 진정성을 왜곡하며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에 의해 그토록 거부하던 “3연임을 위한 꼼수”라는 음해를 듣기도 했지만 결국 확고한 그의 원칙에 지금 섬유패션인들은 한결같은 찬사와 아쉬움을 표명하고 있다. 노 회장은 그 같은 무도한 음해를 “자신의 부덕의 소치”라며 웃어넘기고 있지만 마음 한 구석은 아직 소태 씹는 심정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어찌됐건 지난 2월 정기총회에서 후임 회장 선출이 제 때 이루어지지 못해 예기치 않게 덤으로 6개월을 더 재임해온 그는 지난 몇 개월이 6년보다 더 긴 시간이었다. 섬산련 회장 후임 선출을 둘러싼 일부의 추태와 반목을 수습하면서 지난 7일 5인 추대위원회 1차 회의에 이어 이제 12일 2차 회의에서 최종 결론을 기다리고 있다.

5인 추대위원회의 결론을 바탕으로 다음 주 임시총회를 통해 후임 회장 선출 절차를 마무리 짓고 성취욕 못지않게 힘들고 고단했던 섬산련 회장직을 내려놓게 된 것이다. 
재임기간 동안 소명과 열정, 탁월한 지도력과 헌신으로 희생해온 그의 떠나는 뒷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 보일 순간이 임박한 것이다.

지난 6년간 노 회장의 치적은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획을 그었다. 해외 각국 단체 간에 정례, 비정례 회의에 착석하고 국내외에서 열린 국제회의 참석을 위해 많은 시간을 뺏겼다. 이틀, 사흘이 멀다 하고 열리는 섬산련 관련 회의에 참석하느라 대구에서 별 보고 출발해 자정에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섬산련 회장직을 수행하기 위해 거의 일주일에 반은 서울에 상주했다.

회의가 겹치면 아예 서울에 체류하며 빈틈없이 준비했고 업계의 현안 해결을 위해 수시로 정부 고위층과 정치권을 채근하는 용기를 발휘했다. 통 큰 지도자답게 마당발의 강점을 살려 정부 고위층, 정치권 인사들과 수시로 회동하며 섬유패션산업 발전을 견인했다.

시간과 육체, 돈에 대한 엄청난 부담을 감수하며 사재를 아낌없이 털어 섬유패션 발전을 위한 일에 쾌척했다. 그 결과 섬산련이 명실공히 경제 6단체 대열에 합류했고, 섬유의 날 기념식과 PIS 전시회, 섬유패션인 신년 교례회에는 의례껏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국무총리가 빠짐없이 참석하게 됐다.

그의 업적은 낱낱이 정리하기조차 어렵지만 공적 중에서도 몇 가지만 강조하면 때론 보이게,  보이지 않게 많은 것을 남겼다. 2007년에 처음 시작 당시 95억 원에 불과하던 섬유패션 스트림간 협력기술개발사업의 정부 지원 예산을 해마다 증액시켜 올해 400억 원으로 대폭 증액시킨 것도 노 회장의 노력 때문이었다. 주무부처는 물론 예산 국회 때면 여의도에 이틀 간 상주하며 소관 상위와 예결위원들을 직접 만나 설득해 온 결과다.

지난 2011년 10월 창의적인 발상으로 섬유패션업계의 장기적인 인력양성을 위한 섬산련 장학재단을 설립한 것도 그의 인재양성에 대한 철학과 신념에서 비롯됐다. 장학기금 100억 원 조성을 목표로 한 장학재단은 벌써 30억 원의 기금을 모았다.

장학재단 설립과 연관해 장학기금 모금을 위한 섬유패션인 등반대회는 1000여명의 인파가 몰려 섬유패션인의 화합과 단결의 축제의 장으로 승화시켰다. 북한산에서, 관악산에서 울려 퍼지는 함성은 장학기금 모금은 물론 섬유패션인이 하나가 되는 통합감의 절정에 도달하고 있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장학재단 기금 확보를 위해 KB금융카드와 섬유패션 기업카드를 출시하기도 했다.

또 작년 2월에 처음 발족된 섬유패션 스트림간 간담회 역시 노 회장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독불장군이자 섬유업계의 ‘甲’으로 등장한 대형 의류수출 벤더와 국내 소재산업의 만남의 장은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참으로 시의적절하고 절묘한 발상이었다.

물론 독불장군으로 각기 우뚝 선 대형 글로벌 의류수출 벤더와 국내 소재산업이 함께 모이는 데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노 회장의 간곡한 부탁으로 국제섬유신문이 산파역을 맡았지만 앞으로 이 스트림간 협력간담회는 우리 섬유산업의 장래를 위해 매우 절박하고 타당한 모임이었다.
글로벌 시장에서 맹활약하면서 일취월장하고 있는 의류수출 벤더와 국내 소재산업 간에 소통을 통해 국산 소재 사용을 확대할 수 있는 절호의 계기가 되고 있다.

