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꼴이 우습게 돌아간다. 정부는 나사가 빠졌고 민심은 콩으로 메주를 써도 믿지 않는 불신풍조로 이반되고 있다.

“살아서 웬수는 죽어서도 웬수다” 온갖 부조리와 탐욕으로 국민을 통곡시킨 유병언이 죽어서도 온 나라를 뒤집어 놓았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독사에 물렸는지 알 수 없는 유병언 수사과정에서 들어난 국가 공권력의 무능에 국민은 토악질을 한다. 그래서 장관과 검ㆍ경 수뇌부에 대한 물러갈 퇴(退)자도 가시화되고 있다.

이제 ‘세월호’ 말만 나와도 넌덜머리난다. 하루빨리 특별법이건 뭐건 마무리해 국민이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2분기 소비증가율이 ‘0’으로 드러난 판국에 3분기도 같은 돌에 넘어질 수는 없다. 최경환 경제팀의 지도에 없는 파격적인 정책이 빛을 보도록 이젠 평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삼복더위에 냉각기 끈 절박한 면방업계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경환 쇼크요법이 시장에 먹혀들기 시작했다. 부동산, 금융 주가가 꿈틀거린다. 내수 경기 활성화가 본격화되면 죽다시피 한 내수패션 경기도 온기가 느껴질 것이다. 내친 김에 환율도 달러당 1100원 선을 유지해 수출 경쟁력을 키웠으면 싶다.

말을 바꾸어 요즘 만나는 섬유 기업들로부터 “미래가 보이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경기는 바닥 밑 지하실로 추락하고 재고는 쌓이고 눈덩이 적자에 헉헉 거린다는 하소연이다.

그래서 미래가 보이면 마지막까지 버티어 보고 가능성이 없다면 아예 “떡쌀 담그겠다”는 비장한 각오다. 물론 “조금 기다리면 좋은 시절 올 것”이라고 위로하지만 필자 역시 속이 새까맣게 타는 것은 매한가지다.

섬유스트림 면면을 들여다보면 대다수 죽지 못해 사는 피 말리는 형국이다. 목 타는 오더 가뭄에 원사값, 염색료는 물론 인건비, 전기료는 뛰는데 제품 시장 가격은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절박하면 덩치 큰 면방회사들이 이 삼복더위에 생산현장에 냉각기를 끄겠는가? 외부 온도가 33도면 생산현장의 열기는 38도다. 근로자들이 땀으로 멱을 감으며 고통을 참고 있다. 인건비와 거의 맞먹는 전기료를 아끼기 위해 생산 현장의 냉각기를 끄고 있는 것이다.

코마사 고리당 5만원씩 밑지며 매월 수억에서 수십억씩 적자를 보는 면방회사의 고육지책이다. 고마운 것은 그 뜨거운 찜통더위를 마다 않고 회사의 적자에 고통분담 차원에서 참고 견디는 근로자들의 자세다.

면방뿐 아니다. 이미 까발려진 대로 화섬업체들도 눈덩이 적자에 시난고난하고 있다. 20%라는 대규모 감산에도 재고가 쌓여 30%로 감산 폭을 늘렸다. 화섬직물과 니트직물 등 수요업계 경기가 이 복더위에 엄동설한이니 속수무책이다.

설상가상으로 중국산 DTY사가 국내 생산량보다 많이 들어와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DTY뿐 아니라 필라멘트까지 치고 들어올 태세다. POY는 말레이시아, 태국산이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다. 폴리에스테르면(SF)를 제외한 화섬사 전체가 속수무책 죽을 쓰고 있다.

면방, 화섬에 이어 다운스트림 사정은 더욱 절박하다. ITY싱글스판과 베네치아 등 환편과 원사 다소비업종인 경편 모두 전 세계 수출시장이 꿈쩍 않고 있다. 화섬우븐직물 역시 중국과 인도네시아산에 밀려 오금을 못 펴고 있다.