국내 소재산업만을 위함이 아니고 자신들이 해결하기 어려운 의류수출 벤더들의 고충을 해소하는데 섬산련이 앞장 서 주도하고 있다. 의류수출 벤더들이 발등의 불로 지목하고 있는 해외공장 중간관리자 부족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양성교육을 섬산련이 맡아 공급하고 있다. 또 진출국에서의 여러 어려움을 섬산련 차원에서 각국 정부와 단체를 통해 큰 틀에서 해결에 앞장서고 있고 최대한 편의를 제공받도록 알선하고 있다. 이 스트림간 간담회에 1차 주한 베트남 대사 일행을 초청해 한국기업의 현지 애로사항과 진출을 위한 여러 지원을 약속받게 하는 등 실로 기대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스트림간 협력 간담회 덕이다.

프리뷰 인 서울(PIS) 참여기업을 확대시키고 해외 바이어 초청 수를 크게 늘리는 한편 개막행사 때마다 국무총리가 참가할 정도의 위상을 높인 것 또한 그의 노력이었다.

섬유패션인의 긍지를 높이고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섬유의 날 기념식을 격상시켜 정부 포상을 늘리면서 역시 시상식에 국무총리가 거의 참석토록 앞장선 것 역시 노 회장의 노력 때문이었다. 섬유패션업계 CEO조찬포럼과 비즈니스스쿨을 운영해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데도 소홀함이 없었다.

전임 회장들이 창설한 ‘섬유패션인 제주 CEO포럼’에 좀처럼 접근하기 어려운 국내외 명사와 전문가를 대거 초청해 휴식과 함께 새로운 국제 정보를 습득하는데 앞장섰다. 도레이 회장과 유라텍스 회장, 인도 섬산련 회장, 중국 방직협회장 등이 참석해 신정보와 지식을 제공케 해 섬유패션인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게 했다.

공식, 비공식 회의를 통해 국가 간 민간 외교의 첨병 역할에 조금도 소홀함이 없었다. 중국과 일본 간의 외교적 마찰로 교착상태에 있던 한ㆍ중ㆍ일 섬유회의도 노 회장이 중국 방직협회장을 설득해 성사시킨 일화는 오래오래 화제가 되고 있다.

한ㆍ인도 섬유협력회의를 창설했고 한ㆍEU 섬유패션산업협력을 위한 유라텍스와 긴밀한 협력체제를 직접 구축했다. 슈퍼섬유 붐을 타고 산업용 섬유 선진국인 독일 섬유산업연합회를 설득해 협력관계를 정례화 시킨 것 또한 지나칠 수 없는 업적이다. 한ㆍ대만 섬산련 회의도 정상화시켜 양국 간에 긴밀한 협력체제를 구축하는데 앞장섰다. ‘시크’를 비롯한, 프리뷰 인 차이나를 통해 중국을 제2의 내수시장으로 활용하기 위한 기틀을 제공하는 데도 전력투구했다.

공식ㆍ비공식 국제회의에 참석하느라 지난 6년 간 지구를 돌고 남을 긴 여정을 소화해내면서 우리 섬유패션산업에 도움이 되는 일은 양의 동서를 불문하고 날아다녔다. 서울과 지방에서 수시로 열리는 관계 당국 또는 관련 단체, 업계 회의에도 빠짐없이 참석해 섬유패션인의 권익보호를 위해 할 말을 다했다.

돈보다 더 급한 생산현장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 정부에 싫은 소리를 마다 않고 외국인 근로자 쿼터 증대에 혼신의 노력을 경주했다. 외국인 근로자 도입 쿼터가 이만큼이라도 늘어난 것은 마당발을 활용한 노 회장의 열정적인 노력 덕분이었다.

뿐만 아니다. 임박한 한ㆍ중 FTA체결을 앞두고 농산물과 함께 치명적인 타격이 우려되는 섬유산업에 대한 구제방안에 전력투구 해왔다. 윤상직 장관과 수없이 회동하고 정부 협상팀을 채근해 섬유산업에 피해가 오지 않도록 적극적이고 다각적 노력에 앞장섰다. 그 결과 우리 섬유산업 중 한ㆍ중 FTA로 피해가 우려되는 품목은 거의 대부분 초민감 품목 또는 민감 품목으로 묶는다는 원칙을 얻어냈다.

이 밖에도 지난 6년 남짓의 섬산련 회장 재임의 업적을 나열하자면 더욱 많은 시간이 필요할 정도로 그는 전력투구 했다. 개인적으로는 많은 손실을 감수하면서 섬유패션 대통령직에 충실해왔다.

그를 아는 섬유업계 원로나 친지들은 지난 6년간 시간과 육체적 희생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수십억 원의 손실을 입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섬산련 회장 재임기간 중 자신의 기업인 삼일방직과 삼일염직은 돌보지 못했다. 섬유패션업계 首長직무에 전력투구하는 사이 자신의 기업 성장에는 피해가 컸음을 섬유패션인들은 인정하면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노 회장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때다.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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