이미 공동화된 지 오래인 봉제산업은 거론할 나위가 없다. 해외 소싱으로 잘 나가는 대형 의류수출 벤더들은 그나마 일취월장 하지만 그들이 빛이라면 국내 산업은 그림자다. 국산 소재 사용은 날이 갈수록 줄고 해외 현지 조달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나 단체 있는 사람들은 탁상 위에서 섬유 수출 경기가 좋다고 말한다. “죽네, 죽네” 하지만 올 상반기 섬유 수출이 80억2000만 달러로 작년 동기보다 1.1% 늘어났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외양과 실제 사이에는 많은 괴리가 있다. 물론 폴리에스테르 스테이블 화이버 같은 경우는 올해도 실적이 좋았다. 대신 가장 비중 큰 편직물과 화섬직물은 대폭 감소했다. 외형을 고만고만 유지하는 기업도 드물지만 유지한다 해도 내용 면에서 막장투매로 영업이익이 급속히 감소해 빛 좋은 개살구다. 거의 유일한 경쟁력인 환율이 곤두박질 친데다 중국의 독과점인 염료값 폭등으로 염색료까지 올랐다. 설상가상으로 PTA값이 강세를 보이자 폴리에스테르사까지 마의 비수기에 따라 오르고 있다.

니트, 우븐직물 경기가 불황이면 섬유의 꽃이라는 염색가공 역시 팍팍하기는 매한가지다. 염료값 인상률만큼 반영할 수 없는 처지여서 그들도 한숨 소리를 길게 토해내고 있다.

문제는 우리업계 대다수가 이 불황의 원천을 경기 때문으로 몰아가고 있다. “경기가 나빠 못 살겠다”만 외치지 자신의 취약한 경쟁력 구조를 모르거나 숨기고 있는 것이다.

시장은 절대 후덕하지 않고 약아 빠지기 마련이다. 값싸고 품질 좋은 제품을 선호하는 것은 양의 동서를 불문하고 공통된 공식이다.

과연 국산 섬유류가 어느 한 부문이라도 중국과 대만을 비롯한 경쟁국보다 값싸고 좋은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두고 쓰는 문자지만 “외할머니 떡도 싸고 맛있어야 사먹는 법”이다. 중국과 대만, 말레이시아산보다 품질이 떨어지고 가격이 비싼 국산 화섬사를 수요자들이 지연, 학연, 의리를 중시해 사줄 것으로 생각한다면 봉건적인 사고다. 규모 경쟁에서 안 된다면 품질 경쟁으로 맞서야 하고 생산성, 품질 경쟁에서 뒤지면 가격 경쟁력으로 극복해야 하지만 우리는 3박자 모두가 저속한 표현으로 젬병이다.

그렇다면 명제는 분명히 설정돼 있다. 중국과 대만과 경쟁하는 품목은 백전백패란 사실을 직시하고 차별화 길 밖에 없다. 다른 국가가, 다른 회사가 할 수 없는 차별화 전략으로 비상구를 찾아야 한다. 만들면 팔리던 옛 향수에 취해 차별화에 소홀하면 떡쌀 담그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러나 차별화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설비 투자와 기술개발 투자, 사람에 대한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삽질하지 않고 물이 고이기를 바라는 것은 정신 나간 놀부 심보다.

슈퍼섬유 좋지만 개질 폴리마 차별화 시급

하나의 예증으로 화섬사 분야에도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개질 폴리마를 개발해 다양한 신소재를 만드는 연구 노력이 필요하다. 개별 화섬 기업이 해야 하지만 그게 부진하면 대구의 한국섬유개발연구원의 파일롯 방사설비를 활용해 부단히 신소재를 개발해야 한다. 전문 생산기술연구소의 기능이 그렇것 하라고 만들었지 기관 운영하라고 석ㆍ박사를 비롯한 우수인력을 채용한 것은 아니다.

거창하고 화려한 슈퍼섬유 기술개발은 그 수혜 폭도 좁지만 대형 화섬업체에 맡기고 개질 폴리마를 이용한 차별화 기술을 섬개연 같은 곳에서 해야 한다. 섬유 관련 연구소들이 기라성처럼 존재하지만 업계에 보탬이 되는 제대로 된 기능을 얼마나 수행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

신소재 개발에는 수 없는 실패가 따르고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이다. 그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듭하다 보면 놀랄만한 성과가 나오기 마련이다.

경쟁국은 대포를 쏘는데 우리는 재래식 소총으로 맞서는 것은 결국 백기투항뿐이다. 대포보다 더한 첨단 미사일로 경쟁국을 제압하는 지혜와 준비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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